쓰레기차라는 의미가 아니다. 버려지는 온갖 페기물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든 자동차는 전기차 그 이상의 친환경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자동차 산업은 오랜 시간 동안 강철, 플라스틱, 가죽 등 지구 환경을 파헤치고 얻은 천연 자원과 화학 소재에 의존해 왔다. 차량의 생산과 운행 과정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 미세플라스틱, 유해 휘발성유기화합물(VOC, Volatile Organic Compounds) 등을 배출하며,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이제 자동차 제조사는 자원 순환과 환경 보호를 실현해야 하는 책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활용 소재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폐기물 문제를 완화해 생태계 오염을 방지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가 친환경 전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탈리아 브랜드 피아트는 최근 출시한 ‘그란데 판다(Grande Panda)’에 음료용 종이팩을 재활용한 신소재를 실내 디자인에 적용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핵심은 ‘폴리알(polyAl)’이라는 재료다. 폴리알은 음료팩에서 종이층을 분리한 후 남는 폴리에틸렌(PE, Polyethylene)과 알루미늄 층의 혼합물이다. 기존에는 활용도가 낮아 대부분 폐기되던 물질이다. 보통 음료팩은 약 70%의 종이, 25%의 폴리머, 5%의 알루미늄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비(非)종이 성분이 폴리알이다.
피아트는 이 소재를 가공해 ‘라포렌 에코텍(Lapolen Ecotek)’이라는 복합소재를 개발하고 그란데 판다의 센터 콘솔, 대시보드, 도어 패널 등 주요 인테리어 부품을 제작했다. 라포렌 에코텍은 알루미늄이 포함돼 있어 자연스러운 광택을 낼 수 있어 디자인 요소로서의 기능성까지 갖춘 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폐자동차 지침(End-of-Life Vehicles Directive)’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지침은 차량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최소 25%를 재활용 원료로 충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피아트는 이 기준을 선제적으로 충족한 셈이다. 이는 피아트를 포함해 수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추진 중인 지속가능성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BMW, 볼보, 테슬라 등 글로벌 브랜드들도 재활용 소재 적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볼보는 ‘C40 리차지(C40 Recharge)’에 폐어망과 재활용 플라스틱 병을 가공한 마감재를 사용하고 있다. BMW는 폐플라스틱과 의류 폐기물에서 추출한 폴리에스터(polyester)를 실내 시트와 트림에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 6(IONIQ 6)’에 해조류 기반 친환경 도료와 재활용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원단을 사용하는 등 소재 혁신에 힘쓰고 있다.
오늘날 재활용 소재는 단순한 마케팅 수단을 넘어, 자동차에 반드시 적용해야 할 기업의 책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와 함께 폐 PET 병, 산업 폐기물, 가전제품 플라스틱, 재생 알루미늄, 음료 캔, 천연 섬유, 폐유리 등 다양한 자원이 시트 커버, 트렁크 라이너, 바닥 매트, 대시보드뿐 아니라 차체 패널, 휠, 서스펜션 부품 등에도 폭넓게 사용하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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