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yan Tree Ringha
샹그릴라 반얀트리 링하
들판 가득 촘촘한 작은 들꽃으로부터 낙원을 그려 본다. 투명하게 흐르는 시냇물, 초록의 무성한 이파리, 다시금 그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꽃망울. 풀을 뜯는 동물들과 이슬 맛 나는 바람. 이것이 수천년의 시간이 인간에게 아로새긴 낙원의 회귀점이다.

샹그릴라는 낙원을 닮았다고 해서 샹그릴라가 됐다. 소설 속 유토피아인 샹그릴라가 이곳의 풍경과 같다 생각하여 그 이름을 바꾼 것이다. 혹은 티베트 불교 전설에서 완전한 불교의 땅이자 이상향을 의미하는 ‘샴발라(Shambhala)’에서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양쪽 모두 의미하는 것은 다르지 않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샹그릴라에 당도한 여행자들은 각자만의 ‘샹그릴라’를 찾아 헤매는 걸지도 모른다.

샹그릴라에 도착하고도, 마을의 중심인 두커종 고성을 뒤로한 채 멈추지 않고 30여 분을 더 들어갔다. 고개를 넘고 작은 언덕을 지나 어느 계곡의 시작에 가까워질 만큼 깊이깊이. 칭커(, 고원 보리) 밭으로 가득한 어느 마을의 끝에서 코너를 돌자 ‘반얀트리 링하’가 나왔다. 어질고 평안하다는 인안(仁安) 마을의 양지바른 언덕 한 편이 모두 반얀트리 링하다. 이곳은 반얀트리 그룹이 중국에서 최초로 오픈한 호텔이다. 그 넓고 넓은 중국에서 이렇게 멀고, 이렇게 깊은 자연을 시작으로 삼았다. 상서로운 기운에 휩싸일 수밖에. 3,400m의 자비 없는 고도에서 만나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온화함에 압도당한다. 초원과 계곡, 가축, 가벼운 바람, 새소리, 마당에 가득 핀 민들레. 그 하얀 털 뭉치가 얼굴에 스치듯 간지러운 반얀트리 링하의 첫인상.

이곳에 서린 전설을 떠올린다. 불교 수도승이 염소를 데리고 3년여의 순례를 다니던 길에 이곳 계곡에 잠시 쉬게 되었단다. 다시 떠나려 할 때 염소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이를 보고 수도승이 이곳을 신성한 곳이라 여겨 사원을 세웠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의 이야기. 사원은 ‘다바오사(링하사원)’라는 이름으로 반얀트리 링하의 뒷산에 여전히 자리한다. 아주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각으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인다. 그 옛날 염소가 그랬던 것과 같이.

언덕 위에서 아래로, 티베트식 전통 가옥을 계단식으로 배열했다. 네모난 창을 낸 네모난 건물은 티베트의 어느 농가 가옥과 한 치의 틀림이 없다. 호텔의 경계는 건물 외양의 차이가 아니라, 추를 눌러 봉을 들어 올리는 수동식 차량 게이트를 통해 만들어진다. 반얀트리 링하는 이토록 직접적인 방식으로 여행자를 티베트의 생활 속으로 안내한다.
이곳의 객실 32개는 실제 티베트인이 살고 있던 가옥 18채를 재조립해 만들었다. 외양은 물론이고 공간의 형태와 쓰임 또한 전통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다. 모든 빌라는 티베트 전통 가옥과 같이 2개 층으로 구성했다. 1층은 전통적으로 화장실과 가축을 위한 축사를 겸하는 공간이지만, 링하에서는 축사를 제하고 화장실과 욕실 등 위생 공간을 널찍히 채웠다. 객실 타입에 따라 1층에 스파룸과 욕조가 놓이기도 한다. 주 생활공간은 2층이다. 벽 없이 널찍한 실내에 침실, 거실, 화로가 터프하게 놓여 있다. 호텔의 보편적인 공간 설계는 이곳에서 무의미하다.

호텔을 만들기 위한 일련의 해체-재조립 과정은 호텔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해 극히 절제된 채로 진행되었단 걸 체감한다. 객실 안으로 발을 내딛으면 이곳에 실존했던 티베트인의 삶이 벅차게 밀려온다. 두꺼운 양모 커튼으로 창을 가려 한낮에도 그늘진 실내, 반질거리지만 걸음마다 삐걱거리는 바닥, 불단으로 쓰였을 것이 분명한 장식장. 세상을 살며 스칠 일도 없던 티베트인 ‘부콩(Bhucong)’씨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반얀트리의 섬세한 설계 아래. 참고로 반얀트리 링하는 빌라 입구에 본래 소유주의 이름을 적어 놨다.

반얀트리 링하가 지금 현재 티베트인의 집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2001년 샹그릴라로 리브랜딩되고, 2014년 현에서 시로 승격, 2023년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등 최근 24년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삶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고. 가축 공간을 사람의 생활공간과 분리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는 1층을 주 생활공간으로 사용한다. 2층은 가족이나 종교 행사 이벤트를 비롯한 다목적 공간이다. 과거에 사람이 먹고 남은 잡다한 음식물을 가축의 먹이로 내려보내거나, 가축의 사정을 살피던 작은 구멍이 여전히 바닥에 남아 있지만.

그러니까 반얀트리 링하는 소중한 곳이다. 이곳은 올해로 20년 동안 집요히 티베트인들의 삶을 포착해 왔다. 사진을 찍듯, 20여 년도 더 된 어느 시간을 여기에 묶어 둔 것이다. 사람이 추를 눌러 봉을 들어 올리는 수동식 차량 게이트를 기점으로. 옛 모습 그대로 남은 가옥과 그 안에 동화처럼 읽히는 티베트 사람들의 삶. 나무와 흙과 돌, 계곡과 초원과 꽃, 야크와 말과 양. 이 외딴곳의 고요함, 삶의 단단함까지. 이로써 불편함은 모두 무화됐고, 이곳에는 오로지 낙원뿐이다.
Editor’s Pick
반얀트리 링하에서 반드시 해봐야 할 액티비티, 티베티안 애프터눈티
객실 가운데를 차지한 화롯가에 불을 피워 공기를 데운 뒤, 야크 버터티와 야크 요거트 그리고 야크 치즈를 내어 주었다. 칭커로 만든 넙대대한 빵 사이, 설탕 가득 뿌린 야크 요거트를 두툼히 채워 넣고서는 한입 베어 문다.

퍼석한 식감 외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빵을 무던히 오물오물 녹이다 보면 비로소 시큼한 요거트가 탱글하고 씹힌다. 그 위에 뿌려 둔 설탕이 아삭아삭 씹히지만, 예상치도 못한 시큼함이 혀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자극한다.

흥건해진 입을 야크 버터티로 다시 축이면서, 불단에 놓은 불교 수도승의 사진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반얀트리 링하의 로컬 프로그램인 ‘티베티안 애프터눈티’의 풍경이다. 지금은 여행자로서 호텔 근처 티베트인 집에 방문하는 것이지만, 이건 곧 반얀트리 링하 어느 객실에 살던 이들의 과거이기도 할 것이다.

따뜻한 불가에 모여 앉아 야크 버터티를 나눠 마시는, 잔에 담긴 티가 줄어들 새도 없이 주전자가 기우는. 가만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이 집에서 있었을 이모저모가 선연하게 그려진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