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를 향해. 리장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3시간을 내리 달렸다. 2,300m에서 시작한 고도가 3,200m까지 쉴 새 없이 오른다. 고개를 가득 젖혀도 차마 담기지 않는 협곡을 넘어, 어느덧 평원이 시작되더니 마침내 샹그릴라다. 텅 비어 외로이 홀로 달려왔던 그 길에 차차 양, 말, 소, 야크가 보인다.

샹그릴라의 시작
샹그릴라는 운남성의 더친(迪庆) 티베트족 자치주에 속한 도시다. 더친은 티베트어로 극락태평(極樂太平)을 의미한다. 어쨌거나 이곳은 서역으로 향하는 차마고도에서 티베트의 시작을 알리는 마을이었다. 이곳에서도 마방들이 모여 차와 말을 거래했다. 차마고도는 교통편이 발달하기 직전인 1950년대까지도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다. 짐을 가득 짊어진 노새들이 수백마리씩 줄을 지어 지나다니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추억인 셈이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발로 걸어 넘는 무역로는 사라졌고, 티베트의 주 수출품이었던 말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그릴라의 도시 규모는 커졌다. 2000년대 들어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샹그릴라의 본래 이름은 ‘중뎬(中甸)’, 이곳의 지명을 샹그릴라로 바꾼 2001년부터 예견된 오늘이었다.

‘샹그릴라’라는 단어의 첫 등장은 1933년,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다. 당시 소설 속 가공의 낙원이자 이상향이 바로 ‘샹그릴라’였다. 이후 유토피아라는 의미로 통용되던 ‘샹그릴라’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이 지역의 지명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런 서사를 알고 보아도 ‘샹그릴라’라는 이름은 여행자의 구미를 당긴다. 1999년 오픈한 공항에 이어 2023년에는 고속철이 개통하며 관광 산업에 박차를 가했다. 리장에서 샹그릴라까지 고속철로 1시간 30분. 이제 운남성 여행에서 샹그릴라는 찐빵의 팥이 됐다.

달빛의 도시
두커종 고성 独克宗 古城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중뎬은 어느덧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샹그릴라’가 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은 ‘두커종 고성(独克宗 古城)’뿐이다. ‘두커종’은 고대 티베트에서 부르던 이곳의 지명으로, ‘달빛의 도시’라는 뜻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니왕종(尼旺宗)’이란 요새가 있었는데 이곳을 일광성(日光城), 그러니까 ‘햇살의 도시’라 불렀다고 한다.
이 둘로 말미암아 샹그릴라 두고 ‘해와 달의 도시’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곳이 샹그릴라로 불리기 시작한 해, 두커종 고성은 운남성 역사문화도시와 운남성 유명 관광도시라는 칭호를 받는다. 2023년에는 국가급 4A 관광지가 됐다.

두커종 고산은 고성에서 가장 높은 산인, ‘귀산’을 중심으로 ‘팔엽연화(8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의 형태로 확장된다. 골목 기준으로는 불탑이 있는 사방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펼쳐지는 형태다. 실제로는 거미줄처럼 엮인 골목을 헤맬 뿐이지만, 중요한 건 리장의 고성과 달리 불교적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두커종 고성은 고성 안의 사원과 불탑을 비롯해 티베트 불교 잡화를 판매하는 수많은 가게까지. 종교를 은유하는 상징들로 가득하다. 저녁 7시가 되면 다들 두커종 고성 깊은 광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광장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근처 시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나와 하나둘 춤추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지나가다 춤사위에 합류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염두한 몸짓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춤사위다.

무아지경은 2시간 동안 계속된다. 저녁 9시, 춤을 추던 모두가 홀연히 사라진다. 당장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축제 같던 분위기가, 일순간 연기처럼 흩어진다. 샹그릴라의 저녁 9시, 이 낙원에서 꾼, 잠 없는 꿈.
세계 최대 크기의 마니차
귀산공원 龟山公园
샹그릴라 두커종 고성 중심에는 고성에서 가장 높은 산, ‘귀산’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두커종 고성의 전경은 물론 샹그릴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 청나라 강희제 때부터 이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관리했다. 눈으로 보면 대단히 높은 산처럼 보이진 않는데, 근처가 모두 평지다 보니 아주 높이 올라온 것처럼 시야가 트인다. 이미 샹그릴라의 고도가 3,300m 부근이라 귀산을 오르는 길은 실제 길이에 비해 무척 벅차다. 한 계단마다 가슴이 짓눌린다.

귀산공원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마니차’가 있다. 마니차는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되는 불교 도구로 원통형의 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표면의 측면에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고 내부에는 불교 경전이 새겨져 있다. 티베트는 과거 문맹률이 높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마니차를 돌리게 되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 왔다.
사람이 손으로 돌릴 수 있는 크기와 무게로 각양각색 만들어져 정해진 규격이 없는 것이 마니차라지만, 귀산공원은 경우가 좀 다르다. 마니차의 높이만 건물 5층에 달한다. 순동에 금도금을 한 덕에 멀리서도 황금빛으로 빛나고, 그 안에는 16톤에 달하는 124만권의 경전과 불교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가만히 멈춰 있는 마니차를 돌리려면 열댓명이 달라붙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나마 구호를 외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박자를 맞추기 수월하다.
누군가는 반드시 돌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마니차다. 단 한 바퀴만으로 부처님 명호를 124만번 묵송하는 것이고, 3바퀴를 돌리면 재앙이 물러가고 복과 행운, 재운이 들어온단다. 마니차는 두커종 고성 어디에서나 보이는데, 볼 때마다 돌아가고 있다.

마니차 옆으로는 350년의 역사를 가진 대불사가 있다. 티베트 불교의 성지, 라싸의 조캉사원에 있는 석가상을 본떠 만든 석가모니 금불상이 유명하다. 조캉사원의 석가모니 불상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상으로 꼽힌다. 다만 대불사는 여러 문화가 혼합된 편에 속한다. 건축 양식부터 차이가 있다. 직선적이고 창이 작은 티베트식 건축과는 달리 날렵하게 처마를 뽑아 올렸고 전면으로 창문을 두르듯 냈다. 내부에는 노자와 공자 등 유교 문화의 성자들을 모시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예로부터 여러 사람이 섞여들던 상거래 중심지로서의 면모다.

운남 최대 규모의 티베트 불교 사원
송찬림사 松赞林寺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 말과 야크가 풀을 뜯는 초원 너머 금빛으로 번뜩이는 사원. 샹그릴라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던 ‘송찬림사’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송찬림사는 운남성 최대 규모의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티베트 불교 성지로 꼽히는 라싸(拉에 있는 ‘포탈라궁’에 빗대어 작은 포탈라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지역 내 위상이 높다. 사원의 출발부터 신격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티베트 불교 수장)는 이 사원의 위치를 정할 때 직접 점술을 행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 이후 청나라 강희제와 함께 건축에 돌입해 3년의 공사 끝에, 1681년 송찬림사를 창건했다.

제7대 달라이 라마와의 인연도 송찬림사의 명성에 힘을 보탰다. 제7대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달라이 라마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해 신변의 위협을 받았고, 이에 송찬림사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이때 모든 생명체를 살찌우기 위해 강을 우유로 만드는 등 신성을 펼쳤다. 이후 청나라로 건너가 공식 달라이 라마 칭호를 받은 뒤 가장 힘들 때 인연을 맺은 송찬림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다.
현재 송찬림사는 티베트를 넘어 운남성과 사천성 지역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느껴지는 위용은 더욱 장엄하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본당, ‘자창(Zhacang)’을 필두로 8개의 건물이 층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물이 겹겹이 포개진 탓에 외려 방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자그마한 마을에 필적하는 규모다. 조금 오래된 지표지만 2012년 기준 송찬림사에 있는 승려의 수가 7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송찬림사의 본당은 최대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으니, 의도대로 거대한 불교 공동체를 이룩한 셈이다.

티베트 불교 미술은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정적이고 온화한 분위기의 우리나라 불교와는 완벽히 대척점을 이룬다. 휘어진 눈을 한 거대한 불상, 참선에 든 수도승의 생전 초상화들,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내려온 화려한 휘장들까지. 성대한 잔치가 한창인 현장처럼 화려하다.

벽화에 가득 그려진 탕카(唐卡, 티베트 불교 미술)는 가히 독보적이다. 벽의 무자비한 높이와 너비만큼 인정을 두지 않고 파괴적이다. 새파란 피부에 살벌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거나, 해골을 주렁주렁 매달고 악을 쓰며 화염을 내뿜는다거나, 남녀합치의 상태로 노려보거나. 유형에 따라 이런 탕카는 분노존, 합체불 등으로 불린단다. 이승의 온갖 번뇌를 나열하는 것이자, 이 번뇌와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겁박하는 신을 의미한다. 소리치고 화를 내고 위협하면서 수행을 종용한다. 좋은 말로 할 때, 참선하란 식으로.

글·사진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