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빅테크, 빅블러 ….
바야흐로 'BIG'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며, 수많은 기술과 데이터가 생성되고 서로 얽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는 바로 ‘과학 분야’다.
슈퍼컴퓨터, 과학기술 융합 핵심 인프라로 자리를 잡다
이제 과학기술 연구는 개별 실험실을 벗어나 다학제 간 협업과 교류가 요구되는 융합의 장에 접어들었다. 연구자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거나 신물질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장비 활용과 빅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만큼 복잡한 장비와 연구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실험설계 능력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이를 도와주는 핵심 기술이 바로 '슈퍼컴퓨터'다. 그간 슈퍼컴퓨터는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압도적인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빅데이터 처리에 활용된다. 더 나아가, AI 학습, 실험 시뮬레이션까지 수행하며 최적의 실험설계를 가능케 한다. 특히 슈퍼컴퓨터는 기후·기상, 기계항공, 고에너지물리 등 거대 계산이 요구되는 과학연구부터 관련 데이터 분석에 있어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신약·신소재 개발 역시 슈퍼컴퓨터 활용 유무가 큰 효율 차이를 가져온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최적 설계까지 도와주므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각국은 슈퍼컴퓨터 확보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고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Stargate Project)'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세계 초대 규모의 AI 슈퍼컴퓨터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과 소프트뱅크 그룹의 대형 자본이 참여했다. 이 밖에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AI 스타트업 xAI 역시 자사 AI 슈퍼컴퓨터 ‘콜로서스’의 규모를 무려 10배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중국은 군집 위성을 우주에 띄워 지구 밖에서 슈퍼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미 AI 모델이 내장된 위성 12기를 발사했으며, 총 2,800기까지 이를 늘려 대규모 네트워크를 구성할 방침이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의 경쟁력은?
이처럼 전 세계가 슈퍼컴퓨터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 수준과 경쟁력은 어느 수준일까? ISC 고성능 컴퓨팅 콘퍼런스에서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전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TOP500’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25년 6월 기준,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보유 수는 세계 7위(15대, 3%), 실측 성능은 9위(323.11페타플롭스)에 달한다. 플롭스(FLOPS)는 컴퓨터 성능 측정 단위로, 1플롭스는 1초당 1,000조 번의 부동 소수점 연산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국내 슈퍼컴퓨터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는 삼성전자의 'SSC-24'가 실측 성능 106.2페타플롭스로 세계 18위를 차지했다. 이어 네이버의 '세종(Sejong)'이 32.97페타플롭스로 50위를, 카카오의 '카카오클라우드(kakaocloud)'가 15.94페타플롭스로 5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국가 슈퍼컴퓨터 KISTI의 '누리온'은 연산 속도 13.93페타플롭스로 109위를 기록했다. 그간 누리온은 슈퍼컴퓨팅 서비스는 물론 과학기술, 산업, 공공부문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해 왔다. 6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던 원시 우주의 은하 형성 과정 규명을 3개월로 단축한 것을 비롯해 총 1,300만 건이 넘는 계산 작업을 지원했다. 그리고 2024년까지 1,153건 SCI 논문 생산에 이바지했다.
GPU 8,496장 장착한 슈퍼컴 6호, AI 연구 분야에서 활약할 예정
다만 현재 누리온의 평균 시스템 사용률이 77%~90%에 달해 과부하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에 KISTI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현재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 작업에 한창이다. 이론 성능 기준 600페타플롭스급으로 슈퍼컴퓨터 6호기는 누리온 대비 약 23배 빠른 연산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1위는 물론 세계 10위 이내 수준으로, 저장 공간만 누리온 대비 10배(20pb→205pb), 네트워크 대역폭은 4배 증가(100Gps→400Gps)할 것으로 예상된다.

6호기는 누리온과 비교했을 때 단순히 이론적 성능만 향상하는 것이 아닌, 핵심 연산장치의 변화가 두드러질 예정이다. 6호기는 기존의 CPU 대신 병렬처리 능력이 강화된 GPU를 도입해 성능을 크게 높일 예정이다. 엔비디아 GH200 등 최신 GPU 8,496장을 탑재해 자연어처리, 자율주행 등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AI 관련 연구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KISTI는 향후 슈퍼컴퓨터 6호 관련 내부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파일럿․메인 시스템 설치를 완료한 다음, 성능․기능․안전성 평가와 베타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을 전환점 삼아, 향후 국내 과학기술 연구 혁신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 : 김청한 과학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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