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매니토바의 작은 우크라이나 마을, 셀로 우크라이나. 마을 안 옛 시골 학교 교실에 앉았다. 자원봉사자 제리는 선생님이 되어 그 옛날 캐나다 프레리 지역 학교의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줬다. 이토록 재밌는 ‘라떼는(나 때는)’ 이야기가 또 있었나?

자, 얘들아. 쉬는 시간에 다들 화장실 다녀왔지? 그럼 수업 시작한다. 오늘은 옛날 캐나다 학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썰을 풀어 줄게. 나는 이 지역에서 실제로 학교를 다녔어. 지금 내 나이가 75살이니까…, 대충 1950~60년대 얘기지.
먼저, 우리 교실 창문이 남쪽 벽에만 쭉 달려 있는 거 보여? 그건 햇살이 교실 안으로 잘 들어오게 하려고 설계한 거야. 겨울이 긴 캐나다에서는 햇볕이 참 소중했거든. 하루는 늘 똑같이 시작됐어. 아침마다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향해 ‘오, 캐나다’ 하며 애국가를 부르고 경례했지. 그러고 나면 학생들은 각자 책상 위에 새하얀 손수건을 딱 펴 놓고 있었어야 했어. 선생님이 학생들의 손톱 상태를 검사했거든. 집안일 하느라 손에 때라도 껴 있으면 ‘깨끗이 손 씻고 와!’ 하는 호통 소리가 들렸지. 머리에 이가 있는지, 귀는 깨끗한지까지도 검사했다니까? 학생들의 위생 상태를 꼼꼼히 챙겼던 시대였지.

교실 뒤편엔 물통이 있었는데, 그 안엔 국자가 하나만 있었어. 다 같이 그걸로 물을 떠서 마셨는데, 한 명이 국자에 입을 대고 마신 뒤 통에 넣으면 다음 사람이 꺼내 마시는 식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좀 찝찝하지? 근데 그땐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 그러다 어느 날, 도시에서 온 세련된 젊은 여선생님이 부임하신 거야. 당시 대부분의 엄마들은 집에서 수프 끓이고 빵 굽는 워킹맘들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어딘가 달랐지. 한 번 입 댄 국자를 다시 물통에 집어 넣지 말라고 가르쳐 주시더라고. 종이를 접어 개인 컵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 주셨고. 와, 그땐 진짜 ‘신세계’였지.
당시 한 교실엔 5~6가정 아이들이 모였는데, 집집마다 6~7명은 기본으로 낳던 시절이라 자연스레 학생 수는 37명쯤 됐었어. 형제자매가 같은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 근데 이렇게 북적북적한 교실에서 질서를 잡는 게 쉽진 않았겠지? 그래서 체벌도 있었어. 말 안 들으면 손등을 맞거나 벽 보고 서 있었다? 까치발로 서서 칠판 위쪽에 그려진 동그라미에 코를 대고 있어야 했던 벌도 있었고. 언니가 벌서면 동생이 울고, 그런 일도 흔했어. 그리고 벌받은 애들은 대부분 부모님한테 말을 안 했어. ‘오늘 엄마한테 나 학교에서 혼났다고 말하지 마’ 하고 서로 입단속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땐 화장지도 귀해서 카탈로그 책을 찢어 썼어. 그중에서도 여자 속옷 광고가 나온 페이지는 내 첫 플레이보이 잡지나 마찬가지였지. 부모님은 그걸 알아채곤, 아들들이 못 보게 그 페이지만 따로 찢어 숨겨 놓곤 했다니까? 그러고는 딸이 화장실 간다고 하면 그걸 화장지 대신 주곤 했지. 나중에 진짜 화장지가 생기긴 했는데, 너무 귀해서 막 쓸 수는 없었어. 선생님이 “너 똥이야? (Are you No. 2?)” 하고 물으면, 그렇다고 해도 딱 세 칸만 줬어. 진짜, 정확히 세 칸!
장난도 참 많이 쳤지.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브라 끈을 잡아당기고 도망가곤 했어. 철없는 장난을 치며 컸던 때였지. 그러던 녀석들, 지금쯤 손주 재롱 보며 웃고 있을걸? 어때, 얘들아? 오늘날의 학교 모습과 비슷한 점도 많아서 놀랍지 않아? 이게 바로 우리 때 학교 이야기야. 자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