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센서가 감지하지 못해 신호등에 갇히는 이륜차 라이더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빨간불에도 주행이 가능한 데드 레드(Dead Red)법이 있다. (출처: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빨간불 앞에서 멈춰 서는 건 전 세계 모든 운전자의 기본 상식. 하지만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려도 합법인 경우가 있다. 미국 일부 주는 이륜차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빨간불을 그대로 지나가도 불법이 아니다. 이름도 다소 섬뜩한 ‘데드 레드(Dead Red)' 법이다.
직역하면 죽은 빨간불(Dead Red light). 데드 레드법이 등장한 배경에는 이륜차 운전자만의 불편함이 있다. 미국의 많은 교차로에는 유도 루프 센서가 매설돼 있다. 차량이 센서의 자기장에 변화를 주면 신호가 바뀌는 방식인데 문제는 이륜차다.
차체 금속량이 적어 센서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럴 때 라이더는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몇 분, 심하면 10분 이상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한다. 그 사이 주변 차량이 모두 지나가도 이륜차만 빨간불 앞에 갇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예외 규정을 둔 것이 데드 레드법이다. 이륜차가 신호 감지 센서에 인식되지 않거나 신호기가 고장 났을 경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빨간불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것이 데드 레드법이다. 미국 21개 주에서 이 법을 시행 중이다.
세부 규정은 주마다 차이가 있다. 미네소타는 이륜차가 완전히 정지한 상태에서 신호가 고장 났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불합리하게 긴 시간’ 빨간불이 지속되면 출발할 수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120초, 유타는 90초를 기다려야 한다. 아이다호는 최소 한 신호 주기를 대기해야 하고 테네시주에서는 신호기가 이륜차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출발이 가능하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라이더가 데드 레드법이 정한 대기 시간, 정지 의무, 신호기 감지 실패 조건을 지켰다면 빨간불 통과 자체는 합법으로 간주하지만 법적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면 단순 신호위반으로 보고 과실을 크게 부과한다.
데드 레드법은 라이더의 편의를 고려한 제도지만 동시에 무단 신호 위반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적용 조건을 엄격히 두고 있다. 이 제도는 결국 불편함을 줄이는 현실적인 해법과 도로 안전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의 문제를 보여준다.
미국 이외의 나라는 물론 한국에도 이런 법은 없다. 신호 감지 센서가 이륜차를 인식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신호를 지켜야 한다. 방법이 있다면 우회전이나 차로 변경을 통해 다른 경로로 빠져나와야 한다. 최근에는 이륜차 신호 위반 단속이 강화되는 추세라 후면 무인 단속카메라를 통해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륜차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커 우리나라에 데드 레드법이 도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빨간불에 달려도 되는 법’은 교통 문화와 제도의 차이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풍경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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