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는 사소한 부주의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출처: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주유소에서 10억 원대 람보르기니 최신 모델이 주유 도중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차량 운전자와 주유소 직원이 화상을 입었다. 차량 후미에서 시작한 불이 순식간에 번지면 자칫 대형 화재와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현장 직원의 신속한 초기 진화와 주유소에 갖춰진 다층 안전 장치, 소방 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피해 확산을 막았다.
주유소는 인화성 물질을 취급하는 특성상 다양한 안전 설비를 갖추고 있다. 주유기의 자동 차단 노즐은 연료가 가득 차거나 압력 변화를 감지하면 주유를 자동으로 멈춰 넘치거나 유증기 확산을 방지한다. 셀프 주유를 하면서 누구나 경험했을 정전기 방전 패드는 주유 전 인체에 쌓인 전하를 제거해 불꽃 방전을 예방하는 필수 과정이다.
차량이 갑자기 움직이거나 강한 충격이 가해질 경우 주유 호스가 자동으로 분리되고 밸브가 닫히는 ‘쉬어 밸브’ 구조도 적용된다. 주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휘발유 증기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지 않도록 유증기 회수 장치가 작동하고 있으며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주유기의 전원과 펌프 작동을 즉시 중단시키는 비상 정지 버튼, 방폭 설비, 이산화탄소 소화기, 화재감지기 등이 이중삼중으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장치도 ‘인간의 부주의’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 이번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는 소방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사고 차량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주유를 시도하기 전 엔진이 켜져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오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안전 수칙 위반이다.
폭염과 고온 환경은 주유소 화재 위험을 더욱 높인다. 휘발유와 디젤은 온도가 높을수록 휘발성이 증가해 증발한 연료 증기가 공기 중에 고농도로 퍼진다. 휘발유는 영하 43도에서도 인화될 수 있고, 일반 차량 엔진 블록 표면 온도는 90~120도, 배기 매니폴드는 800도에 이른다.
람보르기니와 같은 고성능 슈퍼카의 경우 엔진 온도가 900도 이상까지 올라가 만일에 하나 당시 주유 중인 차량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면 이는 휘발유를 취급하면서 한 손에 불붙은 성냥을 쥐고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시동만 끄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유소에서는 사소한 행동도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흡연은 물론이고 휴대폰 전자파, 정전기, 바닥에 흘린 소량의 연료, 금속 물체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까지 모두 점화원이 될 수 있다.
또한 주유 시에는 반드시 주유기를 주유구에 끝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 대부분의 차량에 적용된 캡리스 주유구는 올바르게 사용해야 유증기와 탄화수소 누출을 막을 수 있다. 기름이 다 찬 상태에서 무리하게 '조금만 더' 주유를 이어가는 일도 삼가해야 한다.
강남 주유소 화재는 피해 확산을 막았지만 본질적인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유소는 기본적으로 폭발 위험이 상존하는 장소로 아무리 많은 안전 장치가 있더라도 운전자와 작업자가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지난 2000년 당시 SK(SK 에너지)가 처음 도입한 셀프 주유소가 일반화하면서 최소한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셀프 주유소라고 해도 이런 행동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 관리 요원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 뉴 저지주는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셀프 주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브라질, 멕시코 등도 반드시 주유원을 고용해야만 주유소를 할 수 있다. 주유 중 시동 끄기, 금연, 정전기 제거, 올바른 노즐 사용. 이 단순하고 당연한 절차가 결국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최전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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