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당리는 제주 동쪽 구좌읍에 속해 있다. 비자림로와 중산간동로가 교차하는 이 마을은 고풍스러운 풍경을 필두로 카페, 게스트하우스, 소품숍 등 내로라하는 트렌디한 스폿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불휘공 본향당과 18개나 되는 오름, 제주를 좀 안다는 사람들도 미처 범접하지 못했던 신화와 자연의 어울림을 품은 마을이다.

제주 신당의 불휘공,
송당 본향당
제주 송당리를 둘러보기에 앞서 지도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송당리사무소’를 여행의 기점으로 삼는 것을 추천한다. 평일이라면 사무소 내에서 지도를 배부받을 수 있고, 주말이라면 주차장에 세워진 가이드맵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사용하면 된다. 송당리 지도는 각 스폿들의 명칭과 위치를 직관적으로 표기해 참고하기 좋다.

제주에는 무려 1만8,000여 명의 신이 산다. 신들은 마을마다, 그리고 제주민의 삶 곳곳에서 일상과 생로병사를 관장해 왔다. 당오름 기슭에 있는 ‘송당 본향당’은 이토록 많은 신의 시조 격인 ‘금백조할망’을 모시는 신당이다. 금백조할망은 백주또할망이라고도 하는데, ‘강남천지국’ 출신으로 제주로 건너온 후, 소로소천국을 만나 혼인했다. 금백조할망은 농경의 신이고 소로소천국은 수렵, 목축의 신이다. 생산력이 탁월했던 부부는 아들 18명, 딸 28명을 낳았고 368명의 손자 손녀를 얻었다. 이 자손들은 제주 각지로 흩어져 마을 신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송당 본향당은 제주도 각 마을에 있는 신당의 본원으로 추앙받았고 그렇게 ‘불휘공(태초의 뿌리)’이라 불렸다. 한편, 송당 본향당에는 소원에 관한 풍습도 전해진다. 오래전 마을 사람들은 신당에서 한지를 품은 채 소원을 빈 후, 나무에 걸어 두곤 했다. 현재도 본향당 담 너머 팽나무에 리본들이 매달려 있다. 제주와 신화를 존중하는 주민과 여행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밧돌, 안돌을 찍고
비밀의 숲으로
송당리를 대표하는 밧돌오름과 안돌오름은 당오름에서 불과 2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그 때문에 본향당을 탐방 후 다음 코스로 동선을 잡으면 편리하다. 두 오름은 나란히 위치한다. 오래전 사이에 놓여 있던 돌담을 기준으로 외석악(外石岳), 내석악(內石岳)이라 부른 것이 이름의 유래다. 크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밧돌은 능선에 나무가 많고 안돌은 초지 면적이 넓다. 하지만 둘 다 작고 완만해서 정상 굼부리까지 오르는 데는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지혜로운 여행자들은 두 오름 사이의 북쪽 들머리에서 출발해 자연의 순수미를 만끽한 다음, 안돌오름의 남쪽 입구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곧장 비밀의 숲으로 향한다. 비밀의 숲의 시그니처는 뭐니뭐니 해도 입구에 있는 민트색 커피 트레일러다.
거슬러 오르는 샘물,
거슨세미오름
송당리 비자림로로 들어선 차량이 거슨세미오름 삼거리에서 좌측 방향지시등을 깜박이는 이유는 대부분 비밀의 숲으로 가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이곳까지 와서 비밀의 숲만 보고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거슨세미오름이 지척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거슨세미는 오름에서 솟아난 샘이 한라산 방향으로 거슬러 오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주의 대부분 용천은 지대가 낮은 바다 쪽으로 흐른다. 그런 점에서 거슨세미오름은 매우 용감하고 진취적이다. 거슨세미는 들머리의 품격조차 남다르다. 화장실과 생태체험관은 물론 비자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휴식용 데크까지 놓여 있다. 제주의 자연을 체험하고 준비해 온 도시락까지 먹을 수 있는 최소 4성급 오름이다.

오름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중 입구에서 둘레길을 시계방향으로 반쯤 돈 뒤, 실제로 존재하는 거슨세미물을 지나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빛 샐 틈 없는 그늘에다 삼나무 숲이 발산하는 피톤치드로 인해 걷는 내내 상쾌함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제주에 왔다면 오름 하나는 올라야지,
아부오름
아부오름은 수산리와 송당리를 잇는 금백조로 변에 있다. 아부오름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 높이가 나지막해 정상까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데다 능선을 따라 한 바퀴 순환해도 30여 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부오름은 ‘제주에 왔다면 오름 하나는 올라야지’ 하는 여행객들에게 소박한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는 최적의 오름이다. 게다가 전망대까지 설치해 놓아 시야를 멀고 넓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에는 1.4km에 달하는 굼부리 능선을 돌아가며 수국을 심어 놨다. 내년 여름이면 올해보다 더 큰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고 수국 명소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쥘 예정이다.

사람들이 아부오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중에는 ‘스누피가든’도 포함된다. 이 주변으로 사진을 남길 만한 목장과 오름도 가득하다.
동화마을 내 돌조각 공원,
금백조할망의 이야기
송당리에서 발원한 제주 신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금백조할망과 소로소천국도 결국 해로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스타벅스 송당 R이 입점해 있는 동화마을은 제주 섬의 나무, 돌, 문화와 신화, 사계절 꽃을 테마로 조성한 개방형 공원이다.

동화마을 내의 돌조각 공원에도 금백조할망과 소로소천국의 자녀 석상 46기가 전시돼 있다. 당오름 본향당 주차장의 석상들과 같은 것들이다. 신화와 전설은 모르고 지나치면 그만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여행의 순간을 더욱 반갑고 풍요롭게 해준다. 동화마을의 석상들은 그런 면에서 제주의 풍습과 문화로 다가서는 좋은 예다.

마지막으로 제주관광정보센터에서 공지한 오름 산행시 주의해야 할 점을 공유한다. 오름은 주소가 산지로 되어 있어, 내비게이션 검색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며 주차장이 따로 없는 곳이 많다. 또한 일부 오름은 사유지로, 출입이 제한되거나 통제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이에, 오름 방문시에는 사전에 제주관광정보센터(064 740 6000) 등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 김민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