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m 길이의 거대한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 힌덴부르크 참사는 비행선 산업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출처:위키백과)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세계 최대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 1937년 5월 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미국 뉴저지에 착륙하는 순간 폭발한다. 선체 길이가 245m에 달하는 거대한 비행선이 화염에 휩쌓이는 처참한 현장의 모습은 이후 라디오와 TV를 통해 전세계로 전해졌다.
승객과 승무원 97명 중 36명 사망한 힌덴부르크 대참사 이후 '비행선은 위험하다'는 인식으로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힌덴부르크 대참사는 미국이 헬륨 수출을 금지하자 독일 업체가 인화 위험이 높은 수소(H₂)를 사용하면서 더 큰 인명사고로 이어졌다.
거대 비행선은 요즘 전혀 다른 용도로 주목을 받는다. 공중에서 바람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부유식 터빈(loating wind turbine), 즉 공중 풍력 발전(Airborne Wind Energy. AWE)에 비행선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공중 풍력 발전으로 다시 주목받는 비행선
공중 풍력 발전 비행선 상상도. 고도가 높을 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는 자연 현상의 특징을 활용한다.(오토헤럴드 DB)
2000년대 초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시작한 AWE는 소형 비행선 또는 드론이나 연 등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여러 업체와 기관들이 kW급 전력을 생산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구글이 인수해 주목을 받았던 마카니 파워(Makani Power)도 수백 kW급까지 시험 생산에 성공했지만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로 2020년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같은 시기 MIT 출신이 창업한 알테로스 에너지(Altaeros Energies)는 헬륨 비행선에 터빈을 매달아 알래스카에서 시범 운용을 진행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카이트젠(KiteGen), 독일의 스카이세일스 파워(SkySails Power), 네덜란드의 앰픽스 파워(Ampyx Power) 등이 잇따라 시도에 나섰지만 여전히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고 일부는 파산을 하기도 했다.
이들과 다르게 중국은 세계 최초의 메가와트급 부유식 풍력 발전 시스템 시험 비행 및 실증 사업에 도전, 주목을 받고 있다. 비행선 형태의 이 장치는 공중에서 풍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100m 높이의 대형 풍력 터빈과 맞먹는 발전량을 낸다.
중국, 세계 최초 MW급 AWE 도전
중국 연구팀이 개발한 S1500. 약 1500m 상공에서 1메가와트급 전기를 생산한다. (출처:베이징 SAWES 에너지 테크놀로지)
이번 프로젝트는 베이징 SAWES 에너지 테크놀로지와 칭화대학교, 중국과학원 산하 항공우주정보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S1500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발전 용량은 1메가와트(MW)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상용화한 공중 풍력 시스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S1500은 헬륨을 이용해 약 1500m 상공까지 날아 올라 고속으로 불어 오는 안정적인 바람을 활용한다. 최대 지상 200m 높이에서 풍력을 얻는 기존 터빈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SAWES는 “고도 1500m의 바람은 지상보다 약 3배 빠르며, 발전량은 약 27배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대 25년 이상 운영이 가능해 내구성, 경제성도 뛰어나다.
시스템은 탄소섬유로 제작된 12개의 마이크로 발전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전체 무게는 1톤 미만이다. 그렇다면 비행선에서 생산한 전기는 어떻게 지상으로 연결될까? 방법은 단순하다. 공중에서 생산된 전력은 케이블을 통해 지상으로 전송된다.
200배의 바람, 고도 1만m에도 도전
고도에 따른 풍력 에너지 밀도 변화. 지상 30m의 소형 풍력 터빈에서부터 600m 상공의 부유식 터빈(BAT)에 이르기까지,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력 밀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출처:오토헤럴드 DB)
SAWES는 이미 여러 차례 부유식 풍력 시스템을 시험해 왔다. 2024년 10월에는 발전량 50kW급 S500을 고도 500m까지 띄워 세계 최장 비행 기록과 최고 발전 기록을 세웠다. 이어 2025년 1월에는 100kW급 S1000을 고도 1000m 상공에서 시험한 전력이 있어 이번 실험 역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이 많다.
둔톈루이 SAWES CEO는 “궁극적으로는 부유식 풍력 시스템을 고도 1만m까지 띄우는 것이 목표”라며 “그곳의 바람은 지상보다 최대 200배 강력해 발전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인류에게 참혹한 비극을 안겨줬던 거대한 비행선이 이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모델로 역할을 바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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