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얼음 블록이 갈라지며 내부에서 전기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상상한 이미지. 캠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제임스 파툼비(James Patumbe) 박사 연구팀이 얼음에서 플렉소일렉트릭 효과와 표면 강유전성을 최초로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지긋지긋 했던 열대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고 가을을 알리는 소리로 시끌하다. 겨울은 아직 멀리 있지만 솔깃한 얘기가 있다. 추운 날씨,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얼음에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이론이 나왔다.
최근 네이처 피직스에 실린 캠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제임스 파툼비(James Patumbe) 박사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얼음은 단순히 차갑고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 연구진은 얼음을 구부리거나 휘었을 때 전기가 발생하는 플렉소일렉트릭(flexoelectric effect) 효과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플렉소일렉트릭 효과는 지금까지 압전 세라믹 같은 특수한 소재만이 갖고 있는 성질로 알려져 왔다. 연구진은 놀랍게도 얼음이 이들과 견줄 만큼 강력한 전기적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확인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얼음의 표면에서만 이 특별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약 영하 113도 부근에서 얼음 표면은 전기적으로 질서 정연한 배열을 형성해 강유전성이라는 성질을 드러낸다. 이는 얼음의 표면이 작은 전기 장치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얼음의 내부는 비극성이지만 표면은 전기적으로 활발한 성질을 가진 이중적 물질이라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혀 냈다. 이 발견은 번개 현상과도 연결된다. 논문에서는 뇌우 속에서 얼음 알갱이와 싸락눈이 부딪히면서 전하가 생겨나는 과정이 실제로 플렉소일렉트릭 효과 때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번개는 하늘 위 얼음 알갱이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전기 불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구는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극지방이나 우주와 같은 극저온 환경에서 얼음을 활용한 저비용 전력 변환 장치나 센서를 만들 수 있다. 달이나 유로파 같은 얼음 천체에서 현지 자원을 곧바로 이용해 발전기를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또한 기존의 비싼 세라믹 소재를 대신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얼음을 활용한다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번개 발생 원리를 응용해 대기 중에서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 수확 기술을 개발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결국 얼음은 단순히 우리에게 차갑고 투명한 물질이 아니라 전기를 품은 특별한 자원일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얼음이 가진 숨겨진 능력을 드러내며 우주 탐사, 재생에너지, 기후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얼음이 만든 전기로 전기차가 달리는 일도 가능해 질 수 있다. 얼음을 다시 바라볼 때, 단순히 녹고 얼어붙는 물의 한 형태가 아니라 미래 에너지 산업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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