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경량차는 영국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이 1960년대 초반에 제작한 필 P50(Peel P50)이다.(위키피디아)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자동차의 기록은 영국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이 1960년대 초반에 제작한 필 P50(Peel P50)이 보유하고 있다. 길이 137cm, 폭 99cm, 높이 100cm에 불과한 이 초소형 3륜차는 무게가 고작 59kg으로, 지금도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경량차다.
필 P50은 49cc 모터사이클 엔진에 3단 변속기를 갖췄지만 후진 기어가 없어 사람이 직접 들어 옮겨야 했고 승차 인원도 1명뿐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드물게 섬유강화 플라스틱(FRP) 차체를 사용해 경량화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자동차 역사에 남았다.
실제 양산 스포츠카 가운데 가장 가벼운 모델은 영국 경량차 전문 업체 케이터햄 카즈(Caterham Cars)가 2021년 선보인 케이터햄 세븐 170이다. 무게는 440kg으로 현존하는 도로 주행용 스포츠카 중 최경량이다. 단, 루프가 없는 2인승 로드스터 구조로 설계돼 일반적인 패밀리카와는 거리가 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학생팀 TU/ecomotive가 2017년 공개한 리나(Lina)의 무게는 310kg에 불과하다.(TU/ecomotiv)
이와 달리 ‘가장 일반적인 승용차 형태’를 갖춘 초경량 모델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학생팀 TU/ecomotive가 2017년 공개한 리나(Lina)다. 소형 해치백 디자인에 4명이 탑승 가능한 전기차임에도 무게는 310kg에 불과하다.
리나는 세계 최초로 섀시, 차체 패널, 일부 인테리어까지 아마(Flax)와 사탕무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PLA)을 적용했다. 전기 파워트레인, 유리, 브레이크 같은 핵심 안전 부품은 기존 소재를 유지했지만 나머지 구조는 모두 바이오 복합소재로 전환해 경량화와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리나 이후 TU/e 학생팀은 매년 새로운 콘셉트카를 발표하며 지속 가능한 이동성의 가능성을 확장해 왔다. 2018년에는 생산에서 폐기까지 차량 생애 전 과정을 고려한 노아(Noah)를 선보였고, 2020년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병과 재활용 ABS를 활용한 루카(Luca)를 제작해 ‘폐기물을 껴안은 차’라는 별칭을 얻었다.
2020년 공개한 루카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병과 재활용 ABS를 활용한 모델로 일반적인 소형 전기차와 다르지 않은 성능도 갖췄다. (TU/ecomotiv)
루카는 후륜에 두 개의 전기 모터를 장착해 최고 시속 90km, 1회 충전 주행거리 220km를 기록했으며 배터리를 제외한 무게가 360kg에 불과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2022년에는 두 가지 새로운 실험이 이어졌다. 젬(Zem)은 주행 중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저장하는 DAC(Direct Air Capture) 기술을 적용,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공개된 에터나(Eterna)는 모듈형 부품 교체 구조를 적용해 차량 수명을 2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가장 최근 모델인 피닉스(Phoenix, 2023)는 순환성에 초점을 맞췄다. 단일 소재 구조와 스마트한 조립 방식을 적용해 부품의 75% 이상을 클로즈드 루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일반 자동차의 평균인 약 21%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일반 자동차는 유럽 기준으로 자원 재사용·회수율 95%, 재활용율 85%라는 높은 수치를 갖지만, 이는 소재가 품질이 떨어진 형태로 전환되는 다운사이클링이 포함된 결과다. 반면 TU/e 학생팀의 실험들은 동일 품질로 재활용되는 진정한 순환성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학생팀이 가장 최근 공개한 피닉스(Phoenix, 2023)는 부품의 75% 이상을 완전 순환 재사용이 가능하다.(TU/ecomotiv)
30명 남짓한 학생들이 1년에서 1년 반마다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TU/e 팀의 도전은 단순한 학문적 실험을 넘어 업계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대기업도 할 수 있다.” 작은 차고에서 시작된 이들의 실험은 이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미래의 해답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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