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를 벗어나 대만 남부의 매력을 만날 시간.
푸른 바다와 찬란한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 가오슝에 닿았다.
가오슝을 꾸미는 단어들
대만 남부의 중심 도시인 가오슝을 꾸미는 말은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 대만 제2의 도시와 해양수도라는 말이다. 인구는 타이중에 역전돼 세 번째로 많지만, 해운업과 중공업 등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타이베이 다음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 특성은 여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바다는 일몰이 환상적인 해수욕장을 만들어 냈고, 대만 수출의 거점인 항구는 문화 공간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동적인 도시 바이브와 우아한 예술 문화도 확인할 수 있다. 보얼예술특구와 시립미술관, 벽화들이 도심을 화려한 색감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 밖에도 풍부한 자연 생태, 근대건축물, 온천 등 여행할 만한 콘텐츠가 풍부하다.
이러한 매력을 확인하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만 두 하늘을 잇는 직항편의 탑승객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나 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타이베이를 비롯해 북부 여행지와 묶어 대만 전국 일주에 나서도 된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로 단 1시간 30~40분이면 이곳에 도착한다. 이제 당신의 발걸음이 더해질 차례, 가야 할 여행지는 에디터가 추려 놓았다.
내 마음속 랜드마크, 치진섬
가오슝 여행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구산 페리 터미널(Gushan Ferry Terminal)에서 페리를 타고 단 5분이면 치진(Cijin) 지역에 발을 들인다. 항구, 바다와 어우러진 도심 등이 보여 짧은 탑승 시간조차 즐거운 여행의 일부가 된다. 또 알록달록한 주택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등 갖가지 색깔로 외관을 단장한 건물들부터 찾아다닌다. 원래 이런 모양새였던 건 아니고, 지난해 진행된 페인팅 하우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치진섬과 구산 수산시장 주변 약 100개의 건물이 옷을 갈아입었고, 큰 호응을 얻었다.
좀 더 넓은 각도로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치호우 포대(Cihou Fort)를 선택했다. 1870년대 가오슝 항구를 방어하는 용도로 지어진 붉은색 포대는 지금은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색상을 지닌 치진섬과 푸른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포대 아래 또 다른 군사작전 공간인 터널은 치진 별하늘 터널이 돼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치진해협과 높이 솟은 석회암벽 앞에 서는데, 흡사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우렁찬 파도 소리만 들린다.
치진섬 중심부로 오면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뒤엉켜 놀고 있다. 다양한 식당과 노점상이 있어 야시장 분위기가 나고 사원과 해수욕장, 무지개 교회 등 볼거리도 많다. 걸어 다녀도 충분한데 편하게 다니거나 색다른 체험을 원한다면 4륜 전기자전거를 빌리면 된다. 치진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노을이다. 모래사장이나 펍에 앉아 자연의 색이 만든 황홀한 그러데이션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된다.
영물이 빌어 준 안녕, 용호탑
가오슝 대표 명소인 연지담 풍경구(Lotus Pond Scenic Area)는 평화로운 호수와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노란색, 주황색 등 채도 높은 색을 입은 2개의 탑, 용호탑(龍虎塔, Dragon Tiger Tower)으로 모인다.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존재감을 지녔고, 특별한 입구 덕분에 사진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탑이 품고 있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탑 맞은편에 자리한 자제사(Chiji Temple) 신도들이 마을의 평안과 풍수의 조화를 기원하며 1976년에 용호탑을 세웠다. 전통 정원의 특징 중 하나인 지그재그 모양의 구곡교를 건너면 거대한 용과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두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먼저 들어가야 할 입구는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용의 입으로 들어가 호랑이 입으로 나와야 하는 게 순리다.
용은 중화권에서 권위와 행운, 신성함을 상징하고,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수호자다. 즉, 사람들은 용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행운을 들인다고 믿고, 호랑이를 통과하면서 모든 액운을 씻어 낸다고 여긴다. 가오슝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아도 될 만한 스토리텔링이다. 게다가 7층 높이의 꼭대기에서 시원한 풍경을 보고 탑을 나오면 마음속 응어리도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든다.
탑 내부 또한 단조롭지 않다. 도교 설화를 대만 전통 예술인 고지 도자기(Koji Pottery, 전통 예술)로 표현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입체적으로 표현된 인물과 동물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허기를 느낄 수 없는 이유, 루이펑 야시장
야시장은 대만의 생활 문화다. 여행자는 그 속에 들어가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식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가오슝에서는 루이펑, 류허, 난화, 펑산 등 8곳에서 야시장이 열리는데,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어 여행자들도 쉽게 갈 수 있다. 규모, 접근성, 로컬 등을 기준으로 보면 루이펑 야시장(Ruifeng Night Market)이 1순위다. 가오슝 아레나(Kaohsiung Arena)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3분이면 야시장 초입에 도착한다. 총요빙(대만식 파전) 맛집에 줄 선 사람들이 보이면 맞게 찾아온 것이다.
루이펑 야시장은 주변 길거리 상점들이 하나씩 모여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1,000개 이상의 노점과 가게가 들어섰다. 지파이, 꼬치구이, 총요빙, 핫팟, 취두부, 고구마볼, 탕후루 등 대만 인기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으며, 자정까지 문을 열어 야식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온종일 허기를 느낄 수 없는 이유다. 먹거리는 물론 가벼운 오락거리, 의류, 기념품 상점도 있어 휙 둘러보기에 괜찮다. 또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가오슝의 또 다른 쇼핑 문화와 유행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 본 적 없을 걸? 다강교
110m 길이의 백색 다강교(大港橋, Great Harbor Bridge)는 물 위로 솟아오르는 돌고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근처 고래를 모티브로 한 가오슝 뮤직 센터(Kaohsiung Music Center)와 조화를 이룬다. 매끄러운 곡선은 마치 호화로운 요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리가 보얼예술특구(Pier-2 Art Center)와 문화공간 다강창고(Dagang Warehouse)를 이어 주고 있는데,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면 기항지 투어를 즐기는 기분도 든다. 게다가 다강교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오후 3시가 되면 수평으로 회전한다. 도개교처럼 수직으로 열리는 다리는 익숙한데, 180도 수평으로 회전하는 다리는 생소하다. 이러한 움직임을 대만 최초로 뽐냈고, 주말(금~일요일)에는 오후 7시에 한 번 더 자랑한다.
다리 위에서 보는 경치도 훌륭하다. 감각적으로 치장한 항구와 건축물, 일상을 즐기는 시민들이 어우러지고, 해 질 녘에는 진한 노을 빛이 사방에 스며든다. 게다가 접근성이 좋아 여행 일정을 구성하기에 수월하다. 가오슝 노면전차(LRT) Dayi Pier-2역과 맞닿아 있어 가오슝 시립미술관, 하마싱 철도문화원구, 보얼예술특구 등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현지인 MZ 핫플, 보얼예술특구 & 다강창고
가오슝에서 가장 예술적인 상권은 보얼예술특구와 다강창고다. 보얼예술특구는 다이 코리도(Dayi Corridor), 다용 아트(Dayong Art), 펑라이 야외광장(Penglai Area) 등의 구역으로 나뉘며 곳곳에 예술 작품이 설치돼 있고, 각종 편의 시설도 자리했다.
예술특구 건너편에 있는 다강창고는 일몰과 야간에 활용할 만한 공간이다. 매혹적인 빛으로 물드는 다강교와 잔잔한 바닷물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고, 내부에는 대만 디저트, 패션, 잡화, 뷰티 등 지갑을 열게 하는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가오슝의 센강, 아이허강 & 유바이크
‘사랑의 강’이라는 뜻의 아이허강은 가오슝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과거 심각하게 오염됐던 아이허강은 정화사업을 통해 2000년대 초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일상적인 산책로이자 관광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야경, 유람선, 러브 피어(Love Pier) 등을 즐길 수 있고, 대만의 따릉이 유바이크를 활용해 강변 라이딩도 가능하다. 앱(YouBike)에서 신용카드(VISA·MasterCard 등)를 등록하면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4시간까지 30분당 10대만달러(약 460원), 전기자전거는 20대만달러다.
대만 여행의 필수품, 이지카드
대중교통(버스·지하철·페리·고속철도 등)과 관광지, 식당, 편의점, 쇼핑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카드다. 가오슝을 포함해 대만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만 자유여행 필수품이다.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인천 국제공항, 타오위안 국제공항(타이베이), 가오슝 국제공항 등에서 수령하면 된다. 가격은 100대만달러(약 4,600원)다.
가오슝으로 가는 길, 인천·김포·부산 직항편
8월 기준, 한국에서 가오슝으로 가는 직항편은 인천-가오슝(중화항공·티웨이항공·에바항공), 김포-가오슝(타이거에어 타이완·제주항공·티웨이항공), 부산-가오슝(에어부산) 등이 있다. 비행 시간은 2시간 30분~3시간이라 2박 3일 또는 3박 4일 일정의 단거리 여행에 적합하다. 또 가오슝 국제공항에서 도심까지 가까운데, 중심부인 미려도역까지 지하철로 16분 소요된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대만관광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