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연료는 자동차에서 배출되거나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해 친환경 에너지로 물에서 분해한 수소와 결합해 만든 액체 에너지다. (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만약 원하는 만큼 석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고 대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가솔린·디젤·항공유 같은 액체 연료를 합성하는 기술, 이른바 합성연료(e-Fuel)가 미래 에너지의 해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합성연료는 화학적으로 기존 석유와 거의 동일해 주유소·탱크로리·내연기관 등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탄소중립 가능성이다. 자동차가 달릴 때 배출하는 CO₂는 애초에 연료 생산 과정의 공기 중에서 미리 포집한 CO₂와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된다.
이론적으로는 ‘물과 공기’에서 에너지를 추출해 다시 쓰는 무한 순환이 가능한 셈이다. 물론 실제 환경 효과는 합성연료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전기가 얼마나 청정한가에 달려 있기는 하다. 화석 연료로 생산한 전기라면 탄소중립의 의미가 그 만큼 사라지기 때문이다.
합성연료의 뿌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독일 화학자 프란츠 피셔(Franz Fischer)와 한스 트롭슈(Hans Tropsch)가 개발한 피셔–트롭슈(Fischer–Tropsch) 공정이 그 시작이다. 석탄을 가스화해 얻은 합성가스(CO+H₂)를 촉매 반응으로 액체 연료로 바꾸는 방식으로, 석유가 부족했던 독일은 이를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기술’로 활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항공기와 차량 상당수가 이 연료로 움직였다. 전쟁 이후 값싼 원유 공급이 재개되면서 연구는 뒷전으로 밀렸지만,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계기로다시 주목을 받았다. 석탄이 풍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지금도 소량의 합성연료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합성연료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포르쉐다. 지난해 포르쉐는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에 세운 ‘하루 오니(Haru Oni)’ 파일럿 플랜트에서 생산한 합성연료를 스포츠카 911에 주유해 실제 도로를 달렸다. 모터스포츠 대회 ‘슈퍼컵’에서도 이 연료를 시험적으로 사용했다.
포르쉐만의 시도는 아니다. 도요타·마쓰다·스바루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합성연료와 수소 혼합연료를 함께 쓸 수 있는 차세대 내연기관 엔진을 공동 개발 중이다. BMW와 아우디 역시 모터스포츠와 고성능 모델에 합성연료 테스트를 적용하고 있으며,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도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연기관의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한계도 있다. 합성연료는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전기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낮고, 생산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몇 배나 비싸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 20억 대가 넘는 내연기관차가 여전히 도로를 달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합성연료는 현실적 대안의 하나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항공·해운처럼 배터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합성연료는 전기차와 맞서는 적대적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탄소중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전기차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업계가 이를 단순한 ‘기술적 변주’로 치부하지 않고 비용 절감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장기 투자를 병행하는 일이다.
합성연료가 전 세계 16억 대에 이르는 내연기관차의 마지막 반격이 될지,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내연기관을 당장 버릴 수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합성연료에 대한 관심만큼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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