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오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해 온 여행지다. 대한민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 온 일본의 도시들은 여행에서 즐거움, 그 이상의 의미를 찾게 해 준다. 양국의 역사와 문화, 이 연결 고리를 따라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일본의 특별한 여행지, 9곳을 소개한다.
조선통신사의 흔적
나가사키 NAGASAKI
나가사키는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현으로 5개의 반도와 총면적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일찍이 교류의 요충지이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일본이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던 시기에도 나가사키만큼은 외국과의 교역이 허용된 항구도시로 열려 있었고, 이러한 성격은 오늘날 나가사키인들의 ‘글로벌 마인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한편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조선통신사가 머물던 땅이기도 하다. 덕분에 현재까지도 한일 교류의 발자취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나가사키에서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일 관계가 단절과 갈등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과 문화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나가사키는 한국인에게 단순한 일본 여행지가 아니라, 오래된 이웃과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현장이다.
근대 교류의 현장
히로시마 HIROSHIMA
혼슈의 서부, 주고쿠 지방 중앙에 위치한 히로시마는 140여 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히로시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미야지마(이쓰쿠시마)’다. ‘일본 삼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우아한 미모를 겸비하고 있어 섬 전체를 특별사적으로 지정했다.

미야지마에 자리한 이쓰쿠시마 신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는데, 바다 위에 자리한 이색적인 도리이(Torii)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근대 한일 교류의 흔적을 가장 선명히 만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의 배경지로 알려진 히로시마현의 토모노우라는, 조선통신사가 ‘일본 제일의 절경’이라 칭한 일화로 유명하다. 옛 정취와 바다 풍광이 어우러진 이곳은 꼭 한 번 여행을 권할 만하다. 현재 히로시마에선 조선통신사 축제도 매년 열린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한일 공동등재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통신사의 길목
야마구치 YAMAGUCHI
야마구치는 수많은 섬, 흰 모래가 가득한 모래사장, 아름다운 바다를 푸른 소나무가 널리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그 풍경 속에서 잔잔한 수면에 아치형 다리가 고요히 비치는 긴타이교가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현의 중앙에 있는 야마구치시는 14세기 중반, 당시의 수도였던 교토를 모방해 도시를 조성한 덕분에 ‘서쪽의 교토’라고도 불린다. 조선통신사가 부산에서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 해협을 건너면 닿는 곳이 바로 야마구치현이다. 당시 통신사들은 야마구치의 ‘시모노세키’와 ‘호후’ 등 도시를 거쳐 교토와 도쿄로 향했다. 참고로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가 있는 시모노세키는 일본 도시 중 최초로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은 곳으로, 인근 야마구치 우베공항으로는 매년 한국에서 전세기가 운항해 양국의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도공이 남긴 유산
사가 SAGA
사가는 규슈 지역의 7개 현 중 규모가 가장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다채로운 매력으로 꽉 들어차 있는 곳이다. 사가는 일본 도자기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그 시작에 조선의 도조(陶祖) ‘이삼평’이 있다.

그는 정유재란 당시 히젠국(지금의 사가현과 나가사키현) 사가번의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군대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인데, 그의 손으로부터 일본 도자기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아리타의 도자기 거리를 걷다 보면 백자의 땅, 조선에서 건너 온 기술과 미학이 일본의 양식과 어떻게 결합하여 발전했는지를 만나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규슈 올레길을 걷는 한국인도 늘고 있는데, 그중 다케오 코스는 인기 올레길 중 하나다. 더불어, 한국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다케오 시립도서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뜨거운 축제의 고장
사이타마 SAITAMA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는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과 소도시의 정취, 그리고 풍요로운 자연이 어우러진 여행지다. 히다카시에 자리한 고마 신사는 고구려 왕족의 후예가 대대로 신사의 대표직을 이어 오고 있는 곳으로, ‘출세의 신사’라 불리며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찾는 유명한 참배처다.

또 다른 매력은 ‘작은 에도’로 불리는 가와고에다. 전통 창고 건축과 종탑, 돌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가가 옛 일본의 정취를 고스란히 보여 주어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직통 전철을 이용하면 사이타마 주요 명소까지 환승 없이 편리하게 닿을 수 있다.
조선통신사의 마지막 여정
도치기(닛코) TOCHIGI
도치기는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이용할 경우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이곳은 일본 왕실이 사랑한 고장으로 그들의 별장이 자리하고 있는 북부의 ‘나스’, 그리고 고급 리조트와 스키장은 물론, 산속 곳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사가 있는 ‘닛코’ 지역이 대표적이다.

도쿄 아사쿠사에서 럭셔리 열차 ‘스페시아 X’를 타고 곧장 이동할 수 있어, 일본 철도의 색다른 매력도 경험할 수 있다. 도치기현의 역사 속에는 한국과의 인연이 깊이 새겨져 있다.

닛코에서 가장 유명한 사당인 도쇼구(東照宮)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조선통신사가 사당 앞 삼나무길을 따라 무려 12차례나 찾아왔던 곳이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간 길의 최종 지점이 바로 도치기현이었다고. 여행길에서 한국식 종이나 등롱 같은 유물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산과 온천의 땅
가고시마 KAGOSHIMA
일본 본토 최남단, 규슈 남부에 위치한 가고시마는 ‘사쿠라지마’로 유명하다. 언뜻 섬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섬처럼 보이는 화산이다. 수백 년 전부터 화산 폭발로 인한 분출물들이 바다를 메워 가며, 결국에는 육지가 됐다.

가고시마는 화산 활동이 워낙 잦은 땅이다 보니, 자연스레 온천이 발달했다. 천연 모래찜질 온천으로 잘 알려진 사쓰마반도 남단에는 일본 대표 모래찜질로 유명한 이부스키가 자리한다. 한편 가고시마는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품은 땅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가고시마 이부스키의 명문 료칸 하쿠스이칸은 한국과 깊은 교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끌려온 조선 도공의 후예인 심수관 가문은 400년이 넘도록 가고시마 땅에서 도자기 명맥을 잇고 있으며, 현재도 15대 심수관이 그 이름 그대로 계승해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 인천-가고시마 직항 노선이 운행 중이며,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을 이용할 경우 1시간 30분 정도면 가고시마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골 바이브
이와테(모리오카) IWATE
도호쿠 지방의 이와테현은 도시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 시절 방학이면 으레 내려갔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댁 같은 느낌의 분위기. 단아한 다다미 집과 녹음 짙은 숲, 넓게 펼쳐진 논밭이 서정적인 풍경을 이루는 곳. 일본만의 단아한 정서를 느낄 수 있고,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와테다.



이와테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주손지 곤지키도’가 있다. 현의 중심지 모리오카는 한국의 함흥냉면이 현지 식재료와 어우러져 탄생한 ‘모리오카 냉면’으로 유명하며, ‘왕코소바’와 ‘자자멘’과 함께 모리오카 3대 면 요리, 이른바 ‘냉면 지도’를 그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익숙한 향기를 찾아서
이바라키 IBARAKI
이바라키는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80km 거리에 위치한다. 도쿄에서 현의 중심부인 미토시까지는 차로 넉넉잡아 1시간 30분, JR을 이용할 경우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이바라키현의 대부분 지역은 전부 농촌이어서 고즈넉한 옛 풍경과 전원의 감성을 느끼며 여행하기 좋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이바라키현은 연평균 기온 14도, 연간 강수량 1,250mm의 온화한 내륙성 기후가 특징이다. 잔디가 워낙 질이 좋기로 유명해, 곳곳에 골프장도 많이 위치한다. 현재 이바라키 공항은 한국과의 직항편이 운항 중이라 접근성이 좋아, 많은 한국인 골퍼들이 이바라키의 다양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있다. 이와 함께 해마다 골프 관련 상담회와 교류 행사도 열리며, 이바라키는 골프 여행지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히고 있다.

이바라키에는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카이라쿠엔’도 있다. 특히 매화가 만개하는 1월 말에서 2월 사이에는 정원이 은은한 향기와 꽃빛으로 물들어,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찾는다.
글 트래비 취재협조 JNTO(일본정부관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