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떠올리면 늘 도쿄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먼저 그려진다. 그러나 대도시의 화려함 뒤편에는 한국인들에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소도시 여행지가 숨어 있다. 산과 바다, 오래된 신사와 온천 마을, 그리고 사계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10곳의 현을 소개한다.

온천의 본고장
군마 GUNMA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최남단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는 무려 2,000여 개가 넘는 온천 지대가 분포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온천 중 규모와 수질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군마현의 ‘구사쓰’다.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 기후현의 게로 온천과 더불어 일본 3대 온천으로 꼽힌다. 구사쓰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온천수가 솟아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1분당 무려 3만2,300L 이상의 자연 온천수가 솟아난다. 구사쓰의 상징은 ‘유바타케’. 일명 ‘온천 밭’으로 불리는 구사쓰 최대의 원천으로,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온천수가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은 세계 어디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유황 냄새는 코를 찌르고, 온천 밭에서는 더운 김이 하염없이 피어오른다.
이뿐만 아니라 이카호 온천, 미나카미 온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온천 마을이 군마현에 특히 밀집돼 있다. 도쿄에서 특급열차를 이용할 경우 대략 3시간,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후지산을 품은 곳
야마나시 YAMANASHI
야마나시는 후지산의 고장이다. 후지산 북쪽 기슭에 자리해 있으며 ‘후지 5호(5곳의 호수)’라 불리는 호수와 산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 압권이다. 후지 5호 중 한 곳인 ‘모토스호’는 일본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로 손꼽히며, 1,000엔 지폐 그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게다가 야마나시현의 78%는 전부 삼림 지역이다. 덕분에 수많은 공원이 자리하는데, 그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곳은 ‘후지 하코네 이즈 국립공원’이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국립공원이자, 험준한 곶과 여러 화산섬, 동굴과 신비로운 원시림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나미 알프스 국립공원, 지치부타마카이 국립공원, 그리고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등에서 취향에 맞는 하이킹 코스를 구성해 봐도 좋다.
참고로 야마나시 지역은 일본 유수의 와인 산지로도 유명한데, 와이너리 투어와 온천 여행을 함께 즐기는 코스가 특히 인기가 많다. 도쿄에서 2시간 남짓으로 접근이 쉬워 현지인들에게는 주말 힐링 여행지로도 사랑받는다. 자연, 미식, 휴식을 한꺼번에 충족시켜 주는 곳이다.
해안 절경과 아와라 온천
후쿠이 FUKUI
웅장한 주상절리부터 푸른 바다, 전통적인 사찰과 정원, 역사 유적지, 온천, 공룡박물관까지. 후쿠이가 품고 있는 콘텐츠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바다와 온천을 중심으로 후쿠이를 여행하고 싶다면 북부의 ‘사카이’와 ‘아와라’를 추천한다. 고마쓰공항에서 차로 약 30분, 대중교통으로도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사카이에는 후쿠이를 대표하는 국가 지정 명승, ‘도진보’가 자리한다. 바다의 거친 파도가 만들어 낸 높이 20~25m의 주상절리 암벽으로 이루어진 비경이다.

아와라 온천은 130년 온천 역사를 자랑하는 후쿠이현 유일의 온천 마을이다. 자연 속 안식을 누리고자 한다면 ‘에이헤이지’로 향해 보자. 780년 역사의 사찰로 장엄하게 솟은 삼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요코칸 정원, 이치조다니 아사쿠라 가문 유적, 후쿠이성터 등 후쿠이 여행에는 언제나 곁에 자연의 녹음이 있다.
영적 휴양의 땅
와카야마 WAKAYAMA
와카야마는 간사이 공항에서 차량으로 45분 거리에 있어, 교토와 비슷한 접근성을 지닌다. 태평양을 마주한 해안 절경과 깊은 산림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대표적인 관광 자원은 온천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유노미네 온천을 비롯해 현 내 500여 곳의 온천이 자리한다.
트레킹을 하기도 완벽하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순례길 ‘구마노고도’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결연 관계로, 2곳 모두 완주한 순례자에게는 별도의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와카야마를 대표하는 해안 명소, ‘산단베키’도 빼놓을 수 없다. 산단베키는 높이 50m의 절벽이 2km에 걸쳐 이어지는 주상절리 암벽이다. 지하 36m 아래로 형성된 산단베키 해식 동굴도 함께 보면 더욱 좋다. 오랜 세월 거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내부가 약 200m에 달하는 동굴이다. 천장에는 지층에 묻혀 있다가 다시 드러난, 약 1,600만 년 전의 해저 모래와 진흙 무늬가 새겨져 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곳.
협곡이 품은 비경
도쿠시마 TOKUSHIMA
일본 본토를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그 동부에 도쿠시마가 있다. 최근 이스타항공 직항 개설로 인기 여행지로 떠오른 도쿠시마는, 이스타항공과 세븐일레븐의 협업으로 ‘도쿠시마 라면’이 출시되며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 명화 1,0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오쓰카 국제미술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마을로 알려진 카미야마, 시코쿠 88개 사찰을 도는 1,400km의 불교 성지 순례길, ‘시코쿠 헨로미치’의 시작점인 ‘료젠지’ 등 볼거리도 다채롭다.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에서 8월1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축제다. 흥겨운 춤과 음악, 그리고 수십 개의 렌(아와오도리를 추는 단체)으로 구성된 전통 무용수들의 행렬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와오도리는 일본 내에서도 소문난 축제로 꼽힌다.

풍부한 자연과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지인 오보케 협곡과 이야 온천은 도쿠시마가 품은 대자연의 하이라이트. 가파른 계곡에 자리한 온천 마을에서 즐기는 노천온천은 도쿠시마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고유의 운치로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협곡에서는 래프팅과 리버 어드벤처가 가능해, 모험과 치유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에히메(마쓰야마) EHIME
에히메라는 이름은 일본 역사서 <고사기>에 나오는 아름다운 에히메 여신에서 유래했다. 아름다운 이름처럼 풍요로운 자연과 온화한 풍광이 특징인 현이다. 특히, 일본의 에게해로 불리는 ‘세토내해’를 끼고 있어 바다 풍경이 흔한 일본에서도 바다 경치로 유명하다. 시마나미 해도는 에히메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스폿이다.
에히메현의 이마바리와 히로시마현의 오노미치 사이에 떠 있는 6개의 섬을 징검다리처럼 이어 놓은 해상도로로, 약 60km 정도에 달하는 길을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다. 에히메현과 고치현 경계에 있는 시코쿠 카르스트 지형은 마치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여행의 마무리는 역시나 온천. 에히메현 마쓰야마 ‘도고 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무려 3,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도고 온천을 대표하는 풍경으로는 온천가 중심에 있는 도고 온천 본관을 빼놓을 수 없다. 목조 3층 건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아부라야’의 모델이 된 곳 중 하나다. 한국에서 마쓰야마까지는 직항편이 운항해 접근성이 좋으며, 아케이드 거리와 도고 온천, 가라쿠리 인형시계, 일본식 스타벅스 건물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뚜벅이 여행자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비와호를 품은 풍경
시가 SHIGA
일본의 심장부인 시가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비와호다. 400만년의 역사를 품은 일본 최대의 호수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왔던 곳이다.

비와호를 가장 극적으로 만나는 방법 중 하나는 ‘비와호 테라스’다. 호수 서쪽의 고카이 산에 자리해,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호수의 푸른 수면이 발아래로 쏟아진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입은 풍경은 사계절 내내 매혹적이다. 드넓은 호수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해묵은 근심조차 어느새 가벼워진다.


비와호 동쪽, 나가하마 쪽으로 향하면 하코다테 산 전망대가 기다린다. 16세기 전국시대 격전지였던 이곳은,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비와호 북쪽과 산들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명소다. 호수 서쪽과 동쪽,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마주하는 장대한 풍경은 ‘호수의 땅’이라 불리는 시가현의 스케일을 온전히 체감하게 만든다.

호수의 서쪽 오쓰시에는 또 다른 명소인 ‘라 코리나’가 있다. 바움쿠헨으로 유명한 클럽 하리에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일본의 건축가 후지모리 테루노부가 설계한 잔디 지붕 건물이 특히 인상적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은 마치 동화책 속 한 페이지를 펼쳐 보는 듯하다. 갓 구운 따끈한 바움쿠헨과 카스텔라, 도라야키 등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 최적의 장소다.

한일 교류의 오랜 흔적을 품고 있는 역사적 장소도 주목할 만하다. 비와호 동쪽에 자리한 하쿠사이지(백제사)는 고대 한국 백제에서 건너 온 승려와 학자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이름과 창건 전승은 백제와 일본이 불교와 학문을 매개로 교류했던 역사를 보여 준다.

한편 비와호 서쪽의 오쓰궁터는 백제 멸망 후 건너 온 도래인들이 정치와 학문, 건축에 참여했던 사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 고대 국가 형성과 한일 교류의 교차점을 상징하는 장소다. 이 밖에도 시가현에는 아즈치 성, 히코네 성, 오미신궁 등 역사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유적지가 많다.

오랜 시간을 품은 비와호의 물결, 길 위에서 마주한 잔잔한 풍경들. 고성이 전해 주는 짙은 역사의 숨결까지 더해지니, 시가현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시간이 살아 숨 쉬는 무대가 된다. 호수의 고장, 시가현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마음 깊숙이 따뜻한 파문을 남긴다.
예술과 온천, 그리고 우동
카가와(다카마쓰) KAGAWA
카가와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현이지만, 품고 있는 매력은 결코 작지 않다. 세토내해에 떠 있는 섬들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풍경은 힐링 그 자체고, 나오시마와 데시마 등 일본에서 손꼽히는 ‘예술의 섬’을 품고 있다.

그중 카가와현의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바로 아티스트 구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과 노란 호박’이다. 나오시마 섬에 공공조각으로 설치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나오시마를 예술의 메카로 거듭나게 했다. 이 밖에도 마을 곳곳에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숨어 있다.

카가와는 우동의 본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밀과 소금이 풍부하고 물이 좋아 사누키 우동이 유명한데, ‘사누키’라는 말도 카가와의 옛 지명이었다. 카가와의 중심인 다카마쓰에는 편의점보다 우동집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특히 고토히라 지역에는 ‘나카노 우동 학교’가 있어, 사누키 우동을 직접 만들고 맛 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제공한다. 더불어 카가와현 중심부에는 일본의 특별 명승지로 알려진 ‘리쓰린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여행자는 예술과 미식, 그리고 휴식을 한자리에서
두루 즐길 수 있다.
청정 자연과 향토 음식
고치 KOCHI
시코쿠 남부에 위치한 고치는 대자연이 가득 펼쳐지는 청정 지역이다. 시코쿠 4개 현 중 면적이 가장 넓은데 인구 밀도는 가장 낮다. 전체 면적의 무려 84%를 삼림이 차지하니, 공기부터 다르다.


고치현은 물이 맑아 차로도 유명하다. 그냥 맑은 게 아니라 기적의 청류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 1위의 수질을 자랑하는 ‘니요도강’이 있다. 고치현의 차는 니요도가와초 마을의 ‘사와타리차’가 대표적인데, 이 지역을 지나면 곳곳에 펼쳐진 차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와타리차의 특징은 깊은 향과 깔끔한 뒷맛이다. 길이 약 124km의 니요도강은 깨끗한 수질만큼 푸른빛이 아름다워 ‘니요도 블루’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다.

니요도 블루를 감상할 수 명소로 대표적인 곳이 ‘니코부치’ 연못이다. 가을이면 고치현 곳곳이 분홍빛 코스모스로 물들며, 특히 오치마치의 미야노마에 공원은 약 150만 송이의 코스모스로 장관을 이루는 인기 명소다. 청정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소도시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면 고치현이 제격이다.
모래사구와 온천
돗토리 TOTTORI
돗토리는 서쪽으로 시마네, 동쪽으로 효고, 남쪽으로 오카야마와 접해 있다. 주고쿠 지방 북동부에 위치해 동해를 따라 동서 120km, 남북 20~50km의 좁고 긴 지형을 이룬다. 현에는 항구 도시 사카이미나토, 공항이 있는 요나고, 중부의 구라요시, 그리고 현청 소재지 돗토리까지 4개의 도시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일본 최대 규모의 ‘돗토리 사구’로, 마치 사막을 연상케 하는 장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돗토리의 진짜 매력은 온천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구라요시에는 8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미사사 온천이 있다. 미토쿠강을 따라 늘어선 고풍스러운 료칸들은 온천 마을 특유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미사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아침을 세 번 맞이하면 병이 낫는다’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만큼 온천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천–돗토리 노선은 현재 에어서울이 단독 운항 중이다.
글 트래비 취재협조 JNTO(일본정부관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