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화려함과 속도감이 일본의 즐거움이라면, 산과 숲, 온천의 느긋함은 일본의 여유로움이다. 일본의 대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며, 오래된 온천 마을과 숲길, 호수와 바다 풍경을 탐닉해 보는 건 어떨까. 일본에서 치유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자연을 품은 8곳의 현을 모았다.
무로마치 시대의 흔적
기후 GIFU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지가 바로 기후다. 거대하고 웅장한 일본의 북알프스 일대, 아기자기한 다카야마 거리와 공방, 맑은 온천과 자연. 그야말로 낭만과 그리움의 감정이 공존하는 곳.

특히 ‘작은 교토’라 불리는 다카야마와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라카와고 마을은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여행지다. 다카야마에서는 옛 거리를 따라 전통 목조건물과 상점, 사케 양조장이 늘어서 있어 역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시라카와고는 합장 양식 초가집이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나고야 주부국제공항을 이용하면 가장 가깝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신들이 머무는 땅
시마네 SHIMANE
시마네는 일본 서부에 자리해, 자연 속에서 전통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신들의 땅’으로 불리는 시마네는, 일본 전역의 신들이 음력 10월이면 이곳에 모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중심에는 인연을 맺어 주는 ‘엔무스비의 신사’로 유명한 ‘이즈모 타이샤’가 있다. 짝을 찾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 준다고 전해지는 이 신사는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데이트 삼아 찾아오는 낭만적인 장소다.

현의 중심 도시 마쓰에에는 잔잔한 신지호가 자리한다. 특히 석양이 지는 시간, 호수 위로 번지는 황금빛 풍경은 연인이라면 꼭 함께 바라봐야 할 장면으로 꼽힌다. 호수 위로 지는 석양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신지호 선셋 카페’ 또한 연인들의 인기 스폿이다.

또 다른 상징인 마쓰에성은 일본에 남아 있는 12개의 원형 천수각 가운데 하나로, 웅장한 성곽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시마네의 진면목은 바다와 맞닿은 자연에서도 드러난다. 마쓰에 인근의 가카노쿠케도에서는 파도가 만든 해식 동굴을 배로 탐방할 수 있고, 오키 제도에서는 높이 100m에 달하는 절벽 해안을 따라 카약으로 동굴을 누비는 투어가 인기를 끈다.
살아 있는 화산
구마모토 KUMAMOTO
규슈의 중심인 구마모토는 역사와 자연, 체험이 공존하는 여행지다. 구마모토성은 일본 3대 명성 중 하나로, 성곽과 돌담이 보여 주는 웅장한 풍경은 이 지역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구마모토의 진짜 매력은 성벽을 벗어난 대지에서 만난다. 세계 최대급 칼데라를 품은 활화산인 아소산은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연기를 내뿜고, 초원과 분화구가 어우러진 드라마틱한 풍경을 선사한다. 트레킹, 승마, 전망대 등 다양한 체험 코스도 마련돼 있어 자연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다.
구마모토 곳곳에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구로카와 온천 등 료칸과 온천 마을이 흩어져 있어 휴식이 필요한 여행객에게도 안성맞춤이다. 한국에서 직항편이 운항 중이라 골퍼를 비롯해 다양한 ‘구마모토 마니아’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다.
잔잔한 동화 속으로
지바 CHIBA
도쿄에서 전철로 단 1시간. 지바는 대도시 바로 옆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후나바시에 위치한 후나바시 안데르센 공원은 여의도의 절반 크기만 한 넓은 부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지바의 대표 명소다.

19세기 덴마크 전원의 풍경을 재현한 메르헨 언덕에는 큰 풍차와 농가, 동화관이 자리해 동화 속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태양의 연못에서는 노 젓는 보트를 즐길 수 있고, 광장에는 토끼와 양, 조랑말을 만나는 동물 체험장이 마련돼 있어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가 높다. 100여 종, 5만 송이의 꽃들은 사계절 내내 만발해 산책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공원에서 벗어나면 지바의 또 다른 얼굴이 기다린다. 가모가와, 온주쿠, 구주쿠리 해변에서는 파도 위에서 즐기는 패들보드가 인기다. 숲속 모험 시설인 ‘포레스트 어드벤처 치바’와 ‘타르자니아’에서는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짜릿한 짚라인도 체험할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도 버킷 리스트
미에 MIE
일본 신도의 중심, 이세 신궁이 자리한 미에는 일본인도 가 보고 싶어 하는 버킷 리스트 여행지 중 하나다. 2,000년 역사를 이어 온 신궁을 찾는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경내를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숲길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바다로 향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세계 최초로 양식 진주에 성공한 미키모토 진주섬에서는 바다와 빛이 빚어낸 진주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온화한 기후 덕분에 미에현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놀이 시즌이 여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초가을에도 서핑 명소 미야가와에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차량들로 북적인다. 남쪽의 기이 반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마노 고도 순례길이 이어진다. 깊은 산 속을 따라 걷는 길은 고대부터 신과 인간을 잇는 길로 여겨져 왔으며, 지금도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는 파워 스폿이다.
온천의 왕국
오이타(유후인, 벳푸) OITA
오이타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온천 원천 수와 온천수 배출량을 자랑하는 ‘온천의 왕국’이다. 원천은 총 4,788개로 일본 1위, 하루에 솟아나는 온천수만 해도 약 13만톤에 달한다. 그 중심에는 벳푸와 유후인이 있다.

대표적인 규슈 여행 패키지인 ‘후쿠오카–벳부–구마모토’를 잇는 트라이앵글 루트가 지나가는 곳이 바로 오이타 아니던가. 벳푸의 상징은 단연 ‘지고쿠메구리(지옥순례)’다. 붉게 끓어오르는 연못, 하얗게 증기를 뿜어내는 온천 지대는 자연이 만든 장관으로, 오이타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꼽힌다.

한편 유후인에는 유후다케 산을 배경으로 한 아담한 온천 마을이 이어지며, 갤러리와 카페, 산책로가 아기자기한 정취를 더한다. 두 지역은 버스로 약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어 하루 일정으로 함께 둘러보는 유후인 & 벳푸 버스 투어도 인기가 높다. 온천 달걀이나 증기 요리를 맛보는 체험까지 곁들이면 오이타 여행의 재미가 배가된다. 후쿠오카에서 특급열차나 고속버스로 약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는 장점 또한 갖췄다.
소박한 야경의 도시
이시카와(가나자와) ISHIKAWA
이시카와는 낮과 밤의 얼굴이 전혀 다르다. 중심 도시 가나자와는 에도 시대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작은 교토’라 불리는데, 낮에는 무사 저택 거리와 금박 공예, 전통 정원에서 옛 일본의 멋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겐로쿠엔은 사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계절별 라이트업이 열리는 밤에는 성곽과 정원이 빛으로 물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옛 게이샤 거리 히가시 차야가이에서는 붉은 격자창에 등불이 켜지고, 전통 찻집과 술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거리를 물들인다. 현 북쪽으로 뻗은 노토 반도에서는 리아스식 해안과 어촌 마을이 만들어 내는 소박한 야경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노토 반도는 전통적인 어업과 농업, 산림 관리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다와 섬빛이 겹쳐지면
미야기(센다이) MIYAGI
미야기를 대표하는 풍경은 단연 마쓰시마다. 센다이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25km 떨어진 해안에 자리한 이곳에는 260여 개의 작은 섬이 흩뿌려져, 일본 3대 절경으로 꼽힌다. 섬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에 오르면 바닷빛과 섬빛이 겹쳐지는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바다 위 작은 섬에 세워진 전각 ‘고다이도’, 붉은 다리로 연결된 ‘후쿠라지마’, 그리고 다테 마사무네가 재건한 사찰 ‘즈이간지’는 자연과 신앙, 역사가 함께하는 마쓰시마의 상징이다.

현의 중심 도시인 센다이는 ‘숲의 도시’라는 별칭처럼 녹음이 풍부하다.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죠젠지 도리에는 늘 푸른 가로수가 터널처럼 이어지고, 겨울이 되면 센다이 광 축제가 열려 화려한 조명이 거리를 빛으로 물들인다. 도심 속에서는 다테 마사무네의 위용이 서린 센다이 성터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상점가 및 카페 거리도 만날 수 있다. 한국과는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이 연결돼 있어 관광객과 경제 교류 인구를 실어 나르고 있다.
글 트래비 취재협조 JNTO(일본정부관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