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비자 160만 명이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배출가스 시험 조작 혐의로 제기한 집단 소송의 심리가 시작됐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디젤게이트’의 그림자가 10년 만에 다시 짙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160만 명이 넘는 차량 소유자들이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배출가스 시험 조작 혐의로 제기한 대규모 집단소송이 시작됐다.
13일(현지시간) 런던 고등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원고 측 변호인단은 “제조사들이 법을 지키기보다 속이는 길을 택했다”며 차량에 불법 조작장치를 설치해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소송 대상은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판매된 메르세데스 벤츠, 포드, 닛산, 르노, 스텔란티스 산하 푸조와 시트로엥 5개 브랜드다. 원고 측은 해당 차량들이 시험 상황을 자동으로 인식해 배출량을 조절하는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를 탑재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해당 차량들이 실제 도로 주행 시 NOx 배출이 법정 기준보다 최대 12배까지 높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제조사들은 “배출 제어 장치의 작동 조건은 합법적 기술 조정에 따른 것이며,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한 NOx 배출을 지나치게 낮추면 다른 유해물질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엔진 보호를 위해 특정 조건에서 배출저감 장치를 제한적으로 작동하도록 한 것일 뿐 불법 조작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약 60억 파운드(약 11조 4000억 원) 규모로 영국 법조사상 최대급 집단소송으로 꼽힌다. 법원은 우선 표본으로 선정된 20대의 차량을 중심으로 조작 여부를 심리한 뒤 2026년 중반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이후 손해배상액은 별도의 후속 재판에서 결정된다.
이 판결은 재규어랜드로버, BMW, 토요타 등 다른 제조사들을 상대로 한 약 80만 건의 유사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15년 폭스바겐이 미국과 유럽에서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인정하며 시작된 디젤게이트는 당시 전 세계 1100만 대의 차량이 문제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것으로 드러나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큰 충격을 남겼다.
폭스바겐은 차량 리콜과 벌금, 합의금 등으로 지금까지 320억 유로(약 52조 8000억 원) 이상을 지출했고 영국에서도 2022년 약 9만 명의 소비자에게 1억 9000만 파운드(약 3600억 원)를 배상했다.
영국 환경단체들은 이번 소송이 단순한 소비자 보상을 넘어 디젤차 배출로 인한 대기오염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이 지났지만 ‘끝나지 않은 디젤게이트’의 진실을 가리는 법정 공방이 그 후폭풍 다시 불기 시작했다.
한편 이번 재판은 원고 수만 160만 명이 훌쩍 넘는 전례 없는 대규모 소송인 만큼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항소심 등 추가 법적 다툼으로 몇 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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