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동아 강형석 기자]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원소 주기율표의 란타넘(La)부터 루테튬(Lu)까지 란타넘족 15개 원소와 스칸듐(Sc)과 이트륨(Y)을 더한 17개 화학 원소를 지칭한다. 이들 원소는 극소량만 첨가로도 제품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스마트폰, 반도체,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정밀 유도 무기 등 첨단 장비 대다수에 희토류 소재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희토류를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 부른다. 하지만 희토류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글로벌 IT 공급망이 위기에 처했다.
2025년 10월 9일, 중국 상무부는 '역외 희토류 물자 수출 통제 결정'을 발표하며 희토류 통제를 한층 강화했다. 중국은 ▲사마륨 ▲디스프로슘 ▲가돌리늄 ▲터븀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등 7종의 중희토류 원소와 고성능 자석을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시켰으며, 허가 받은 기업만 수출 가능하다.
이번 발표는 첨단 반도체 분야를 겨냥했다. 14 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이하 정밀도의 고급 시스템 반도체, 256층 이상 메모리 반도체, 반도체 생산 장비, 연구 개발 등에 쓰이는 희토류 수출 모두 심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중국산 희토류가 미량(특정 중희토류의 경우 제품 가치 기준 0.1% 이상)이라도 포함됐거나, 중국의 기술 및 장비를 사용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까지도 수출 허가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이 반도체 수출 통제에 활용한 '해외직접생산품 규정(FDPR)'과 유사한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중국이 포괄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하자 미ㆍ중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았다. 2025년 10월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조치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운영하는 트루스 소셜에 “적대적 조치”라는 내용과 함께 “2025년 11월 1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중요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출도 통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도체ㆍIT 산업 전반에 쓰이는 희토류
희토류는 크게 경희토류(Light REEs)와 중희토류(Heavy REEs)로 나뉜다. 란타넘, 세륨 등 경희토류는 상대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하고 추출이 용이하다. 반면,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중희토류는 매장량이 적고 고성능 영구자석 제작에 필수적여서 가치가 높다.
IT 시장에 많이 쓰이는 희토류 부품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네오디뮴 자석을 꼽는다. 네오디뮴 자석은 기존 영구자석에 비해 10배 이상 자성이 강하다. 작은 크기로 충분한 자기장을 만들기에 스마트폰, 노트북, 하드디스크 등 IT 기기의 소형화가 기능해졌다.
디스플레이 분야에도 희토류 원소가 쓰인다.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액정 디스플레이(LED, LCD) 등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형광체 제조 과정에 희토류 원소를 적용한다. 희토류 원소는 다른 물질에 녹거나 결정 속에 들어가도 고유한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기에 밝기와 선명함이 장시간 지속된다. 가돌리늄(Gd), 어븀(Er) 등 희토류 원소는 광섬유 제조에 사용한다.
일부 희토류 원소는 반도체 제조 공정 자체에 직접 사용된다. 예로 세륨(Ce) 산화물은 웨이퍼 표면을 원자 단위로 평탄하게 연마하는 화학적 기계적 연마(CMP, Chemical-Mechanical Planarization) 공정의 핵심 소재 중 하나다.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는 웨이퍼 위를 나노미터(nm) 단위로 이동한다. 그만큼 정밀한 제어 능력을 가진 전기 모터가 필요하다. 이 모터의 성능은 네오디뮴(Nd), 디스프로슘(Dy), 터븀(Tb) 등 희토류로 만든 고성능 영구자석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은 왜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을까?
2025년 6월, 미ㆍ중은 희토류 선적을 재개하기 위한 기본 합의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한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압박에 대한 반격 의도가 깔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상호 관세를 도입한 후 취한 맞대응 조치인 셈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조치가 군용과 민간용 모두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이중용도 물자를 관리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은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됐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외국 기업을 명시한 블랙리스트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 제재 명단에 오른 중국 기업의 자회사까지 자동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게 골자다. 지분 50% 이상을 소유한 자회사는 별도의 심사 없이 즉각 명단에 등록되면서 화웨이(Huawei),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등 중국 기술 기업이 블랙리스트 제재의 영향을 받게 됐다.
인공지능 장비 수출도 엄격하게 다뤘다. 2025년 4월, 엔비디아와 AMD 저사양 인공지능 가속기의 수출 허가 제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2025년 3분기 매출 예상안에서 중국발 H20 출하량을 반영하지 않았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도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한 조치가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에 영향을 줬다”고 언급했다.
희토류 수출 통제 상황 속 반도체 기업의 투자 방향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0월 13일, 트루스 소셜에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대공황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돕고 싶다”고 말하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투자 시장은 미ㆍ중 무역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것을 우려한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폭스 비즈니스 인터뷰를 통해 “최근 주말 사이에 중국 측과 소통을 했다. 향후 실무급 회의가 많아질 것이다. 미ㆍ중 정상회담 전에 중국 측과 먼저 만나고 싶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아직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반도체 공급망을 정확히 겨냥했다. 개별 반도체 칩이 아닌,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 산업 자체를 공략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이 타격 받을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재로 반도체 장비 선적이 몇 주간 지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ASML은 극자외선(EUV) 기반 노광장비를 생산한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이 ASML 노광장비를 사용한다. 희토류 수출 제재로 장비가 제대로 배치되지 않으면 반도체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생산 지연은 전 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의 병목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14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여러 IT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투자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에 집중한다. 두 정상은 2025년 10월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IT산업 전반의 투자 심리가 움직일 전망이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