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공예 도구, 글루건이 이제는 수술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이정승 교수 연구팀이 글루건을 개조해 부러진 뼈를 직접 이식할 수 있는 의료용 기기를 만들었다. 단순한 접착 도구가 생명을 복원하는 의료 장비로 변신한 것이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Cell)의 자매지인 ‘디바이스(Device)’ 9월 5일 게재됐다.
수술실에서 바로 이식할 수 있는 ‘프린팅형 뼈’
뼈는 가벼운 골절은 스스로 복구할 수 있지만, 손상이 심할 경우 자연 치유가 어렵다. 이 경우 금속 보형물이나 기증받은 뼈, 혹은 3D 프린터로 맞춤형 뼈조직을 제작해 손상 부위를 복원하곤 한다. 하지만 CT 촬영을 통해 골절 부위를 모델링한 후, 맞춤형 뼈를 제작하기까지 최소 일주일이 걸려 응급 외상 수술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제작된 이식물도 불규칙한 골절 면을 완벽히 반영하기 어려워 추가 가공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연구팀은 수술 현장에서 곧바로 뼈를 이식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영상 촬영이나 사전 모델링, 트리밍 등 없이 손상 부위에 직접 이식물을 프린팅하는 방법을 말이다. 연구팀이 고안해 낸 방안은 바로 뼈 이식용 기기다. 시중 글루건을 개조해 만든 이 기기는 기존 방비 대비 작고 수동 조작이 쉬워 집도의가 실시간으로 프린팅 방향과 각도, 깊이를 조절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잡한 뼈 이식 수술도 수 분 내에 가능하다는 장점이 뒤따른다.

사진 1. 연구팀은 글루건을 개조해 뼈 이식 기기를 제작했다. 해당 기기는 뼈 재생을 돕는 물질과 지지대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 항생제가 혼합된 필라멘트를 녹여 손상 부위를 채운다. ⓒDevice
녹이고, 채우고, 감염까지 막는다?
이식에 사용되는 필라멘트의 주성분은 뼈 재생을 촉진하는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HA)와 생체에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폴리카프로락톤(PCL)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PCL은 60℃에서 액화되므로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손상 부위를 채울 수 있다. 손상 부위를 채운 필라멘트는 일정 기간 동안 체내에서 뼈세포가 부착·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후, 서서히 분해된다.
또한 필라멘트에는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반코마이신과 젠타마이신도 함유돼 있다. 이정승 교수는 “필라멘트의 HA와 PCL의 물리적 특성 덕분에 항생제가 체내에 서서히 방출된다”며 “수술 부위에 직접 항생제를 투여해 전신 부작용과 내성 위험을 줄이고, 감염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용 글루건, 수술의 패러다임도 바꿀까?
연구팀은 개발한 기기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토끼 실험을 진행했다. 토끼의 대퇴골에 수 cm 크기의 손상을 낸 후, 글루건 기기로 이식물을 주입한 후 경과를 관찰했다. 12주 간 관찰한 결과, 감염이나 괴사 없이 새로운 뼈조직이 촘촘히 자라났을 뿐 아니라, 기존 방식보다 골밀도와 피질 두께도 더 높게 나타났다. 이에 연구팀은 임상 적용을 위해 표준화된 제조 공정, 검증된 멸균 프로토콜, 대형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진 2. 토끼 실험 결과, 감염이나 괴사 없이 새로운 뼈 조직이 자라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Device
이번 연구는 인체 조직을 복원하는 기술 발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성과다. 아직 임상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응급 외상 수술에 즉시 활용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평범한 도구에서 출발한 의료 혁신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글 :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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