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조립되는 전기차 아이오닉 5. 정부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자동차 산업의 전면적 전동화를 전제로 하지만, 산업계와 노동계가 ‘속도 조절 없는 전환은 위기’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처:현대자동차)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둘러싸고 자동차 산업계와 노동계가 이례적으로 공동 대응에 나섰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은 정부에 공동건의문을 제출하고 “산업의 현실을 무시한 급격한 전환은 고용 불안과 기술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보다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8~65% 감축한다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수송부문에서 전기·수소차 누적등록 대수를 840만~980만 대(등록비중 30~35%)로 설정했다. 그러나 산업계는 이 목표가 사실상 내연기관차 퇴출에 가까운 과도한 수준이라며 수정 요구를 하고 있다.
현 보급 추세와 예산, 업계의 생산계획을 고려할 때, 무공해차 등록대수를 550만~650만 대(등록비중 19.7~23.2%)로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부족한 감축분은 교통체계 개선과 물류 효율화, 친환경 운전문화 확산 등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업계와 노동계는 정부가 전기차 중심의 급격한 전환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자율주행 기술, 물류 효율화 등을 통한 다양한 감축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합성연료 등 과도기적 기술을 재평가하고, 탄소중립연료 활용을 허용하는 ‘기술중립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전기차 중심 전환 사례에서 보듯, 단일 기술에 의존한 정책은 산업과 고용 충격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 특히 전력수급 여건에 따라 전기차의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연계된 현실적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이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체 부품업체의 95%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이며, 이 중 86.5%는 매출액 중 미래차 비중이 30% 미만이다. 전동화 대응에 필요한 연구개발(R&D)과 투자여력, 기술인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정책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 부품산업의 구조조정과 대규모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이에 따라 미래차부품산업특별법의 실효성 확보, 미래차 R&D 및 하이브리드 부품개발 병행 지원,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AI 기반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등 정부 차원의 실질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 역시 고용 충격을 우려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 수가 약 3분의 1 수준이고 차량 한 대 생산에 필요한 인력도 70~80%에 그친다. 이로 인해 향후 10년간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의 현재 시나리오에는 전환기 고용대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고용유지지원금 요건 완화, 실업급여 확대, 전직 훈련 및 일자리 알선 등 실질적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촉구했다.
한편 이들은 수요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규제를 강화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전기차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공급규제 중심이 아닌 수요창출 중심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생산 전기차에 대한 세제 및 보조금 인센티브 확대, 향후 3년간 보조금 한시적 유지, 충전요금 50% 할인특례 부활, 공동주택 지정주차제 도입과 V2X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한 이용 편의성 개선이 포함됐다.
산업계와 노동계는 “탄소 감축은 시대적 과제이지만, 산업이 숨 쉴 틈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급격한 전환은 산업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KAMA 강남훈 회장, KAICA 이택성 이사장, 금속노련 김준영 위원장은 “정부가 산업과 노동이 함께 지속가능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현실적 목표와 실질적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탄소감축과 산업경쟁력의 균형을 이루는 ‘현명한 전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공동건의는 단순한 산업계의 이익 호소를 넘어, ‘지속가능한 전환’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와 산업 기반 유지라는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이 맞닥뜨린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됐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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