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식 벤츠 스파이더가 비 내리는 하이드파크를 출발하며 2025 RM 소더비 런던–브라이튼 베테랑 카 런의 서막을 연다. 1896년 ‘레드 플래그 법’ 폐지를 기념했던 역사적 행렬의 상징을 되살린 순간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겨울을 재촉하던 구슬비가 멈추고 런던 하이드파크에 새벽 햇살이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순간, 1901년식 벤츠 스파이더(Benz Spider)가 천천히 출발선을 떠났다. 12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품은 이 자동차는 여전히 살아 숨쉬듯 엔진의 리듬과 함께 영국 해협을 향해 달렸다.
2025년 ‘RM 소더비 런던 브라이튼 베테랑 카 런’ 완주. 그리고 그 무대에 선 또 하나의 별, 1904년식 메르세데스 심플렉스(Mercedes-Simplex 28/32 hp). 메르세데스 벤츠 해리티지는 이 두 클래식 모델로 2026년으로 다가온 ‘자동차 140주년’의 서막을 열었다.
1901년식 벤츠 스파이더(왼쪽)와 1904년식 메르세데스-심플렉스 28/32hp(오른쪽)가 영국 브룩랜즈 서킷을 달리며 ‘자동차 140주년’을 예고한다. 두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기술유산의 출발점이자 브랜드의 혁신 DNA를 상징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시간의 공명, 해리티지가 현재를 비추다
1886년 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각각의 방식으로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그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이번 참가 역시 단순한 복고적 이벤트가 아니라 ‘현재 속의 과거’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언이었다.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베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해리티지 대표는 “120년 전의 기술로 완성된 스파이더가 오늘날까지 생동하는 모습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뿌리가 얼마나 강인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런던 중심가의 세인트 제임스 모터링 스펙터클(St. James’s Motoring Spectacle)에서 선보인 두 모델은 그 자체로 ‘움직이는 역사 교과서’였다. 단지 아름다운 철제 조각이 아니라 1886년의 특허증서로부터 2026년의 미래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사슬이었다.
런던 도심 세인트 제임스 거리에서 시민들의 환호 속에 선보인 벤츠 스파이더와 메르세데스-심플렉스. 클래식과 현대가 한 거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헤리티지가 미래를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을 시각화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붉은 깃발이 사라진 날, 에맨시페이션 런
1896년, 영국은 도로에서의 최고속도를 14마일(22.5km/h)로 상향하며 ‘레드 플래그 법(Red Flag Act)’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이 역사적인 날, 다임러의 친구이자 영국 자동차 산업의 개척자 프레더릭 심스(Frederick R. Simms)는 다임러 비지아비(Daimler Vis-à-Vis) 3마력 차량으로 ‘에맨시페이션 런’을 달렸다.
레드 플래그 법’은 자동차가 등장하기 이전, 영국에서 자가 추진 차량(self-propelled vehicle)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마차·보행자와의 충돌 위험을 이유로 차량 앞에 반드시 ‘붉은 깃발(Red Flag)’을 든 사람이 걸어가야 했다.
보행자는 약 60야드(약 55m) 앞에서 차량의 접근을 알리고 다른 교통을 경고해야 했고 도심 내 최고 속도는 2마일(약 3.2km/h), 도시 외곽에서는 4마일(약 6.4km/h)로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했다. 사람이 걷는 속도였다. 또한 차량에는 운전자를 포함해 최소 세 명의 승무원이 탑승해야 했다.
매년 11월 첫째 주 일요일, 해 뜰 무렵 하이드파크에서는 1896년의 상징처럼 붉은 깃발이 찢어진다. 그리고 300대가 넘는 참가 차량이 브라이튼 해변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당당히 행진한다. 벤츠 스파이더와 메르세데스 심플렉스는 그 대열의 맨 앞에서 ‘운송 수단의 해방’이라는 원초적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해리티지가 만드는 미래
브라이튼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멈춘 1901년식 벤츠 스파이더. 120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움직이는 이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해리티지가 지켜온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메르세데스 벤츠 해리티지의 철학은 '유산이 미래를 만든다(Heritage Creates Future)'다.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펠바흐의 클래식 센터, 그리고 칼 벤츠 하우스와 다임러 기념관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 혁신의 영감을 되살리는 성지다. 벤츠 스파이더와 심플렉스가 오늘날의 하이브리드와 전동화 기술로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전은 멈춰 있는 조각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브랜드의 심장이다.
2026년은 ‘자동차 140주년’이자 ‘메르세데스 벤츠 100주년’이 된다. 런던에서 브라이튼으로 이어진 100km의 여정은 그 긴 역사 속에서도 단지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한 페이지가 지금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있게 했다. 시간의 강 위를 달린 벤츠 스파이더의 바퀴 자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별의 궤적이 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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