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첨단 진단장비 등 고도화된 기술을 다루기 위해 숙련 인력이 절실하지만, 미국 완성차 업계는 고연봉에도 기술자를 채용하지 못하는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처:포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포드가 연봉 12만 달러, 우리 돈 약 1억 7880만 원을 제시하고도 필요한 정비 기술자를 단 한명도 채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분야의 숙련 인력 부족 때문인데 결국 미국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포드 짐 팔리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 평균 근로자의 몇 배에 이르는 억대의 연봉을 제시하고 5000명의 정비 기술자 채용을 공고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고 했다.
물론 포드가 찾는 기술자는 단순한 정비사가 아니다. 전기차부터 첨단 진단장비, ADAS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차량 기술을 다루는 고급 인력이며 이들이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의 숙련 과정이 필요하다.
팔리 CEO가 “미국은 이 인력을 길러낼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학 중심의 교육구조가 강했고 산업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직업학교나 통합 교육 체계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매년 약 3만 7000명의 기술자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2033년까지 연간 6만 8000개의 정비 관련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팔리 CEO는 미국 전역에 응급 서비스, 트럭 운전, 제조업, 전기·설비 등 핵심 산업 전반에서 100만 개 이상의 빈 일자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고 실제로 제조업 분야는 이미 40만 개 이상의 숙련직 공백이 발생한 상태다. 경기 변동이나 임금 문제가 아닌 ‘사람 자체가 부족한’ 상황, 즉 숙련 노동력 붕괴가 미국 산업경쟁력을 뒤흔들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포드는 최저임금 등급을 폐지하고 향후 4년간 25%의 임금 인상을 약속하는 등 고용환경을 개선하고 있지만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더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숙련 형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다 교육 시스템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청년층은 긴 훈련과 경력 투자를 요구하는 기술직보다 단기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산업은 전기차·소프트웨어·로보틱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커리큘럼은 여전히 내연기관 시절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업계의 지적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기술직 중심의 인력난을 겪는 배경에는 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한다. 수십 년간 미국 사회를 지배해 온 ‘대학 진학=성공’이라는 인식이 기술직 진입 장벽을 높였고 고금리·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청년층은 일정 기간의 전문 연수와 낮은 초기 소득을 감내해야 하는 기술직 선택을 부담스러워한다.
여기에 EV·자동화 전환으로 기술 난도가 급격히 상승했고, 고령화와 이민 제한까지 겹치면서 숙련 인력 공급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지금의 문제가 기업의 범위를 넘어선 시스템적 위기하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력을 구하지 못해 생산·서비스·품질까지 영향을 받는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전기차 시대의 경쟁력은 자동차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보다 현장에서 이를 다루는 기술자의 역량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는 시대가 됐다.
이는 포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공통적으로 마주한 현실이며 인구 감소·고령화·대학 중심 문화라는 동일한 구조를 가진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포드가 억대 연봉을 제시하고도 사람을 구하지 못한 이유는 ‘미국이라서’가 아니라 기술전환이 가속화되는 산업에서 숙련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맞닥뜨릴 미래의 단면이기도 하다.
전기차 시대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기술을 다룰 사람을 확보하는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의 미국이 보여주는 인력난은 곧 우리 산업이 마주할 수 있는 경고이자 예고편이다. 산업의 미래는 기술보다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느냐가 완성차 산업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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