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악당은 본래 미움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개중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악역이 된 녀석도 있고, 사실은 악역이 아니었더라... 하는 반전을 지닌 놈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더 돋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하지만 개중에는 태생부터 '쓰레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인 이들도 있다. 자신이 한 수많은 행동들을 정당화하고, 뉘우치지 않는 말 그대로 '본투비 악당' 말이다.
이들은 게임 내 행보는 물론, 설정을 뒤져봐도 '나쁜 놈'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에게 유난히 평가가 좋은 기이한 녀석들이 간혹 있다. 살인, 폭력, 배신 등을 밥 먹듯이 저지르지만, 이를 본 플레이어들은 "사실은 착한 놈이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주인공이 나쁜 것이 아닐까", "시대를 잘못 만난 위인이다", "참된 리더상"이라며 쉴드를 치곤 한다. 그 단계가 지나치면 숭배에 이르기도 한다. 오늘 [순정남]은 제작사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위인급 칭송을 받는 악당들을 모아봤다.
TOP 5.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 스티븐 암스트롱
스티븐 암스트롱은 겉보기엔 멀쩡한 상원의원이지만, 실상은 전쟁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삼고 약자를 유린하는 부패한 정치인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겠답시고 거리의 아이들을 납치해 뇌를 뽑아 사이보그 병사로 개조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인공 라이덴을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며 힘없는 자는 짓밟혀도 된다는 위험한 사상을 설파하는, 그야말로 도덕 따위는 밥 말아 먹은 광인 그 자체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이 근육질 아저씨에게 유독 열광한다. 부패한 기득권과 언론에 조종당하는 세상을 갈아엎고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사는 자유지상주의 세상을 꿈꿨다는 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덴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노머신이다, 애송아!"를 외치며 안경을 고쳐 쓰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라이덴보다 더 멋져 보인다는 평까지 듣는다. 심지어 자신을 죽인 라이덴의 신념을 인정하며 "자신의 길을 가라"고 응원하는 대인배스러운 최후는 그를 단순한 악당이 아닌 상남자로 기억되게 만든다. 오죽하면 현실 정치에 암스트롱이 재림하기를 꿈꾸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
TOP 4. 파 크라이 4 - 페이건 민
핑크색 양복에 깔끔한 올백 머리. 키라트의 독재자 페이건 민은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자기 부하가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만년필로 목을 수차례 찔러 죽이고는 자기 구두에 피가 튀었다며 짜증을 내고, 주인공의 가이드 역할이었던 현지인에게 냅다 총을 갈긴다. 그의 행보를 보면 철권 통치로 국가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종교와 문화를 탄압하며 자신의 황금 동상을 세우는 등 전형적인 폭군 독재자의 행보를 보인다. 주인공을 납치해 고문실 옆에서 밥을 먹이고, 주인공 어머니의 유골을 손가락으로 찍어먹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런데 막상 플레이해보면 이 양반, 주인공 에이제이에게만큼은 세상 둘도 없는 '스윗한' 새아빠다. 납치한 줄 알았더니 "기다리면 나라를 줄게"라며 꿀 떨어지는 눈빛을 보내고, 실제로 게임 시작 후 15분간 밥만 먹고 기다리면 진짜로 나라를 물려주고 쿨하게 퇴장한다. 게이머들이 그를 숭배하는 진짜 이유는 주인공이 돕는 저항군이 사실은 광신도였거나 마약상이 될 운명인 또 다른 악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양아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는 이 로맨티시스트 독재자가 훨씬 합리적인 리더로 보일 지경이다.
TOP 3.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알버트 웨스커
S.T.A.R.S.의 대장이었던 웨스커는 자신의 부하들을 실험체로 팔아넘기고, 좀비 지옥이 된 양관으로 팀원들을 유인해 전투 데이터를 수집한 배신자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료의 뒤통수를 치고, 나중에는 전 세계에 우로보로스 바이러스를 살포해 인류를 학살하고 신인류의 신이 되겠다는 중2병 돋는 망상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타인의 목숨을 벌레 취급하는 오만함과 냉혹함은 그를 바이오하자드 세계관 최악의 쓰레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올백 머리와 선글라스, 그리고 밉살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자신감은 그를 시리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만들었다. 여기에 5편에서 보여준 그의 최후는 너무 허무했고, 제작진에 대한 반감과 함께 오히려 동정표를 얻었다. 악당이 이렇게까지 멋있는 건 반칙 아닌가 싶지만,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수두룩할 정도다. 사실, 그가 없었으면 바이오하자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테니, 우리에게 호러 슈팅의 즐거움을 안겨준 대부격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TOP 2. 포탈 시리즈 - GLaDOS (글라도스)
포탈 시리즈의 영원한 악역인 글라도스는 겉으로는 실험을 돕는 AI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애퍼처 사이언스의 과학자들을 신경독으로 몰살시킨 살인마 기계다. 주인공 첼에게 "실험이 끝나면 케이크를 주겠다"고 꼬드겨 놓고는 태연하게 소각로로 밀어 넣으려 했으며, 끊임없이 "넌 입양아다", "뚱뚱하다" 같은 인신공격으로 정신적인 고문까지 가한다. 윤리 코어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본색을 드러내며 첼을 죽이려 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돋는 악녀 그 자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숭배받는 건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감각과 '츤데레' 매력 때문이다. 특히 2편에서 감자 배터리 신세가 된 '감자도스'의 모습은 '갭 모에'의 절정과도 같다. 앙칼진 목소리로 "나 감자 됐거든?"이라며 징징대고, 까마귀에게 쪼이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첼과 협력하며 보여준 케미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엔딩에서 첼을 죽이는 대신 "네가 이겼어, 그냥 가버려"라며 보내주고, 'Want You Gone'이라는 노래를 통해 은근슬쩍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에 많은 게이머의 심장을 콩닥이게 했다. 죽이려고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막상 떠나보내니 아쉬워하는 츤데레 악당이라니, 이건 미워할 수가 없다.
TOP 1. 사이버펑크 2077 - 아담 스매셔
대망의 1위는 나이트 시티의 악몽, 아담 스매셔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박기 좋게 손질된 고깃덩이"라는 희대의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인기 캐릭터인 조니 실버핸드와 레베카를 무참히 살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신을 기계로 개조해 인간성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기업의 개가 되어 무자비한 살육을 즐기는 전투광이라는 설정이다. 애니메이션 '엣지러너'에서는 주인공 데이비드마저 철저하게 짓밟으며 꿈과 희망을 박살 내버린,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재앙 덩어리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 압도적인 무력과 타협 없는 경호원으로서의 면모가 그를 '사실 착한 놈이었어'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사실 그가 한 얘기 중 틀린 말(심지어 성희롱까지!)은 거의 없으며, 직접 나서서 무고한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오지도 않는다. 조니 실버핸드나, 데이비드와 레베카나, 심지어 V마저도 결국엔 그가 지키고 있는 영역을 침범한 무법자일 뿐이었다. 우리에게 보여진 아담 스매셔의 모습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인 직장인일 뿐인데,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악당 프레임을 씌운 것이라는 반론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수많은 V들이 성인용품을 손에 들고 그를 농락하는 장면이 회자되며, 동정표까지 얻었다. 그저 한 명의 불쌍한 사이보그일 뿐인 아담 스매셔에게 묵념을.
[관련기사]
Copyright ⓒ 게임메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