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처럼 운동선수 아빠에게서 운동선수인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를 더러 본다. 유전자를 통해 국가대표급의 운동 재능을 물려주지 않더라도,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자녀의 신체적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예비 아빠의 규칙적인 운동이 미래 태어날 아들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꾸준히 노력한 ‘운동 흙수저’ 아빠, ‘운동 금수저’ 자녀 얻는다
시 첸 중국 난징대 교수팀은 규칙적으로 운동한 수컷 생쥐가 새롭게 얻은 체력을 수컷 자손에게 전달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DNA를 통해 유전자를 직접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운동에 의해 변형된 RNA 조각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 10월 6일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게재됐다.
대부분의 유전 형질은 유전자 속 DNA를 통해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된다. 가령, 폐활량이 큰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은 달리기에 더 유리한 식이다. 그런데 ‘맛있는 김치찌개 끓이는 비법’처럼 삶 속에서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은 DNA에 기록되지 않는다. 대신 DNA의 화학적 포장 방식을 변화시켜 자손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후성유전(epigenetics)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매개체로 ‘마이크로RNA(microRNA, miRNA)’가 주목받고 있다. 식단, 스트레스, 운동 등 생활 반경이 miRNA 구성을 바꾸면 이 변화가 정자나 난자에 전달돼 수정란의 발달과 자손의 대사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된다.
사진 2. 운동은 정자의 RNA 구성을 바꾸고, 그 변화가 수정란과 자손의 근육 및 대사 기능까지 바꾼다. ⒸCell Metabolism
제1 저자인 신 인 중국 난징대 연구원은 “운동선수들의 자녀가 운동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을 것일 수도 있지만, ‘선수들이 쌓아온 훈련과 시간이 자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이번 연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정자 miRNA를 통해 배아에 운동 능력 전달
지금까지 엄마의 신체 활동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임신 전과 임신 중의 신체 활동이 후생유전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녀의 대사 건강, 인지 기능, 신체 수행력과 활동력 등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빠의 신체 활동이 정자를 통해 자손에게 후생유전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우선 수컷 생쥐에게 2주 동안 트레드밀 달리기를 시켰다. 운동한 수컷 쥐와 운동하지 않은 암컷을 교배시켜 얻은 수컷 자손은 운동하지 않은 수컷 쥐의 자손보다 더 오래 달리는 등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조건도 좋아졌다. 근육량은 높고 지방량은 낮았으며, 고지방 식이에 노출되었을 때도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
사진 3. 트레드밀 훈련을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수컷 쥐(빨간색)은 운동을 하지 않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수컷 쥐(F파란색)에 비해 지구력이 뛰어났다. ⒸCell Metabolism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관찰되는 것일까?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PGC-1α(감마 공동활성화 단백질 1-알파) 단백질이 증가한다. 이는 미토콘드리아를 만드는 유전자를 켜는 단백질로, 지구력과 대사력이 증가한다. 반면, NCoR1이라는 단백질은 PGC-1α를 억제해 이 시스템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정자와 수정란의 RNA를 분석해 운동으로 인해 증가한 10종의 miRNA를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miR-148a-3p’라는 miRNA가 NCoR1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중심 역할을 했다. 즉, 운동을 하면
PGC-1α가 증가하는 동시에 miR-148a-3p가
NCoR1를 억제하는 셈이다. 이에 배아에서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더 활발하게 돌아가게 해, 자손의 대사와 근육 기능을 향상시키게 된다.
이 효과가 유전자의 직접적인 ‘상속’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시하기 위해, 연구진은 PGC-1α를 과발현하는 유전자 조작 수컷 생쥐를 만들었다. 이들을 정상 암컷과 교배시켜 얻은 자손은 일부는 해당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일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은 자손조차 지구력 향상과 미토콘드리아 활성 증가를 보였다. 이는 실제 운동과 유전자적 PGC-1α 활성화가 동일한 형태의 후성유전적 변화를 유발함을 의미한다. 운동으로 인한 miRNA 변화는 사람의 정자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남성 8명과 운동하지 않은 남성 24명의 정자를 수집해 분석했다. 생쥐에서 발견한 10개의 miRNA 중 7개가 운동하는 남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타고난 ‘유전적 재산’이 없더라도, 아버지의 운동 습관 변화가 miRNA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암컷 자손과 손자 세대에서는 체력 향상 등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운동이 정자의 miRNA 수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연구진은 운동 중 근육에서 방출된 분자들이 혈류를 통해 정자가 성숙하는 부위인 부고환으로 이동해, 정자의 RNA 생성을 조절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재니스 베일리 캐나다 라발대 교수는 “태아 건강과 관련하여 산모의 환경과 생활 습관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아버지의 영향은 그간 상대적으로 간과됐다”며 “임신 전 아버지의 운동이 미래 세대의 건강을 개선하고, 비만, 만성질환의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평가했다.
글 : 권예슬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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