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 전만 해도 만재도는 그야말로 ‘먼데섬(멀리 있는 섬)’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이젠 얘기가 달라졌다.
항로의 뒤편에서
아침 8시 무렵, 목포에서 출항한 배는 도초, 흑산도, 상태도, 하태도를 거친 후 12시를 넘겨 가거도에 도착한다. 그런 뒤, 40~50분간 배는 잠시 선원들의 점심과 휴식을 위해 닻을 내리고 오후 1시가 되어 마지막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만재도다.
만재도는 목포를 기점으로 가거도보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섬이다. 그러나 주민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한동안 항로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섬의 면적은 0.75km2, 해안선 길이도 5.5km 남짓. 워낙 작다 보니 사람들은 종종 만재도를 가거도 여행의 ‘부록’처럼 일정에 끼워 넣곤 했다. 작은 섬들이 그렇듯 만재도 역시 큰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배가 닿을 즈음이면 종선이 마중을 나와 사람과 짐을 옮겨 싣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주민들의 소원은 두 가지였다. 가거도를 거치지 않는 직항로와 접안시설의 확충. 그런 바람은 2021년 ‘어촌 뉴딜 300’ 사업으로 이뤄졌다. 목포에서 만재도까지는 2시간 30분, 이제 종선 없이도 여객선을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섬이 됐다.
1만 가지의 재물
만재도는 현재는 흑산면에 속해 있지만, 불과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도군 조도면의 섬이었다. 지도에서 보면 흑산도와의 거리보다 오히려 조도와의 거리가 가깝다. 맹골군도의 죽도에서 서쪽 수평선을 바라보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이 만재도다.
섬에는 최고점 177m의 마두산을 배경으로 단 하나의 마을이 안겨 있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낡은 가옥과 가옥 사이에는 좁다란 돌담길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고 간간이 조막밭도 옹색하게 놓였다.
섬은 크게 동서로 누운 T자 모양이다. 가로 능선이 북서풍을 막아 주는 역할이라면 세로 능선은 섬의 풍광을 담당한다. 풍파에 깎여 나간 해안 절벽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절정의 풍색을 펼쳐 낸다. 만재도의 해안선은 단순히 ‘거친 풍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조율된 균열’을 이룬다. 특히 남동쪽 해안은 2024년 국가 지정 유산(천연기념물)으로 인정받았다. 바다를 향해 기둥처럼 서 있는 이 지형은 1억년 전의 검은 유문암의 군락, 즉 주상절리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식애, 해식동, 시아치 등의 침식 지형까지 어우러지니, 이름처럼 1만 가지의 재물을 가진 섬임이 틀림없다.
만재도가 세상에 알려진 데는 예능 프로그램 <1박2일>과 <삼시세끼>의 공이 컸다. 오래전 윤석호 감독은 섬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는, 그의 계절 드라마 시리즈(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중 완결편인 <봄의 왈츠>의 배경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장시간 촬영하기엔 너무도 먼 섬이란 핸디캡이 있었다. 결국 그 한계를 넘지 못해 포기하고 주 무대를 청산도로 옮겨야만 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가끔은, 만재도가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육지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면 진즉 핫플레이스가 됐을 테고, 펜션에 식당, 어쩌면 각종 여행 편의시설까지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만재도는 때 묻지 않은, 더딘 시간의 흐름이 아름다운 섬이다.
결국 오래 남을 섬
오래전 만재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짝지 해변에 텐트를 쳤다. 짝지는 몽돌의 순우리말이다. 바닷가에서 거북손을 따다 삶아 먹고 배낭에 넣어 간 약간의 식량으로 끼니를 때웠다.
밤하늘을 밝히던 등대 불빛, 다가오고 멀어질 때마다 노래하듯 울려대던 몽돌의 공음, 오지 섬에서 캠핑은 특별했지만, 대신 마을 사람들의 걱정은 한 몸으로 받았다. 하긴 텐트는 하필 마을 내 어떤 집에서도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있었으니. ‘아니, 저게 무슨 짓이여, 춥지도 않은가 벼. 신경 쓰여 죽겄네.’ 낯선 이를 향한 그들의 염려가 파도 소리와 함께 귀에 스며들던 날이었다.
이후의 만재도 여행에는 요령이 생겼다. 민박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따뜻한 방은 당연지사, 바다 내음 가득한 저녁상과 섬사람들과의 정다운 이야기가 여행자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말이다. 그 후 몇 번의 경험으로 만재도의 계절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만재도는 먼 섬이 아니라 오래 남을 섬이라는 사실을. 묵묵함 속에 축적된 삶과 자연의 결이 여행자를 붙잡는 곳, 만재도는 그런 섬이다.
Travel Info
TRAFFIC
여객선: 목포항여객선터미널(14:10) → 만재도(16:40)
PHOTO SPOT
1. 한눈에 보는 만재도
몽돌해변 뒤편으로는 주상절리의 벽을 타고 섬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만재도의 오롯한 모습을 감상하려면 마구산보다는 오히려 능선이 적소다. 마을과 선착장 그리고 마구산, 섬을 둘러싼 무인도와 여까지, 만재도는 어느 곳 하나 소홀함 없는 최상의 자연미를 가졌다.
2. 곳곳에서 발견하는 섬 흔적
먼 섬에는 고단했던 삶의 단면을 보여 주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폐가나 돌담은 물론이고 맷돌, 놋그릇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생활 도구들도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된다. 반쯤 부서지고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면 그 또한, 섬 사진의 의미 있는 소재가 된다.
PLACE
1. 등대
마구산 정상부에 있다. 이 자그마한 등대는 34km 동쪽의 맹골 죽도 등대와 더불어 제주 서쪽 해역과 서해안 항만을 오가는 선박들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2. 짝지해변
선착장에서 마을 앞으로 이어진 해변에는 빛깔 고운 몽돌이 완만하게 깔려 있어 산책을 하거나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해변 뒤편으로는 작은 웅덩이가 있는데, 밀물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고여 해변의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ACTIVITY
1. 트레킹 (4km/ 2시간)
선착장 - 보건소 –큰산(마구산) - 등대 - 짝지해변 - 미남바위 - 앞산(장바위산) - 마을
2. 캠핑
짝지해수욕장에 텐트를 칠 수 있다. 단 2박 3일의 여정이라면 화장실과 식수 등을 협조받을 수 있는 1박 민박 또는 2박 캠핑을 권한다.
FOOD
만재도에 식당은 없다. 하지만 민박집의 반찬은 해산물에 후하다. 또 직접 만든 막걸리를 내놓기도 한다. 부근의 무인도에서 채취된 자연산 해산물 중 홍합과 거북손은 크고 맛도 좋기로 유명하다. 이것들은 다른 해산물들과 같이 급냉되어 목포로 보내지는데, ‘청정마을’이란 사이트를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STAY
마을 내에 민박집이 몇 곳 있으나 만재도 펜션 외에는 운영이 들쭉날쭉하다. 특히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는 뭍으로 나와 사는 주민들이 많으니 이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여행을 계획해야 한다.
*김민수 작가의 섬 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