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색색의 학종이를 접어 종이학을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배를 접어 종이배를 띄워봤을 수도, 특별한 날에는 도안을 따라 그럴싸한 하트나 장미꽃을 만들어 봤을 수도 있다. 종이접기는 주어진 순서에 따라 종이를 접어 나가는 단순 작업이지만, 접는 순서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정교함과 창의력을 요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의 어릴 적 추억이나 취미 영역에 머무는 이 종이접기는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 예상 밖의 활약을 하고 있다. 1995년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미우라 코료가 ‘오리가미(折り紙, 종이접기)’를 우주 공학 분야에 적용한 이래, 여러 과학자가 종이를 접거나 펼 때 나타나는 주름, 대칭, 각도 변화 등을 첨단 공학의 설계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과학계가 종이접기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와 그 최신 사례를 살펴보자.
접힘이 설계가 되다
과학자들은 종이접기의 어떤 면을 공학 연구에 가져온 것일까? 그들은 종이를 접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패턴에 주목했다. 종이의 평면을 접거나 절단하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부분이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이러한 패턴을 얇은 재료를 원하는 순간에 펼치거나 변형하는 공학 설계에 적용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천체물리학자 미우라는 우주 장비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종이접기의 패턴을 연구했고, 양 끝에 약간의 힘을 주면 완전히 펼쳐지는 태양전지판을 고안하는 데 성공했다.
종이접기의 공학적 잠재력은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조명되었다. 2014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한 연구는 ‘미우라 오리’ 패턴을 평면 재료에 적용, 무수한 평면 재료가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물리적 구조로 바꿀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들 연구진은 종이의 접힘선을 경첩(hinge) 삼아 평면 재료가 주어진 패턴에 따라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접힘 패턴을 재료의 강도나 탄성 등 물리적 성질을 결정하는 변수로 활용하여 접힘 각도에 따라 재료를 더 쉽게 휘도록 하거나, 고정된 방향으로만 접히도록 하거나, 일정한 힘 이상에만 펼쳐지게 하는 등 재료 자체가 기계처럼 기능하도록 하는 구조를 제시한 것이다. 이 연구 이후 ‘오리가미’ 기반 설계는 금속 박막, 고분자 필름, 나노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 확장되었다.
사진 2. ‘미우라 오리’ 패턴(A) 적용 물질을 레이저로 절단한 3D 이미지(C). 2014년 발표된 이 연구는 ‘오리가미’를 역학적 메타 물질을 설계하는 틀로 활용했다. ⓒSilverberg et al.(2014), fig.1)
접힘 그 다음, 절단 패턴의 활용
접힘 기반 설계 연구가 발표된 지 얼마 안 되어 종이를 자르는 기술인 ‘키리가미(切り紙, 절단)’를 공학적 원리로 활용한 논문 또한 발표되었다. 2016년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된 한 연구는 ‘키리가미’를 절단 패턴을 통해 재료의 기계적 성질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원리로 정식화했다. ‘오리가미’가 재료에 정밀한 경첩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키리가미’는 일종의 스프링과 같은 속성을 부여하여 절단 패턴에 따라 늘어남, 비틀림, 굽힘 등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었다.
실례를 보자. 작년(2025년) 《네이처(Nature)》에 실린 캐나다 몬트리올폴리테크닉대 연구팀의 연구는 ‘키리가미’ 기술을 활용해 구조를 단순화하고 비용을 절감한 낙하산을 제작했다. 바람에 날리는 씨앗의 모양을 모사한 이 낙하산은 얇은 필름 원판에 닫힌 곡선 형태의 절단 패턴이 적용되었다. 바람이 필름 사이를 통과하며 절단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열리고 휘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필름의 구조가 나선형 또는 축 대칭 형태로 재배열되며 안정적인 항력을 만든다.
연구진은 절단 개수와 배치를 달리한 원판 세 종류를 제작해 1.8미터 높이에서 자유낙하 실험을 진행했다. 절단이 없는 기본형은 떨어지는 동안 좌우로 크게 흔들렸지만, 절단이 다섯 개 들어간 원판은 중심축을 수직으로 유지하며 가장 안정적으로 낙하했다. 절단이 너무 많은 패턴은 쉽게 휘어지고 움직임이 불안정했다. 지름 50센티미터의 시제품을 활용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60미터 상공에서 0.4킬로그램의 물병을 투하하는 실험에서 적정한 수의 절단 패턴을 적용한 낙하산은 초기 방출 각도와 무관하게 목표 지점을 향해 안정적으로 낙하했다. 이러한 낙하산은 바느질이나 줄과 같은 재료 없이 레이저 절단으로 빠르게 제작할 수 있고, 재난 지역에 구호물자를 보급하거나 위험 지역에 드론을 활용한 배송하는 활동에 활용될 수 있다.
‘키리가미’ 낙하산은 절단 패턴으로 공기역학적 안정성을 구현한 결과라는 점에서 종이접기 설계의 공학적 가치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종이접기의 원리는 접기와 자르기만으로 신축성, 안전성과 같은 재료의 물리적 구조의 핵심을 건드린다. 낙하산과 태양전지판은 물론, 체내에서 스스로 펼쳐지는 ‘오리가미 캡슐’,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키리가미 기반 신축성 센서’, 외부 정보에 반응해 스스로 변형하는 로봇 등 재료를 사용하는 모든 공학적 시도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다. 종이 한 장에서 배운 접힘의 규칙은 미래 기술 곳곳에 적용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중이다.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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