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부순 자동차 특허들. 충돌하면 찢어지고, 사고 전에 사람이 움직이며, 배터리는 스스로를 희생한다. ‘차를 살리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발상’이 자동차 설계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특허 등록 건수는 약 210만 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약 5000건에 이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식재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 주요 국가 특허청 통계를 보면 이 가운데 자동차 관련 특허는 약 58만 8600건으로 하루 평균 1600건 이상이 새롭게 제출되고 있다. 자동차 특허는 통상 양산을 염두에 둔 기술이거나 기술 침해를 막기 위한 선제적 방어 수단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이 가운데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발상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일본·유럽·중국에서 실제로 출원·공개된 자동차 특허 중에는 기존의 안전 상식과 차량 설계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 얼핏 보면 ‘미친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사고·전동화·자율주행 시대를 전제로 보면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가장 충격적인 발상 중 하나는 토요타의 차체 구조 특허다. 이 특허의 핵심은 충돌 시 차체가 버티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파괴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자동차 안전은 ‘강성’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토요타는 다른 해법을 택했다.
특정 충돌 에너지에 도달하면 프레임이 계획된 지점에서 찢어지며 충격을 분산시키는 구조다. 차체는 손상되지만 그만큼 탑승자에게 전달되는 감속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한 특허다. 차를 버리고 사람이 사는 기술이다.
볼보의 특허로 대표되는 ‘사전 개입(pre-crash)’ 안전 시스템 역시 기존 개념을 뒤집는다. 사고 이후가 아니라 사고 직전을 겨냥한 기술로 레이더와 카메라로 충돌 방향과 강도를 예측한 뒤 시트의 높이와 각도, 좌우 위치를 자동으로 조정해 탑승자를 가장 안전한 자세로 이동시킨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오늘의 ‘미친 특허’가 내일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오토헤럴드 DB)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사고 순간에 반응하는 장치라면 이 시스템은 그보다 앞서 개입한다. 사고 직전 탑승자를 부상 위험이 가장 낮은 상태로 ‘미리 준비’시키는 셈이다. 사고 확률이 아닌 사고 결과를 줄이기 위한 접근이다.
혼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사고 직전 탑승자를 차량 밖으로 이탈시키는 특허다. 모터사이클과 같은 특정 조건에서는 외부로 이탈하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도심 저속 충돌이나 소형차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 특허는 실현 가능성과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사고 환경을 극단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중국에서는 전기차 화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특허도 등장했다. 불을 끄는 대신 폭주 위험이 감지된 배터리 셀만 선택적으로 희생시켜 확산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열폭주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사례다. 전기차 화재를 관리해야 할 변수로 본 접근이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출원한 특허 중에는 자동차를 하나의 완성품이 아니라 충돌 시 분리되는 모듈형 구조로 정의한 것도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전면·후면·배터리 구조가 분리돼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고 손상된 모듈만 교체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외부에서 전개되는 에어백 역시 상식을 깨는 특허다. 현대차가 보유한 이 기술은 에어백이 실내에만 존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것으로 사고 시 차량 하부나 측면 외부에서 에어백이 펼쳐진다. 배터리 하부 보호는 물론 보행자와 이륜차 충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전기차 시대를 겨냥해 에어백의 역할을 차량 내부에서 외부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상식을 부수는 특허는 결국 미래를 만든다. 더 빠른 차, 더 멀리 가는 차가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선입견으로 이런 발상들을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미친 특허’가 내일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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