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데이터센터 확장, 고성능 PC·서버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에 연산 성능을 뒷받침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대역폭을 극대화한 HBM은 AI 연산과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이처럼 HBM을 중심으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자, 메모리 산업은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기술적·구조적 부담을 함께 떠안게 됐다.
현재 사용되는 메모리 대부분은 실리콘 기반 반도체다. 다만 메모리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공정이 점점 세밀해지면서, 제조 비용과 에너지 소모, 생산 난이도 역시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AI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기존 메모리 구조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과학자들은 실리콘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메모리 소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후보 중 하나로 식재료인 ‘버섯’이 주목받고 있다.
식탁 위 버섯이 메모리 재료가 된다?
연구팀은 최근 표고버섯을 이용해 디지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다. 버섯이 반도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은 약 5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실제 실험을 통해 메모리로서의 성능을 정량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학자들이 버섯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균사체’ 때문이다. 균사체는 토양 속에서 그물망처럼 퍼지며 성장하는 조직으로, 전기적·화학적 신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이러한 구조는 신경세포들이 연결된 뇌의 신경망과 닮았기에, 정보 전달 매개체로서의 가능성이 꾸준히 논의됐다.
연구팀은 여러 종의 버섯 가운데, 내구성과 방사선 저항성이 뛰어난 표고버섯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표고버섯 균사체 조직을 건조한 뒤 전극을 연결하고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 결과, 전류를 흘린 뒤에도 이전 전기적 상태가 남아 이후 신호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관찰됐다. 이는 전류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저항값이 변하고, 그 변화가 저장되는 ‘멤리스터(memristor)’ 소자의 핵심적인 특성과 맞닿아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을 통해 균사체 기반 구조가 기존 실리콘 메모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생물학적 조직에서 관찰되는 물성을 전자 소자 수준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향후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소재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로 평가된다.
균사체 메모리의 성능,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그렇다면 균사체 기반 메모리의 성능은 어떨까? 실험 결과 이 장치는 컴퓨터 메모리처럼 데이터를 읽고 쓰는 동작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초당 약 5,850회 수준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때 정확도는 약 90%였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성능은 다소 감소했지만, 연구팀은 여러 균사체를 병렬로 연결하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실사용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에 구현된 표고버섯 기반 메모리의 속도는 기존 상용 RAM과 비교하면 약 100만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연구진은 이 기술의 의미를 단순한 성능 경쟁에서 찾지 않는다. 균사체는 자연에 흔한 소재이며, 배양과 처리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적고 사용 후 생분해가 가능하다. 이는 전자 폐기물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분명한 장점이다.
연구팀은 “대형 균사체 시스템은 우주 항공 탐사와 같은 특수 환경에서, 소형 시스템은 자율주행 장치나 웨어러블 기기 등에 활용될 수 있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배양 기술을 개선하고 장치를 소형화한다면 실용적인 응용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 : 남예진 동아에스앤씨 기자,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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