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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2026.01.09. 14: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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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예술가들을 찾아서.

제주민화의 재탄생
루씨쏜아뜰리에

낮게 드리운 물안개가 바람에 밀려 잠시 물러선 사이, 섶섬이 하얀 바다를 딛고 모습을 드러냈다. 섶섬은 제주 남동쪽으로 3km 거리에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의 발걸음이 바다로 사라진 후, 시선은 ‘루씨쏜아뜰리에’로 건너가 꽂혔다. 이토록 근사한 곳이라니.

루씨쏜아뜰리에는 제주민화를 테마로 하는 작가의 작업실이자, 카페 겸 갤러리다. 여행자들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한다. ‘루씨쏜’은 ‘손빛나 작가’의 활동명이다. 작가의 영어 이름, ‘루시아(lucia)’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호주 그리피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작가는 유학 시절 만난 남편과 함께 제주에 정착했다. 남편은 제주의 식재료로 지중해식 음식을 만드는 셰프로 활동 중이다.

민화는 서민의 그림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민화의 투박함이 오히려 아이스럽다고 생각한단다. 제주의 따사로움을 담은 ‘제주 민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전통 민화가 강렬한 오방색으로 채색되는 반면 작가의 그림은 은은한 파스텔톤이 주류를 이룬다. 작가의 <제주, 민화 그리고 고양이>라는 아트북을 보면 화사한 동화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고양이를 의인화한 것도 기발하다. 물감은 대부분 천연재료로 만든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색을 얻기 위해서다.

루씨손 작가는 2021년,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이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스스로를 고양이에게 투영하여 제주의 삶을 그려 낸 에세이다. 수많은 개인전과 아트페어, 그룹전을 경험한 작가지만, 정작 그녀의 아뜰리에는 또 다른 민화 작가와 입문자들의 갤러리로 이용된다. ‘제주다움’을 전하고 나누는 작업이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30년 내공의 도예 성지
성지도예

제주 성읍 2리는 과거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하여 ‘구룡동’으로도 불렸던 표선면의 깊숙한 마을이다. 30여 년 전 나명권 대표는 이곳에 성지도예를 설립하고 줄곧 한자리를 지켜 왔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소위 요지를 마다하고 성읍2리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이 마을 출신의 아내 때문이다.

한때 성지도예 나명권 대표는 한국문화예술제, 경기미술대전, 전국공예품경진대회, 한국문화예술대상전 등에서 수상하는 등 유명한 도예가였다. 하지만 제주에 정착한 후 그의 생활은 작품보다 공방을 운영하는 일에 더욱 전념하게 되었다.

“제 작품을 만들 시간이 없어요. 참가자들을 지도해야 하고, 끝난 뒤에는 그릇을 가마에 구워서 보내 줘야 합니다.” 성지도예는 제주다움을 만들어 가는 공방이다. 제주에서 나는 화산송이를 곱게 갈아 흙에 섞어 사용한다. 화산송이는 그릇에 투박하고 빈티지한 느낌을 더해 준다. 그리고 철 성분이 있어 구웠을 때 검고 오묘한 빛깔을 발산하게 된다. 맥반석보다 3배 많은 원적외선과 음이온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래서 화산송이를 넣어 만든 잔에 커피를 드립하면 훨씬 부드럽고 맛있는 커피가 완성된다고 한다.

도예 체험 장소의 운동장을 지나 체험관으로 들어서니 씨름판만큼이나 널찍한 사각 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에 담겨 있는 것은 진흙이다. 체험 참가자들은 진흙을 밟고 경험하며 도예에 관한 관심과 열정을 달군다. 도예 체험은 진흙 밟기, 물레 성형, 그림 그리기, 유약 바르기, 굽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어느 단계 하나 허투루 지나는 법이 없지만 그림 위에 상감을 입히고 초벌, 재벌로 구워 내는 작업은 오로지 나명권 대표의 몫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완성된 작품은 집으로 배송된다. 진흙을 밟고 물레를 돌리며 손수 만들어 본 그릇 하나, 그 색깔과 질감에서 제주의 자연을 본다. 섬세한 배려와 정성이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하는 공간, 성지도예는 그런 곳이다.


해녀의 모든 역사
해녀박물관

평생 바닷속을 헤집으며 가족을 부양했던 제주의 해녀들. 인고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해녀박물관을 찾았다. 해녀박물관은 2006년 개관했다. 제주 해녀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해 그 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취지에서다.

본관 1층 로비에서 전시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제주 전통 초가집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실제 해녀(이남숙 1921~2008년)가 거주했던 집을 그대로 옮겨 와 복원한 것이다. 제주 초가의 재료는 자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 흙, 나무, 띠와 같은 것들이다, 바람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지붕은 낮게 했으며 굴묵 난방의 효율성을 위해 방을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굴묵은 제주 전통 가옥에서 구들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구멍을 뜻한다.

이곳에서는 해녀들의 식사문화도 엿볼 수 있다. 제주에서는 몇십년 전만 해도 밥을 ‘낭푼’이라 부르는 큰 그릇에 담아 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먹었다. 식기나 식량 등 모든 것이 귀했지만, 무엇보다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야 하는 아녀자의 바쁜 삶이 투영된 전통이다. 보박잎이나 콩잎으로 쌈 싸 먹기, 모닥치기(한 번에 섞어 먹는 음식), 두루치기 등도 간결한 식사를 위한 방편이었다. 1전시실이 1960~1970년대의 세간을 통해 해녀들의 살림살이와 어촌마을의 형태, 그리고 세시풍속 등을 보여 준다면, 한 층 위에 있는 2전시실은 불턱과 물질 장비 등을 통해 본격적인 해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해녀들은 하루 대여섯 시간씩 물질한다. 한 번 바닷속에 들어가면 1, 2분씩 숨을 참고 해산물을 채취한 후 물 밖으로 나왔다. 숨비소리는 턱까지 차올랐던 숨을 물 밖으로 나와 내뿜는 소리다.

‘불턱’이라 불리는 공간도 생소하다. 해녀들에게 불턱은 옷을 갈아입고 물질을 준비하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에게로 이어지는 수련의 장이며 의사소통과 결정의 장 역할도 겸했다. 지금은 단단한 건물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제주 동쪽 해안에는 곳곳에 옛 불턱의 흔적이 여전히 존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주 해녀들이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녀는 물질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상궁,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해녀들은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물소중기(하의), 물적삼(상의)이라 부르는 무명으로 된 해녀복을 착용했다. 고무 옷이 보급된 70년대 들어서야 장시간 작업이 가능하고 능률도 크게 올랐다. 2층 전시실에는 해녀복 외에 수경, 테왁 망사리, 빗창, 까꾸리 등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그 시절의 도구들 또한 유리관 안에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해녀들은 19세기 말부터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도 진출했다. 이를 출가 해녀라 부르는데 이들은 당당히 제주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3전시실은 그야말로 현직 해녀들의 공간이다. 해녀들이 전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은 물론, 어렵게 배운 한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낸 정겨운 솜씨들도 만나 볼 수 있다. 제주에는 현재 3,400여 명 정도의 해녀가 활동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연로해서 그 숫자는 해가 거듭될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다.


바다가 차려 낸 귀한 밥상
해녀의 부엌

해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보며 그녀들이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 바로 해녀의 부엌이다. 본점은 현직 해녀와 그를 빙의한 연기자가 출연해 연극형식으로 공연한 후 뷔페식으로 요리를 제공한다. 첫 번째 코너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운명적으로 해녀의 삶을 살아왔던 해녀, 공부를 포기하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해녀, 아이를 밴 채 원정 물질을 떠나 사고를 당했던 해녀 등이 등장한다. 다른 듯 같은 주제를 가지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은 제주 해녀의 억척스러운 삶과 내면의 고단함을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두 번째 코너에서는 뿔소라, 성게, 군소, 우뭇가사리, 톳 등 제주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소개된다. 해녀가 직접 출연해 채취과정, 특성, 조리 방법까지 들려 준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상승하며 입 안에 군침이 서서히 돌기 시작한다. 세 번째 코너는 기다렸던 식사 시간! 모든 요리는 해녀의 손길을 거쳐 제공된다. 제주의 집은 마당 한 편에 우영팟이라고 하는 텃밭을 품고 있다. 우영팟에서 재배한 싱싱한 농산물도 재료로 쓰인다. 톳과 흑임자로 만든 죽은 바다와 우영팟의 앙상블이다. 갈치조림, 뿔소라꼬지, 군소무침, 우뭇가사리 양갱도 진심이 들어 있는 맛이다.

한편, 북촌점은 12명의 예술가가 만들어 내는 미디어아트를 기반으로 한다. 프라이빗 공간에서 14명만을 위한 코스요리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본점과 차별된다. 미디어아트 영상은 70년대 북촌리 해녀의 모습을 시작으로 어느 순간 깊은 바닷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들어간다. 4·3항쟁의 아픔을 비롯한 제주의 근대역사도 함께 보여 준다.

도슨트의 진행으로 이어지는 식사도 특별하다. 메뉴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웰컴 드링크로 전통 발효음료 흑보리 쉰다리가 나오는가 하면 상웨덕, 빙떡, 옥돔구이 등 제주 토속음식이 차례로 등장한다. 성게알, 뿔소라, 돌미역 등의 해산물도 빠지지 않는다. 끝으로는 흑돼지 돔베고기에 꽃멜소스가 밥과 함께 제공되는데 눈과 입이 푸짐해지는 최고의 한 끼다.

글·사진 김민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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