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클린테크 스타트업 더스토리지가 개발한 산업용 모래 배터리 설비 전경. 재생에너지 전기를 열로 전환해 모래에 저장한 뒤 공정열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출처:TheStorage)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과 배전 과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의 손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화력발전소에서 1000kW의 전력을 생산했다고 가정할 경우, 일반 가정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약 940~960kW 수준으로 감소한다.
전기차를 예로 들면 이해가 더 쉽다. 배터리 용량을 100%로 봤을 때 배터리 내부의 화학 반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으로 일부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손실된다. 이후 전력 변환 장치와 전기 모터, 감속기와 구동계를 거치는 동안 추가 손실이 발생해 최종적으로 바퀴를 굴리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약 80~85% 수준에 그친다.
이처럼 물리적 손실과는 별도로 전력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심야 시간대에는 전력 생산과 소비의 실시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른다. 발전 설비는 수요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력 소비가 줄어든다고 해서 모든 발전 설비를 즉시 중단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기는 대규모로 장기간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 수요를 초과해 생산된 전력을 무한정 보관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전력 계통 운영자는 잉여 전력이 발생할 경우 발전 출력 제한(출력 제어)을 시행하거나 배터리·양수발전·열 저장 설비와 같은 에너지 저장 기술을 활용해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고, 잉여 전력을 어떻게 저장해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는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더스토리지의 ‘샌드-인-모션(Sand-in-motion)’ 방식 개념도. 전기로 가열된 모래가 저장고 사이를 순환하며 열을 저장·방출하고, 열교환기를 통해 증기나 공정열로 공급된다.(출처:TheStorage)
핀란드 클린테크 스타트업 '더스토리지(TheStorage)'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버려질 수 있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전기를 열 에너지로 전환해 모래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하는 방식이다.
값싸고 흔한 모래를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공장에서 필요한 열(증기)을 친환경적으로 공급한다는 점에서 복잡한 배터리 대신 모래를 선택한 발상의 전환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열’이다. 모래에 전기 에너지를 직접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열로 바꿔 저장하는 방식이다.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남는 전기가 발생하면 해당 전기로 히터를 가동해 모래를 뜨겁게 달군다.
이렇게 가열된 모래는 거대한 저장고에 보관됐다가 필요할 때 공장용 증기나 난방 열원으로 활용된다. 찜질방 사우나에서 뜨겁게 달궈진 맥반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돌이 뜨거울수록 오랜 시간 열을 내는 것처럼 모래 역시 한 번 데워두면 장시간 열을 품는다. 모래는 최고 800도까지 가열할 수 있으며 단열이 잘된 저장고에 보관돼 열 손실도 최소화된다.
모래를 에너지 저장 재료로 선택한 이유는 값이 싸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에 타지 않고 폭발 위험도 없는 안전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명이 거의 무한에 가깝고 환경 오염 우려가 없다는 점도 강점이다. 리튬이나 희귀 금속이 필요한 기존 배터리와 달리 자원 문제와 환경 부담도 거의 없다.
더스토리지의 기술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의 정적인 모래 저장 방식이 아닌 ‘움직이는 모래’라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기존 열 저장 장치는 뜨거운 물질을 한곳에 쌓아두는 방식이어서 열을 꺼내 쓰는 속도가 느리다는 한계가 있었다.
에너지 공급 방식별 평균 열 에너지 비용 비교. 석유·가스·직접 전력 사용 대비 더스토리지의 모래 배터리 적용 시 MWh당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출처:TheStorage)
반면 더스토리지의 기술은 차가운 모래가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며 가열되고 뜨거워진 모래는 다시 저장고로 이동했다가 필요할 때 열교환기를 통과하며 열을 빠르게 전달하는 구조를 갖췄다. 이를 통해 열 전달 효율을 기존 대비 약 10배까지 끌어올렸다.
이 기술은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열’이 필요한 산업 현장에서 특히 유용하다. 식품 공장의 증기 설비, 양조장의 삶기와 살균 공정, 화학 공장의 고온 공정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이런 산업 현장에서는 석유나 가스를 태워 열을 생산해 왔다.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산업용 열의 80%가 화석 연료를 태워서 생산하고 전 세계 에너지 20%는 '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심야 시간대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로 가열한 모래를 활용하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제품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핀란드의 한 양조장은 이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비용을 최대 70% 절감하고 탄소 배출도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스토리지의 아이디어는 2023년 핀란드에서 처음 등장해 이후 엔지니어링 작업을 통해 올해 1월 실제 테스트를 위해 한 맥주 공장 최초 산업 규모 시범 설비 설치로 이어졌다. 공장은 이 설비를 통해 생산 라인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증기를 공급 받게 된다.
더스토리지의 '모래 배터리(Sand Battery)’는 전기를 반드시 배터리에 저장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열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산업 현장에서 전기를 다시 열로 바꾸는 비효율적인 단계를 줄이는 동시에 찜질방 맥반석처럼 즉각적으로 열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에너지 저장 방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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