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주장하는‘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Motorwagen)'. (출처:메르세데스 벤츠)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메르세데스 벤츠가 최근 부분변경 S클래스를 앞세워 대규모 월드 투어에 나섰다. ‘최초의 자동차 탄생 14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전 세계 6개 대륙, 약 5만㎞를 돌며 140개 거점을 방문하는 대장정이다.
벤츠가 말하는 140년의 출발점은 1886년 1월 29일, 칼 벤츠가 출원한 자동차 특허 DRP 37435다. 벤츠는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주장한다.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벤츠가 뜬금없이 14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공을 들이는 배경은 따로 있는 듯하다.
최근 벤츠의 글로벌 실적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2025년 벤츠의 글로벌 판매량은 216만 대로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다. 전기차 판매 역시 4% 줄었다. 시장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국 판매는 19%, 북미는 12% 감소해 체면을 구겼다.
1769년 니콜라 조제프 퀴뇨(Nicolas-Joseph Cugnot)가 프랑스 육군을 위해 개발한 증기 엔진 3륜차를 AI로 상상한 이미지. 칼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보다 100년 앞선 세계 최초의 자동차다. (오토헤럴드 DB)
벤츠라는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 추앙도 예전 같지가 않다. 국내에서는 '짱츠'라고 불리고 의욕적으로 공개한 S 클래스 부분 변경에서 옛 쌍용차 체어맨 W의 풍취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비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벤츠가 ‘브랜드 헤리티지’를 전면에 내세워 150주년도 아닌 140주년에 대대적인 기념 행사를 시작한 것은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모든 상징 자산의 총동원으로 읽힌다.
이런 속내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최초의 자동차’라는 표현이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월드 투어를 계기로 다시 역풍을 맞고 있다. 벤츠가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쓰는 일부 매체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에티엔 르누아르(Étienne Lenoir)가 1860년 발명한 세계 최초의 실용적 내연기관 ‘히포모빌(Hippomobile)’을 탑재한 자동차. 그는 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가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몰았던 것보다 30여 년 빠르게 파리–조인빌 약 18km 주행에 성공했다.
사실 자동차의 역사는 1886년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수의 자동차사 연구자들은 1769년, 프랑스의 군사 기술자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만든 증기 자동차를 자체 동력으로 움직인 최초의 자동차로 본다.
1803년에는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시가 승객을 태운 증기차를 선보이며 실제 운행에 나섰다. 벤츠가 말하는 ‘도로 위를 달린 교통수단’이라는 기준을 적용해도 이미 선행 사례가 80년 전부터 존재했던 셈이다.
이에 대해 벤츠는 늘 “현대적 의미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빈틈이 있다. 1863년,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발명가 에티엔 르누아르는 가스 엔진 자동차 ‘히포모빌(Hippomobile)’를 개발해 실제 도로 주행에 성공했다.
더 나아가 휘발유를 연료로 한 내연기관 자동차 역시 벤츠 이전에 등장한다. 오스트리아 발명가 지그프리트 마르쿠스는 1870년대 휘발유 엔진을 탑재한 차량을 제작해 실주행을 했다. 그는 칼 벤츠나 고틀리프 다임러보다 앞서 내연기관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한 인물이다.
지그프리트 마르쿠스(Siegfried Marcus)는 1870년 휘발유를 연료로 실제 주행 가능한 차량 제작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이 그의 업적으로 의도적으로 삭제 '잊혀진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린다. (오토헤럴드DB)
마르쿠스의 이름이 역사에서 희미해진 데에는 기술 외적인 이유도 크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위대한 발명품과 업적이 나치 독일 시절 의도적으로 삭제됐다. 이 때문에 마르쿠스는 ‘자동차의 잊혀진 아버지’로 불린다.
따라서 벤츠가 자동차를 ‘발명했다’거나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벤츠가 자동차를 최초로 특허화하고 산업으로 정착시킨 기업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2026년은 칼 벤츠가 자동차 특허를 출원한 지 140년이 되는 해일뿐이다. 그 의미를 기념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을 ‘자동차의 탄생’으로 포장해 지구 두 바퀴에 달하는 월드 투어를 벌이는 장면에서 역사보다 브랜드가 앞서는 일이 마뜩지 않다.
자동차의 역사는 한 기업의 연대기로 환원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벤츠가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그 복잡한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