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태국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는 이제 태국 관광의 별이 되었고, 눈부신 광채를 내기 시작했다.
사껀나콘(Sakon Nakhon), 나콘파놈(Nakhon Phanom), 총 8개 글자 중 두 글자가 반복이니 돌림노래 몇 번이면 외워질 만도 한데, 이렇게나 입에서 겉도는 지명이라니! 태국 북동부, 라오스와의 접경 지역에 있는 사껀나콘주와 나콘파놈주는 속살조차도 우리가 아는 태국과는 많이 달랐다. 불교도가 대다수인 나라에서 상상도 못 할 만큼 멋진 성탄 퍼레이드가 펼쳐질 거라니! 메리 크리스마스 D-2,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Sakon Nakhon
솜땀을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껀나콘의 초대장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한 시간여 거리, 사껀나콘에서의 첫 식사는 채소를 곁들인 달걀 요리와 빵으로 구성된 베트남 메뉴였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라오스라면 모를까, 왜 베트남인가. 의아함은 복잡했던 인도차이나 정세에서 풀렸다. 일본, 프랑스, 미국으로 이어졌던 침략과 전쟁의 기간 동안 많은 베트남 사람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 작은 디아스포라였던 셈이다.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식민 지배를 겪지 않는 나라’ 태국, 그 북동부의 사껀나콘, 나콘파놈은 가장 가까운 안전지대였던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얽히고설킨 메콩강 유역은 사실 모두 ‘이산(Isan)’이라는 지역적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메콩강에 인접한 사껀나콘과 나콘파놈은 라오스어, 태국어가 섞인 방언을 사용하고 방콕이나 남부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가 본 적 없지만 이산이라는 이름이 조금 익숙하다면, 십중팔구 음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산 음식은 맵고, 짜고, 신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하는데, 대표 메뉴가 찰밥, 솜땀(젓국에 버무린 파파야 샐러드), 까이양(구운 닭) 삼총사다. 방콕행 에어아시아의 기내식 메뉴도 이 삼총사였다. 아침 시장에 가 보니 각자의 손맛을 자랑하는 솜땀 한 봉지가 겨우 10바트. 지역이 낯설다고 해도, 맛있는 여행만큼은 보장된 셈이다.
푸 타이족이 사원을 참배하는 법
사껀나콘주의 주도인 사껀나콘시는 농한(Nong Han) 호수를 끼고 발달했다. 여러 수로가 합류해 123km2에 달하는 북동부 최대의 담수호가 됐다. 보트를 빌리면 농한 호수 안쪽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사원 섬들을 방문할 수 있다. 종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이 정적인 호수 투어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나는 기쁨으로 충분한 보상을 준다.
하지만 프라탓 청춤 사원(Wat Phra That Choeng Chum)의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방콕에 가면 왕궁에 꼭 가야 하듯, 사껀나콘의 답사 일번지는 프라탓 청춤 사원이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의 화신 네 분이 남긴 발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유서 깊은 사원이다. 사원 방문은 사껀나콘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푸 타이족의 환대로 시작되었다. 푸 타이족 민족의상으로 갈아입고 헌화와 분향을 마친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환영의례인 바이시수콴(Bai Si Su Khwan)이었다. 스님의 축복이 손목에 붉은 실 끈으로 단단하게 묶였다. 최소 3일, 저절로 끊어질 때까지 차고 있는 것이 예의라는데, 앞으로 3일 동안 성탄 퍼레이드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을 것 같다. 어차피 축제 관람자의 대부분도 불교도일 테니까.
물들기 쉬운 인디고의 고장
태국 사람들에게 사껀나콘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인디고 염색의 본고장’이다. 잘 발효된 종가집 씨 간장처럼, 씨 인디고 염료를 대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부한 색감을 낼 수 있다고. 소문난 명성 덕분에 사껀나콘의 인디고 염색 의류는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직접 인디고 염색을 체험하고 구매도 할 수 있는 크람사껀(Kramsakon)을 방문했다. 인디고 염료가 가득 찬 통에 끈으로 칭칭 동여맨 티셔츠와 손수건을 넣고 조물조물하기를 20여 분. 오래 주무를수록 색이 짙어진다. 라벨까지 부착된 각자의 작품이 다리미질까지 완료된 상태로 가방 속에 들어왔다. 염색 체험과 간식을 포함한 체험비는 1인당 950바트. 인류가 6,000년 전에 개발한 인디고 염색계에서는 어떤 명품 부럽지 않은 것이 ‘메이드 인(made in) 사껀나콘’ 제품이니 가성비, 가심비 모두 잡았다.
버릴 것 하나 없는 로컬 찐 풍경
인디고 염색이 주력인 지역에서 다른 생각을 한 마을이 있다. 반나츠억마을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물소똥 염색법으로 캐릭터 소품과 의류를 판매해 보기로 했다. 좀 생뚱맞은 아이디어 같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남운댐 동부에 자리한 이 마을은 독특한 체험을 제공하는 로컬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운남댐 보트투어, 물소똥 염색천으로 키링 만들기, 핫팟 스파와 점심식사까지, 알찬 패키지로 구성된 마을스테이는 태국 로컬의 날것 그대로를 만나게 해 주었다.
이 마을의 테마인 물소부터 만나 봐야 한다. 웰컴드링크였던 통코코넛 주스를 비우자마자 보트에 몸을 실었다. 하늘보다 더 파란 수면에 잠시 홀려 있는 사이 지도에도 없는 작은 섬에 도착했다. 물소 떼가 우르르 선착장 쪽으로 이동한 이유는 우리에 대한 환영이 아니었다. 한 발짝 먼저 도착한 농장주 부부, 정확히는 그들이 가져온 여물을 마중 나온 것이다. 운남댐 안에 작은 섬을 불하받은 부부는 물소를 키워서 팔고 있다. 전통 농업에서 중요한 일꾼이었던 물소는 일자리를 잃고 은퇴했다. 하지만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기에 은퇴 후가 퍽 평화롭다. 농장 부부는 물소도 팔지만, 물소똥도 퇴비로 판다. 은근히 마을의 소문난 알부자라고.
마을로 돌아와 그 쓸모 많은 물소똥으로 염색한 실을 바늘에 꿰기 시작했다. 물소 염색천으로 키링 만들기는 나른한 오후 시골마을의 트리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 방법이지만 더 좋은 것은 스파와 마사지다. 커다란 솥에 몸을 담그는 이색적인 스파 체험은 장작불에 큰 솥을 올리고 염색약을 끓이는 과정에서 착안한 것이다. 물론 욕탕의 재료는 모두 향긋한 허브들이다. 적당히 찬물을 섞어 온도를 낮춘 탕 안에 들어가 앉으니 어깨를 조물조물해 눌러준다. 꼭 염색 천이 된 기분이다. 이어지는 마사지가 적당히 말랑해진 몸에 기운을 채워 준다. 소소하게 다이내믹했던 마을의 하루를 최종적으로 수렴해 준 백미는 역시 태국식 시골밥상이었다. 깨끗한 자연 속에서 잘 먹고 잘 쉰 시골의 하루였다.
■Christmas Festival
박해를 딛고 태국 관광의 별이 된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
가장 빛나는 금의환향
타래(Tha Rae) 마을은 태국 내 최대 규모의 가톨릭 공동체다. 150여 년 전 베트남을 떠나 온 40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태국 사껀나콘에 정착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행정적 갈등이 고조되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 했다. 1884년 150여 명의 신자가 뗏목을 타고 농한 호수를 건너 지금의 타래 마을에 교우촌을 형성했다. 풍랑을 견디며 뗏목을 타고 온 기억은 성 미카엘 성당을 신축하면서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하도록 이끌었다. 뱃머리를 한껏 높인 성당의 입구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미카엘 대천사 상이 있고, 지하에는 이들을 이끌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하비에르 게고(Xavier Gego) 신부의 동상과 교구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신자가 1만 5,000여 명으로 늘어난 타래 마을은 5만 명의 신자들이 있는 타래-농쌩 대교구(사껀나콘, 나콘파놈, 깔라씬, 묵다한 4개 주 관할)의 구심점이다.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는 타래 신자들이 별 장식을 들고 성당 주변을 행진했던 의례에서 유래했다. 하나둘씩 참여 성당과 신자가 늘면서 도보 행진은 경연대회를 겸한 차량 퍼레이드로 진화했다. 1982년부터는 더 많은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마을을 벗어나 사껀나콘 시내로도 장소가 넓어졌다. 박해당했던 그곳에 퍼레이드까지 몰고 금의환향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태국관광청이 선정한 2025~2026년 시즌 ‘3대 타이 시그니처’ 축제 중 하나로 선정되어 해외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별이 알려준 크리스마스의 의미
축제는 형식과 장소를 바꿔가며 타래에서 이틀(2025년 12월23~24일), 사껀나콘 시내에서 하루 더(12월25일) 이어졌다. 23일 저녁, 성 미카엘 성당 앞 공터에서 고적대를 선두로 출발한 차량 퍼레이드는 각자의 예산에 맞춰 화려하게, 소박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차량의 앞쪽에는 산타, 천사, 요셉과 마리아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뒤쪽에는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구유가 모셔져 있었다. 50여 대의 퍼레이드 차량에서 뿌려지는 사탕은 작은 경쟁을 유도한다. 이런 규모와 열기를 미처 예상하지 못해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사탕 컬렉터 대열에 합류했다. 막 던져진 사탕도 야무지게 거두어져서, 다람쥐 같은 아이들은 1년 치 사탕을 하룻밤에 모은다. 축제에 야시장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귀여운 성탄 소품과 의상은 기본이고, 맛있는 먹거리와 생필품에 기념품까지, 웬만한 규모의 시장 하나가 통째로 폴딩 북처럼 세워졌다.
둘째 날, 성탄 전야의 ‘작은 별 퍼레이드’는 개인들이 참여하는 도보 퍼레이드다.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별등의 빛이 모여 은하수가 되고, 성당 마당으로 흘러들어 오며 장관을 이룬다. 이후 이어지는 성탄제 공연과 거룩한 성탄 전야 미사가 신자들에게는 성탄의 하이라이트지만, 비신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남아 반짝이는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이어갔다.
마지막 장소는 마을이 아닌 사껀나콘 시내다. 성탄 당일보다 이브가 더 북적이는 한국과 다르게 태국의 성탄 퍼레이드는 성탄 당일까지 성대하게 이어진다. 타래 마을의 차량뿐만 아니라 자가용, 삼륜차 산타 등 더 많은 사람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사실 태국에서 성탄절은 국경일이 아니다. 보통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어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즐길 수 있기에 이 시간이 더 귀하다. 40여 년 전 첫 성탄 퍼레이드를 접했던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지만, 지금은 종교를 떠나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연말 축제로 안착했다. 성탄의 기쁨이 그야말로 ‘만백성’에게 전해진 것이다.
한껏 설레었지만 돌아서면 공허했던 지난 성탄들이 이곳에 와서 의미를 갈구하고 있었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의 차분한 열기는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2003년부터 태국관광청이 인증한 공식 지역축제이긴 했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축제 지원과 해외 홍보를 시작했다.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소도시에 선명한 별이 하나 뜬 것이다. 마치 성경에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을 찾아온 것처럼, 타래의 하늘에 걸린 별들은 새로운 여행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Nakhon Phanom
우리 사이의 강을 건너면
국경도시 나콘파놈
지역을 통합하는 믿음의 징표
사껀나콘과 이웃한 주인 나콘파놈은 메콩강 너머로 라오스가 보이는 국경지대의 전략적 요충지다. 대부분 평야 지대로 산이 없지만 ‘산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는 놀라운 산의 풍경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지마자 첫눈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수려한 풍경이 메콩강 너머로 펼쳐졌는데, 알고 보니 라오스의 내륙 자연보호구역으로 유명한 타켁의 스카이라인이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 갑자기 강 건너 라오스가 궁금한데, 반대로 라오스 사람들은 이쪽으로 건너오고 싶어 한다. 부처님의 가슴뼈 유골이 안치된 프라탓 파놈(Phra That Phanom) 사원이 그들에게도 중요한 불교 성지이기 때문이다.
프라탓 파놈 사원은 12세기 이전에 크메르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나 라오스 양식으로 바뀌었다. 1975년 폭우로 탑이 소실되자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여 탑을 복원하고 상부에 110kg에 달하는 황금 우산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높이가 무려 57m, 지금 봐도 크고 화려하다. 태국 각지의 불교도뿐 아니라 강 너머 라오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한 랜드마크다.
프라탓 파놈 사원의 방문객이라면 꼭 함께 들르는 곳이 있다. ‘도돌(Dodol)’ 혹은 칼라매(kalamae)라고 부르는 현지 디저트 상점이다.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칼라매 툰 차이(Karamae Thun Chai) 상점에 들어서니 구수하면서 달콤한 냄새가 유혹적이다. 제조 과정은 간단했다. 찹쌀, 코코넛밀크, 야자당 등을 섞어 캐러멜처럼 만든 속을 밤톨만큼 덜어내어 다리미로 눌러 말린 바나나잎에 포장하면 끝이다. 적당히 달고 쫄깃한 식감, 구수한 바나나잎 향에 홀려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아하게, 느긋하게, 메콩강의 오후
사원에서 메콩강변 도로를 따라 50km 올라가면 나콘파놈 도심이 나온다. 삼륜차를 대절해 주요 유적을 방문하는 투어를 이용하면 요약본을 읽듯 도시를 이해할 수 있다. 출발점은 태국관광청 북동부 사무소. 이 분홍빛 건축물을 포함해 도시에는 몇 개의 식민지풍 건축물이 남아 있다. 식민 지배의 잔재가 아니라 태국이 스스로 근대화를 표방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한 프랑스식 건축 양식이다. 100년 전 주청사 건물이었다가 지금은 태국 국립도서관 나콘파놈 분관(Chaloem Phra Kiat National Library)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티크 목재로 마감된 우아한 내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1912년에서 1914년 사이에 지어진 구 주지사 관저는 나콘파놈의 역사와 민족 유산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Nakhon Phanom Provincial Governor’s Residence Museum)이 되었다.
성탄을 맞아 분주했을 성 안나 농쌩 성당(Deputy Archdeacon of St. Anne's Cathedral Nong Saeng)은 다음날 소강상태를 맞은 듯 한가했다. 1926년 건축된 이 성당은 다양한 종교와 민족문화가 공존하는 포용성의 상징이 되었다. 텅 빈 듯한 성당과는 달리 맞은 편 강변 공터에서는 성탄과 주말 사이, 한해의 마지막 금요일을 장식할 이벤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삼륜차 시티투어가 끝나는 지점은 1km의 산책로가 조성된 강변 공원이다. 선선한 저녁나절이 되자 강변 공원에는 산책에 나선 사람들, 파놈 나가 공원(Phanom Naga Park)에서 나가상에 참배하는 사람들, 성탄 이벤트와 겹쳐 규모가 더 확장된 스트리트 마켓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성탄이 지나고 나면 썰물처럼 사라지곤 했던 크리스마스의 정취가 여기 태국에서는 나가 뱀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특별했던 성탄의 기억도 작은 별등에 담겨 나의 창가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글·사진 천소현 에디터 남현솔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