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의 오프라인 감성
황학동을 걷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중고 거래처럼 순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황학동은 서울에서 물건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동네 중 한 곳이다. 누군가의 손을 한 번 거친 것들이 이 동네에선 여전히 가치가 있다.
새것보다는 쓰던 것이, 버려진 것보다는 아직 쓸모가 남은 것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네. 황학동은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난 물건과 사람들이 이 일대에 모이면서 중고 물품 거래는 생활처럼 이어졌고, 그 풍경은 점차 시장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황학동 벼룩시장, 이른바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던 공간이다. 말하자면 한 시대 앞서 존재했던 ‘당근마켓’의 오프라인 버전이랄까. 이후 1960~70년대를 거치며 중고품과 골동품을 다루는 상점들이 늘어나면서, 황학동의 결도 더 선명해졌다. 그렇게 황학동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시간을 거래하는 동네가 되었다.
힙한 동네로 거듭나다
요즘 황학동의 변화가 흥미롭다. ‘낡은 것’을 다루는 풍경 옆에 ‘새로운 취향’이 조용히 붙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심 중 하나가 신당역 인근의 ‘서울중앙시장’, 흔히 ‘신당중앙시장’으로 불리는 구역 일대다.
생활형 재래시장이 여전히 일상을 지탱하는 가운데, 그 가장자리를 따라 개성 강한 카페와 식당, 바들이 하나둘 들어서는 중이다. 이 일대가 ‘힙당동(힙함+신당동)’으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울중앙시장은 황학동에 있다.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커피엣마켓’이 그 대표 주자다. 산미 없이 고소한 아메리카노에 사탕수수로 만든 ‘신당라떼’가 입소문을 탄 탓에 이젠 시장 구경의 필수 코스가 됐다. 쌀국수 맛집 ‘포25’, 안주와 하이볼의 조화가 아름다운 ‘난바스낵’, 일본 이자카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오빠화이팅’까지.
전부 시장 안에 자리한 ‘파이팅’ 넘치는 젊은 가게들이다. 감각적인 카페들은 시장 바깥에서도 골목마다 팝업창처럼 터져 나온다. 개인적으론 ‘레레플레이’의 발견이 기쁘다. 무선 이어폰보단 줄 이어폰이, 아이폰 17 프로보단 2G 폴더폰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다만 이 변화는 결코 억압적이지 않다. 새로 생긴 공간들은 오래된 질서를 압도하지 않는다. 간판은 낮고 가게는 여전히 작다.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동선과 생활 리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가 외관에서부터 읽힌다.
시장 안쪽에서는 여전히 생선과 채소가 오가고, 골목 바깥에서는 새로운 취향이 조심스레 숨을 고른다. 한때 누군가의 집에 놓였던 의자, 오래 쓰다 닳은 냄비, 이유 없이 남겨진 장식품들. 그 사이로 갓 내린 커피와 막 완성된 요리가 놓이는 장면이 오늘의 황학동이다. 소란스럽지 않은 트렌디함. 누군가를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풍경이, 지극히 황학동스럽게 느껴진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