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지구대 뒤편,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전선 아래로 어두컴컴한 철공소가 도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간판에는 ‘절단, 절곡’과 같은 단어들이 큼지막이 새겨져 있는데 길에서는 불꽃이 튀기고, 쇠를 깎는 소리가 울린다. 분위기상 지나가도 괜찮을까 싶은 풍경이지만 이래 봬도 영국 여행 미디어 〈타임아웃〉이 ‘2025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9곳’ 중 6위로 선정한 곳이 바로 문래동이다.
거리로 들어서면 그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샤링 공장 옆 나무로 만든 카페, V컷팅 작업장 옆에 자리한 갤러리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문화 공간과 철공소가 묘하게 나란히 서 있다. 이 이질적인 공존이 문래창작촌만의 분위기를 이루고 여행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얼핏 보기에 엉뚱해 보이는 두 조합, 도대체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때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오른다. 과거 문래동 일대는 일본계 방직 공장 단지였다. ‘문래’라는 지명은 실을 짓는 물레와 문익점의 목화 전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방직 공장은 어려움을 겪었고, 국가 산업의 중심도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옮겨가면서 공장들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때 빈 공장부지를 따라 철공소들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문래동 철공 단지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이후 40여 년간 문래동의 역사를 지탱한 철공 단지는 1980년대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외곽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며 업체들이 빠져나갔고, 값싼 중국산 부품이 시장을 잠식했다. 그렇게 철공 단지는 듬성듬성 변하고 빈 공장이 늘어났는데 2000년대 들어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홍대와 신촌의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기 어려웠던 예술가들이 비교적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아 문래동으로 옮겨온 것이다. 거리에는 벽화가 하나씩 더해졌고, 점차 카페와 소품숍, 식당이 들어서며 문래 철공 단지는 ‘문래창작촌’으로 거듭났다.
특히 문래동에서 눈길을 끄는 건 과거 철공소였던 공간들이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커피 향이 피어오르고, 벽과 천장에 남은 철공소의 흔적은 그대로 인테리어가 된다. 완전히 지우지 않고 남겨둔 시간의 자국이 오히려 문래동만의 빈티지한 매력을 만든 것이다. 손으로 옷과 기계를 만들며 우리나라의 산업을 지탱하던 문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 만든 고유한 감성은 이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게 문래동은 차갑고 단단한 철의 몸에 서서히 온기를 불어넣으며, 양철 로봇처럼 자신만의 심장을 얻어가고 있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