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이 자동차 산업 구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관점에서 이번 중동 지역의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전동화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출처: 현대차)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최근 중동 지역 긴장으로 국제 유가 상승 가능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원유 공급 불안이 반복될 때마다 자동차 산업은 같은 질문에 직면한다. "연료 가격이 다시 자동차 시장을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다.
에너지 가격은 자동차 산업 구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기술 변화는 종종 규제나 기술 혁신에 의해 촉발되지만, 실제 시장 수요를 움직이는 직접적인 요인은 연료 비용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흐름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연비 경쟁이 본격화됐고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토요타와 혼다가 연료 효율성이 높은 차량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던 것은 에너지 가격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국제 유가가 급등 시에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다. 2008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하자 하이브리드 차량 수요가 급격히 늘었고 토요타 '프리우스'는 친환경차 시장의 상징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자동차 시장이다. 당시 유럽의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기차 판매 비중이 빠르게 확대됐다. 연료 가격 상승이 전기차의 총보유비용 경쟁력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성장 속도가 일시적으로 둔화된 상태다.(출처: 현대차)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성장 속도가 일시적으로 둔화된 상태다. 주요 시장에서 보조금 정책이 변화하고 충전 인프라와 가격 문제 등이 동시에 제기되면서 전기차 수요 증가율이 이전보다 완만해졌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이라는 변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내연기관 차량의 운영 비용이 직접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전기차는 전력 가격 영향을 받지만 연료 비용 구조 자체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안정적인 편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고유가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전기차 수요가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주행거리가 길거나 차량 이용 빈도가 높은 소비자일수록 연료비 차이를 더 크게 체감하게 된다.
각국의 정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5년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정책을 유지하면서 충전 인프라 확대와 배터리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전기차 보급 속도가 일시적으로 둔화됐음에도 장기적인 전동화 정책 방향은 유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전기차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기차 구매세 면제 정책을 연장하고 충전 인프라 확대와 배터리 생산 지원을 지속하면서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정책 방향 일부에서 변화를 보였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중심으로 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일부 혜택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면서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는 배터리 공급망과 전기차 생산 투자 지원 정책은 유지하고 있어 전동화 산업 자체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 관점에서 보면 전동화 전환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전략과 산업 전략이 결합된 변화다.(출처: 현대차)
이처럼 글로벌 전동화 정책은 국가마다 접근 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향성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모빌리티 산업 관점에서 보면 전동화 전환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전략과 산업 전략이 결합된 변화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와 전력 중심의 새로운 산업 구조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플랫폼 개발과 배터리 공급망 확보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브랜드는 내연기관 개발 축소 계획을 이미 발표한 상태다.
물론 전기차 전환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충전 인프라, 배터리 가격, 전력 생산 구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의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변동할 때마다 시장은 같은 결론을 향해 움직인다. 연료 효율이 높은 차량, 그리고 결국에는 전동화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결국 유가 상승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 자동차 산업 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에너지 시장 불안 역시 전동화 전환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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