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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푸의 큐레이티드 맨션, 세인트 레지스 홍콩

2026.03.13. 13: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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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가 있다. 그러니까 행색은 껍데기고, 그 안에 든 것이 진짜인 부. 여행자의 시선에서 그러한 부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려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기껏해야 어느 고급 맨션 주변을 서성거리는 일 정도일 텐데, 그렇다고 해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를 상상하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호텔을 두고 단순히 침대가 아니라 경험이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19년 4월 오픈, 전 세계 7,000번째 메리어트 호텔인 ‘세인트 레지스 홍콩’은 건축 디자이너, ‘안드레 푸(André Fu)’의 작품이다. 안드레 푸는 홍콩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손을 거친 호텔은 동서양의 문화가 오묘히 혼합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세인트 레지스 홍콩은 그의 ‘큐레이티드 맨션(Curated Mansion)’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 호텔인데, 큐레이티드 맨션이란 단순히 주거 공간을 채우는 것을 넘어 거주자의 취향, 개성,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해 엄선된 가구, 예술품 등으로 공간을 구성한, 그러니까 ‘취향 있는 개인의 공간’을 뜻한다. 애초에 모두의 공간을 위한 호텔이 아니라 사교를 위한 개인 저택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호텔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과장된 스케일 대신 마치 응접실처럼 차분히 꾸민 로비, 공용 공간 역시 투숙객이 자연스럽게 머무르며 교류하도록 설계했다. 압도적인 층고와 절제된 선, 정숙한 톤은 그 어떤 과시 없이 묵직한 부를 은은히 드러낸다.

재미있는 점은 세인트 레지스 홍콩이 ‘완차이’에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중 한 곳인 완차이는 홍콩 영화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지역이다. 최근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교자황후(水餃皇后, 물만두 여왕)>도 완차이 노점에서 물만두를 팔기 시작해 재벌이 된 여성 창업주를 다룬 영화다. 완차이는 빅토리아항구에 접해 아주 오랫동안 선원들이 오가는 상업 지구로 이름을 날렸다. 자연스럽게 밥집과 주점들이 이곳에 가득 모여들었고, 그래서 완차이는 홍콩에서도 유독 생활감이 짙은 동네로 꼽힌다. 바로 이러한 대비가 세인트 레지스 홍콩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현실적인 곳에서 만나게 되는, 겉으로는 절대 모를 럭셔리.

객실은 스위트 17개를 포함해 단 129개뿐이다. 호텔의 규모에 비해 객실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편인데, 객실 하나하나의 면적을 넉넉히 확보하고 가구와 소재, 예술적 요소들이 여백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무르게 될 한 사람이 온전히 공간을 독점할 수 있도록 만든 선택, 여행 중 객실로 돌아오면 오히려 홍콩의 거리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다. 엔트리 객실은 50m2(약 15.1평)으로 넉넉한 크기를 자랑하며, 코너룸, 하버뷰, 세인트 레지스 스위트, 메트로폴리탄 스위트 등 다양한 룸 타입을 갖췄다. 실제 고급 주택처럼 단순하고도 실용적인 인테리어는 이따금 홍콩의 영화로운 순간을 상기시킨다. 홍콩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더들스 스트리트’의 가스 가로등, 옛 완차이 경찰서의 식민지 시대 기둥 같은 요소를 호텔 안으로 끌어 왔기 때문이다. 객실 내 침대 위 긴 패널은 완차이 지역 상점과 전당포에서 사용하는 셔터를 닮아 있다.

세인트 레지스 홍콩에서는 모든 투숙객에게 전담 버틀러가 배정된다. 체크인과 체크아웃 절차를 객실에서 대신 진행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여행 일정에 맞춰 짐을 정리해 주거나 커피와 차를 준비하고, 의류 프레싱 서비스 요청까지 가능하다. 과잉 친절이나 과시적인 환대와는 결이 다르다. 필요할 때 조용히 등장하고, 필요가 끝나면 흔적 없이 물러나는 방식. 매일 오후 5시30분, 로비에서 열리는 ‘샴페인 이브닝 리츄얼(Champagne Evening Ritual)’ 이벤트도 흥미롭다. 세인트 레지스의 시그니처 이벤트인데, 사브르(Sabre)로 샴페인 병의 뚜껑을 여는 사브라주(Sabrage)를 로비에서 선보인 후 투숙객끼리 샴페인을 나눠 마신다. 이 역시 큐레이티드 맨션 콘셉트의 일환이다, 머무는 이들의 관계로 완성하는 럭셔리.

L'Envol
렁볼

렁볼은 세인트 레지스 홍콩 2층에 위치한 프렌치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으로, 올리비에 엘저(Olivier Elzer) 셰프가 이끌고 있다. 고전 프랑스 요리의 문법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미식 감각을 더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대리석과 원목이 조화를 이루는 절제된 인테리어는 요리 자체에 집중하도록 설계됐다. 홋카이도 성게를 활용한 ‘루르생 드 홋카이도’는 렁볼을 대표하는 메뉴로, 강렬한 감칠맛과 해산물 특유의 단맛을 정교하게 끌어낸다. 셰프가 홍콩의 풍미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헤리티지(Les Héritages)’ 코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조미, 증기, 기술, 질감, 재료를 테마로 하나의 코스가 서빙된다. 음식을 즐기는 시각을 다채롭게 구분해 보는 재미가 있다.

Saint Regis Bar
세인트 레지스 바

세인트 레지스 바는 호텔 로비 가장 안쪽에 자리하는 바다. 어둡게 톤 다운된 목재와 금속, 절제된 조명, 안정감 있는 좌석 배치는 클래식한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홍콩 특유의 도시적 감각을 은은히 녹여냈다. 최근 세인트 레지스 바는 톰포드 뷰티(TOM FORD Beauty)와 협업해 향수 ‘피그 에로티끄(Figue Érotique)’의 노트를 해석한 칵테일 3종, 디저트 1종을 선보였다. 대표 칵테일 ‘미스틱 피그(Mystic Fig)’는 무화과 잎을 인퓨즈한 피스코에 베르가못 리큐어, 무화과, 레몬, 데메라라 시럽, 클라리파이드 밀크를 더해 향수의 녹음과 달콤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벨벳 피치(Velvet Peach)’는 데킬라와 복숭아 리큐어, 블러드 오렌지 주스, 체리를 조합해 보다 관능적인 풍미를 강조했고, 논알코올 칵테일인 ‘체리 엘릭서(Cherry Elixir)’는 체리와 콜드브루 자스민, 탄산수를 활용해 향수 컬렉션의 또 다른 노트를 구현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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