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걷도록 한 규제를 비꼰 당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표현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161년 전인 1865년 영국 정부는 이른바 '붉은깃발법(Red Flag Act)'을 전격 시행한다. 정식 명칭은 ‘도로기관차법(Locomotive Act 1865)’, 말이 놀라지 않게 움직이는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한 법이다.
속도 제한도 엄격했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도심에서는 시속 약 3km, 교외에서도 시속 6km를 넘지 못하게 했다. 당시 증기기관 차량의 소음과 위험성을 고려했다고 해도 황당한 규제였다.
이 법은 무려 30여 년이 지난 1896년 폐지된다. 일부에서는 이 법이 마차 사업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로비의 결과였다고 주장하고 영국 자동차 산업이 독일, 프랑스와 경쟁에서 뒤처지게 한 결정적 이유로 꼬집는다.
강력한 견제에도 결국 마차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의 기본 구조는 마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의 역사를 바꾼 발명품을 하나씩 살펴보는 연재의 두번째 이야기는 '모노코크(Unibody)'다. (편집자 주)
5500년 진화한 마차에서 시작된 자동차 구조
영국 왕실 마차. 하중을 지탱하는 프레임 위에 객실을 올린 전형적인 프레임 기반 구조로, 이후 자동차의 바디-온-프레임 설계로 이어진 이동 수단의 원형이다. (출처 : 영국 왕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초기 바퀴와 수레 유물을 근거로 마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5500년 전으로 본다. 이후 마차는 진화를 거듭해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까지 가장 완벽한 형태의 이동 수단이었다.
마차 역시 하중을 지탱하는 프레임 위에 객실을 얹고 승차감을 위해 판 스프링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앞 차축은 조향이 가능했고 바퀴와 제동 장치도 갖추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 자동차는 대부분 마차 제작자, 즉 코치빌더(coachbuilder)가 만들었다. 마차를 생산하던 설비와 기술, 인력이 그대로 자동차 제작에 활용됐다.
초기 자동차는 그래서 ‘말 없는 마차(Horseless Carriage)’라고 불렸다. 하지만 마차 기반 구조는 한계가 분명했다. 구조 강성이 낮고 무게가 무거웠으며 속도를 높이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여기에 엔진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추가되면서 더 견고한 구조가 필요해졌다.
바디-온-프레임…자동차 구조의 첫 번째 진화
KGM 바디-온-프레임 구조 . 하부 강철 프레임이 차량 하중을 지탱하고 그 위에 객실(보디)을 올린 방식으로, 노면 충격을 완화하고 높은 내구성을 확보하는 전통적인 SUV 구조다. (출처 : KGM)
이러한 요구 속에서 등장한 구조가 '바디-온-프레임(Body-on-Frame)'이다. 마차와 기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레임이 차량 하중을 지탱하고 차체를 그 위에 얹는 구조다. 그러나 자동차는 엔진의 동력과 고속 주행에 따른 하중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구조 강도와 구동계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소재다. 마차가 주로 목재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자동차는 강철 프레임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프레임은 두 개의 긴 종방향 강철 빔과 여러 개의 크로스 멤버로 연결된 사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래더 프레임(Ladder Frame)'이라고도 불린다.
이 프레임 위에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차축을 장착하고 승객석과 외판은 볼트로 고정한다. 차량 하중은 프레임이 담당하고 차체는 주로 외피와 승객 공간 역할을 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내구성이 뛰어났다. 강철 프레임 구조 덕분에 거친 노면 주행이나 화물 적재, 충격에 강했다.
또 프레임만 유지되면 차체를 바꾸기 쉬워 다양한 형태로 개조가 가능했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이 남기고 간 프레임 구조 트럭 상당수가 버스로 개조돼 시내와 시외버스 등 대중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했다. 프레임과 차체가 따로 존재하면서 구조 중복으로 인해 무게가 크게 늘어났고 연비도 떨어졌다. 차체 강성이 낮아 코너링 시 비틀림이 발생하기 쉬웠고 충돌 시 에너지를 흡수하는 구조가 부족해 안전성에도 한계가 있었다.
모노코크…현대적 자동차 구조의 시작을 알린 발명
모노코크 보디 구조 . 차체와 프레임을 하나로 통합해 차체 자체가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로,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성을 높여 현대 승용차 설계의 기본이 됐다. (오토헤럴드 DB)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비와 안전, 그리고 핸들링과 승차감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프레임 보디만으로는 시장을 만족 시킬수 없었고 새로운 차체 구조가 필요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모노코크(Monocoque), 또는 유니바디(Unibody) 구조다. 모노코크 차체의 기본 개념은 이탈리아 란치아 창업자인 '빈첸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구상했다. 란치아는 초기 형태의 모노코크(일체형 차체)를 적용했지만 세미 모노코크 구조에 가까웠다.
모노코크는 기존 목재 골격 차체 대신 강판을 프레스 성형해 용접으로 결합하는 구조로 차체 자체가 구조적 강성을 담당한다. 핵심은 별도의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는 대신 강판을 프레스 성형·결합한 차체 자체가 하중을 분산하고 구조 강성을 담당하도록 설계한 데 있다.
모노코크 구조를 대량생산 승용차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대표 모델은 1934년 등장한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Citroën Traction Avant)'이다. 트락숑 아방은 모노코크 구조, 전륜구동, 독립현가, 유압식 브레이크 등을 한데 묶어 시장에 충격을 줬다.
1947년형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Citroën Traction Avant) – 모노코크 차체를 대량생산 승용차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대표 모델로 전륜구동과 낮은 차체 설계를 결합해 당시 자동차 산업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출처 : 시트로엥)
모노코크 차체는 기존 프레임 구조보다 무게를 크게 줄이면서도 차체 강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결과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이 향상됐고 충돌 시 에너지를 분산하는 구조 설계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모노코크 구조는 이후 승용차 설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제조사들은 새로운 구조의 수리와 생산 방식에 대한 부담 때문에 도입을 주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노코크 차체의 장점이 입증됐고 오늘날 승용차의 90% 이상이 모노코크 구조를 사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 구조 혁신이 대략 수십 년 단위의 큰 물결을 따라 이뤄졌다는 점이다. 1880년대 내연기관 자동차의 등장, 1930년대 모노코크의 확산, 2010년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본격화가 그 흐름을 보여준다.
마차의 프레임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바디-온-프레임을 거쳐 모노코크, 다시 전기차 전용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음 변화가 메가캐스팅과 구조용 배터리 플랫폼이 될지, 자동차 산업은 또 한 번 구조 혁신의 갈림길에 서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