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자동차는 스스로 멈추지 못해 벽이나 흙더미에 충돌하고 사람들이 몸으로 차를 막아 세우기까지 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자동차가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한 기술 경쟁으로 진화해 왔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늘날 자동차가 안전하고 안락한 교통수단이 된 결정적인 기술은 속도가 아니라 멈추는 기술이었다.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어려웠던 때, 자동차 제동 기술의 혁명을 가져온 발명이 바로 디스크 브레이크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제동 시스템은 매우 원시적인 형태였다. 바퀴나 차축에 나무 블록을 눌러 마찰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속도를 줄이던 마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이 끄는 이동 수단에서는 충분한 제동력을 발휘했지만 엔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동차는 말보다 훨씬 강한 힘을 냈고 속도도 훨씬 빨랐다. 그러나 멈추는 기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서야 할 때 서지 못하는 사고가 급증했다. 초기 자동차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으면 벽을 찾아라”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 흙길이나 언덕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거나 차량을 비스듬히 세워 감속하는 등의 해결책이 공유되기도 했다.
20세기 초 교통사고 기록을 보면 상당수가 제동 실패와 관련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드럼 브레이크였다. 바퀴 안쪽에 원형 드럼을 두고 내부에서 브레이크 슈가 바깥으로 밀려 나가며 마찰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1920~30년대 대부분의 자동차는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열'이었다.
'원하면 선다' 제동의 혁명, 디스크 브레이크의 탄생
1953년 르망 24시 레이스에 출전한 재규어 C-타입. 브레이크 디스크로 안정적인 제동력을 유지하며 압도적인 성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출처 : 위키트리)
브레이크는 마찰로 속도를 줄이기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고속 주행이나 반복 제동 상황에서는 온도가 500℃ 이상까지 올라가 제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패드 성능 저하, 부품 변형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드럼 브레이크는 순간 제동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반복 제동을 하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제동력이 떨어지는 브레이크 페이드(Brake Fade)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긴 내리막길이나 고속 주행 상황에서는 브레이크가 거의 듣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디스크 브레이크의 개념은 1902년 영국 엔지니어 '프레더릭 윌리엄 랜체스터(Frederick William Lanchester)'가 처음 특허를 냈다. 회전하는 금속 디스크를 양쪽에서 패드로 눌러 마찰을 발생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찰재 기술과 제조 기술이 부족해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디스크 브레이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53년 르망 24시 레이스였다. 영국 재규어가 C-타입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출전했다. 영국 브레이크 회사 던롭이 개발한 시스템이었다.
당시 경쟁차들은 브레이크 과열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재규어는 안정적인 제동력을 유지하며 압도적인 성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사건은 모터스포츠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줬고 이후 디스크 브레이크가 양산차로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열, 나에게 맡겨' 자동차 안전을 바꾼 제동 기술
디스크 브레이크는 바퀴와 함께 회전하는 디스크를 패드로 눌러 반복 제동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제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오토헤럴드 DB)
디스크 브레이크의 가장 큰 장점은 열 관리 능력이다. 바퀴와 함께 회전하는 디스크(로터)를 양쪽에서 브레이크 패드가 눌러 마찰을 발생시키는 구조로 열이 외부로 쉽게 방출된다. 덕분에 반복 제동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제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이후 자동차 안전 기술의 기반이 된다. 특히 ABS(Anti-lock Braking System)의 등장으로 제동 성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ABS는 급제동 시 바퀴가 잠기는 것을 방지해 조향 능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전자 제어 장치가 초당 수십 번씩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해 타이어와 노면의 접지력을 유지한다.
ABS는 이후 전자식 제동력 분배(EBD)와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ESC) 같은 첨단 안전 기술의 기반이 됐다. 디스크 브레이크와 전자 제어 기술이 결합하면서 자동차는 훨씬 안전하게 멈출 수 있게 됐다.
'원하는 만큼' 멈추는 기술로 진화한 자동차
자동차의 진화는 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정확하게 멈출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해 왔다. (오토헤럴드 DB)
자동차 제동 기술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는 모터를 이용해 감속 에너지를 다시 전기로 바꾸는 회생 제동(regenerative braking)이 일반화하고 있다. 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자동차에서 널리 사용되는 벤틸레이티드 디스크(Ventilated Disc)는 두 장의 디스크 사이에 공기 통로를 만들어 열을 빠르게 식히는 구조다. 고속 주행과 반복 제동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제동력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미래에는 브레이크-바이-와이어(brake-by-wire) 같은 전자식 제동 시스템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계적 연결 대신 전자 신호로 제동력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차 시대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빠르고 안전하게 달리는 것이 자동차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5500년 전 마차에서 시작된 이동 기술이 지금까지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멈추는 기술’의 진화에 있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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