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풍경이 있다. 토요일 저녁 6시 무렵이면 리모컨을 집고 틀던 무한도전 가요제, 음악방송에 등장하는 빅뱅과 투애니원, 숨죽여 기다리던 슈퍼스타K 결승전 현장에서 발표하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같은 멘트들까지.
우리에게 2010년대는 재미있고, 설레는 것들이 가득한 시대였다. 오늘 마시즘은 그 시대 분위기를 병 하나에 담은 음료에 대한 이야기다. ‘글라소 비타민 워터’. 마트에 음료코너에서 혼자 패션쇼를 했던 그 녀석. 그 당시에 이거 안 마셔본 사람은 없겠지?
뉴욕에서 시작된 힙한 비타민워터
굉장히 멋지고 힙한 이미지로 남았지만 글라소 비타민 워터의 시작은 단순했다. 1996년 뉴욕의 사업가 제이 다리우스 비코프(John Darius Bikoff)는 비타민약과 물을 따로 마시다가 이걸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은 것이다.
물보다는 맛있고, 비타민도 들어가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음료. 비타민워터는 뉴욕을 중심으로 셀럽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음료의 왕 코카콜라가 글라소 비타민 워터를 인수하게 된다.
인수금액만 무려 41억 달러. 당시 환율로는 약 3조 5,500억. 그것도 전액 현금으로.
뉴요커의 음료, 서울에 상륙하다
코카콜라에 인수된 글라소 비타민 워터는 전 세계의 멋진 도시들에 출시된다. 뉴욕, 시드니, 런던, 토론토, 파리, 그리고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진출한다. 2009년 여름의 일이었다.
6종의 다양한 컬러와 맛을 가진 음료. 독특한 병의 모양. 무엇보다 병의 라벨에 적혀있는 문장들은 소위 뉴욕물(?)의 느낌, 전문용어로 간지가 풀풀 넘쳤다. 솔직히 맛으로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글라소 비타민 워터 병을 당당히 들고 다녔다. 왜냐면 시대가 아니 세상이 우리에게 ‘비타민워터라이팅’을 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틀면 항상 보이는 그 음료
그렇다. 한국이고 미국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곳에는 글라소 비타민 워터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가십걸,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무한도전, 그리고 특히나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주인공들이 자꾸 볼에 이 음료를 들이댔었지.
심지어 영화제나 아이돌 팬사인회에서도 이 음료가 있어서 덕후들에게는 ‘나의 최애가 마시던 음료’로 추억되고는 한다. 빅뱅의 지드래곤 같은 경우는 아예 그가 만든 ‘글라소 비타민 워터’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세상 사람이 글라소 비타민 워터를 모두 들고 다니던 시기. 그 시대를 끝장낸 것은 의외의 한국 토종 음료였다.
맥콜의 반격, 비타민 워터 너 나와
2012년 이런 한 기사는 글라소 비타민 워터에 감히(?) 이런 의문을 제시했다. “비타민 워터, 정말 비타민이 많을까?”
음료 라벨에 붙은 성분표를 대충 캡처한 듯한 이 기사의 파급력은 컸다. 무엇보다 충격인 것은 비타민 워터에 함유된 비타민보다 매니악한 탄산음료 ‘맥콜’에 함유된 비타민이 2배가량 많다는 것이었다(TMI를 하자면 맥콜도 초반에는 건강음료 포지션으로 개발된 것이다).
아우라가 아닌 성분표로, 기준이 바뀌자 글라소 비타민 워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어 갔다. 생각보다 비타민이 많이 없네? 생각보다 당류가 많네? 그렇게 글라소 비타민 워터는 시장의 중심에서 서서히 물러났다.
2010년도의 감성을 가진 음료여
우린 그때 미쳤었다. 하지만 그 미쳤던 시기가 나쁘진 않았다. 2020년대 음료들이 당의 함량, 기능, 성분, 재료까지 따지는 팩트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는 조금 달랐다. 건강의 근거보다는 건강한 분위기와 감정이 더 중요했던 시대가 아닐까?
글라소 비타민 워터는 그 시대를 잘 보여주는 음료였다. 사실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건강, 패션 건강만큼은 확실하게 챙겨주었던 그 녀석. 그래서 가끔 이 음료가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제공 : 마시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