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미식’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 깃대봉도 매력적이지만, 홍도의 여행은 결국 식탁에서 완성된다.
울렁임 끝에 닿은 홍도
20여 년 동안 캠핑을 함께 다닌 지인들이 섬 여행을 제안해 왔다. 그런데 장소가 홍도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깃대봉’이 있기 때문이란다. 홍도는 최근 가장 많이 다녀온 섬 중 하나다. 출간과 기고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같은 장소를 반복해 간다는 것은 결코 매력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 마음이 절로 기울었고 그렇게 목포로 합류했다.
홍도로 가는 배는 쾌속선이다. 목포항을 떠나면 도초도, 흑산도를 거쳐 두 시간 반이면 닿는다. 문제는 전날 마신 술이었다. 너울이 심한 아침 바다는 속을 뒤집어 놨다. 일행들의 얼굴에서 설렘이 사라지더니, 어떤 자세로도 편치 않은 울렁임이 찾아들었다. 찡그린 미간, 눈을 감고 버티기에 시간은 참으로 더디 흘렀다.
홍도 선착장, 고생 끝 즐거움의 시작점이다. 이번에도 숙소는 사전에 예약하지 않았다. 경험이 만들어 준 자신감이다. 예상대로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물었다. “네 분이세요? 우리 집은 만실이지만, 우리 고모가 하는 숙소 소개해 줄게요. 8만원만 내요.” 강요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이끌림에 그녀를 따랐다. 방은 널찍한 것이 꽤 근사했다. 홍도항의 전경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테라스까지, 여정에 꿀이 떨어질 것 같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100대 명산 깃대봉
일행은 곧장 산행에 나섰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멀미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홍도에 온 중요한 목적 중 하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깃대봉의 높이는 368m,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100대 명산의 아우라를 품고 있다.
탐방로는 초입부터 오르막이 반복되는 난코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 보면 적당한 위치마다 쉬어 갈 만한 전망대 혹은, 전설을 담은 스폿들이 나타난다. 홍도의 절반은 족히 담아냈을 바다 풍경, 그리고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든 청어미륵, 연리지, 숨골재, 숯 가마터가 그것들이다.
산행의 묘미 중 하나는 회복이다. 묵직했던 허벅지가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어느덧 깃대봉 정상에 다다랐다. 미세한 해무가 있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서쪽으로는 홍도 10경의 독립문바위와 높은섬, 띠섬이, 다른 방향으로는 흑산도와 부속 섬 장도까지 선명하게 조망될 정도였다. 초봄의 여리여리한 하늘과 바다, 채 익지 않은 푸르름이라 해도 일행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산 길에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전망대를 보수 공사하던 사람들을 만나, 내연발전소 방향으로도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의 동백과 해송은 더욱 싱그러웠다. 가지런히 놓인 데크로드에서 정갈함을 느꼈을 만큼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숲은 더욱 고요하게 안겨 왔다.
끝없는 먹방의 연속
홍도에는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식당이 몇 곳 있다. 산행 후 한 잔은 필수니까 의기투합, 간이 술집으로 들어가 막걸리와 흑산 홍어를 주문했다.
“전에 왔을 때는 젊은 사장님이 계셨거든요. 어머님이 막걸리를 직접 만드신다고.” “그 어머니가 저예요.” 그렇다면 제대로다. 섬 막걸리 특유의 약초향과 달큼한 맛, 그리고 제대로 삭힌 홍어의 알싸함이 기막히게 엮였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이다. 두 병과 한 접시로 일단 마무리.
근사한 숙소를 소개해 준 젊은 아주머니는 등대펜션 사장님이다. 고마운 마음에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해물파전에 해물라면, 매운탕까지 시켜 먹다 보니 배는 더할 나위 없이 차올랐다. 그런데 어떤 여행은 과식을 두려워 않는 미식의 유혹과 함께 완성되기도 한다. 예서 멈출 수는 없는 이유다.
다음 순서는 해녀포차다. 그녀는 6호 포차를 권했다. “가장 연세가 많은 해녀세요. 가서 좀 팔아 드리세요.” 섬을 찾은 관광객의 반 이상은 선착장에 내려와 있는 듯했다. 역시나 홍도 밤의 키워드는 해녀 포차임이 분명하다.
6호 할머니는 전복, 해삼에 소라까지 껍질을 부숴 썰어 내기 시작했다. 투박한 손으로 완성된 모둠 해물 한 접시는 3만원이다. 물론 바다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홍도의 자랑거리, 토종홍합을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탕으로 1만원어치만 끓여 달라 부탁드렸다. 뽀얗게 우러난 홍합 국물은 역시나 최고의 안주다. 소주를 즉시 중화시키는 막강한 해장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다른 포차에 비해 한산했던 6호도 어느덧 손님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빈자리가 ‘나이 때문인가’ 하며 속상했던 할머니의 기분도 대번 좋아졌다. 등대펜션 사장님의 큰 그림, 치열할 것만 같은 섬사람들의 삶 속에도 인정과 배려는 여전히 유효했다.
홍도의 유일한 하나로마트에서는 특이하게도 치킨을 튀겨 판다. 먹방의 끝은 육지나 섬이나 치킨이 최고다. 사그라질 듯 다시 솟아나는 에너지, 20년 캠퍼들의 해묵은 수다, 그렇게 홍도의 밤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선상 회로 완벽한 마무리
아침 7시30분, 두 척의 유람선이 선착장을 출발했다.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홍도의 해안에는 수없이 많은 기암절벽이 산재해 있다. 모습도 색도 제각각, 바다에서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유람선 투어는 필수 코스다. 게다가 스치는 곳마다 해설사의 구수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전설과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섬을 한 바퀴 도는 두 시간이야말로 금세 지나가기 마련이다.
투어의 백미는 선상횟집이다. 유람선이 2구 앞바다를 지날 즈음 작은 고깃배가 다가와 바짝 붙는다. 홍도 유람선 조합에서 운영하는 선상횟집이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능숙한 솜씨로 회를 뜨기 시작한다. 한 접시에 3만8,000원.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산이다. 어떤 생선이 식탁에 오를지는 그날그날 달라진다. 잡어가 대부분이지만 운이 좋으면 큼직한 고급 어종들도 만날 수 있다.
선상 회만큼은 패스하기로 했던 약속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회 접시를 받아든 사람들이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 역시 홍도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예정이다. 어떤 여행은 사람, 그리고 함께 나눈 먹거리로 더 짙게 남기 마련이니까. 홍도의 바다는 봄부터 점차 맑아져 여름이면 가장 고운 색을 띤다고 한다. 다시 찾을 이유만 생긴다면, 기꺼이 또 홍도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