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감각이 낯설다. 핸들을 돌렸는데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계적인 저항이나 노면의 질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조향은 놀랄 만큼 정확하고 가볍다. 바퀴를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수행하는 느낌이다.
이질감은 잠시뿐이다. 좁은 골목을 한 번에 돌아 나가고 주차는 훨씬 수월해진다. 속도가 올라가면 핸들이 묵직해지고 차체는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는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 개념도. 운전자의 조향 입력이 센서를 통해 전기 신호로 변환되고 ECU가 이를 연산해 액추에이터로 전달함으로써 바퀴를 제어한다. (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140년 넘게 인간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핸들링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최근 공개한 신형 EQS에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by-Wire. SBW) 시스템을 탑재했다. SBW는 기계적 연결 대신 조향 센서가 운전자의 의지를 전기 신호로 변환해 랙(Rack) 액추에이터를 통해 바퀴를 조향한다.
SBW는 인간의 간섭이 필요없는 자율주행차의 필수 기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3년 닛산이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Q50에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을 처음 적용하며 조향 시스템의 전자화를 처음 현실로 끌어냈다. 이후 10년도 더 지난 이제서야 양산차에 적용되는 어렵고 까다로운 기술이기도 하다.
140년 길들인 손맛 대신 ‘조향의 전자화’
메르세데스 벤츠 EQS 요크 스티어링 휠. 물리적 연결 없이도 직관적이고 안정적인 조향이 가능한 스티어 바이 와이어를 탑재했다.(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조향을 전자 신호로 제어한다는 닛산의 개념 자체는 이후 자동차 산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됐다. 마침내 메르세데스 벤츠가 핸들과 바퀴의 물리적 연결을 완전히 제거한 SBW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벤츠 EQS SBW는 단순히 기계적 연결을 없앤 것에 그치지 않았다.
벤츠 SBW는 핸들을 돌리는 순간, 센서가 입력값을 감지해 전자 제어 유닛이 이를 계산한 뒤 모터가 바퀴를 조향한다. 이 과정에서 조향비는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한다. 저속에서는 적은 조작으로도 큰 각도를 확보하고 고속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반응을 만들어낸다.
특히 기존 시스템에서 불가피했던 노면 진동 전달이 사라진 점은 큰 변화다. 기계적 연결이 없어 울퉁불퉁한 도로에서도 핸들은 차분하게 유지되며 불필요한 피로를 줄인다. 동시에 정밀한 조향 감각을 유지해 벤츠 특유의 주행 질감도 놓치지 않았다
후륜 조향·ESP와의 결합, 통째로 움직인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저속에서 회전 반경을 줄이고 차량의 기민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스티어 바이 와이어의 진짜 가치는 단독 기능이 아니라 다른 시스템과의 결합에서 드러난다. EQS는 후륜 조향 시스템과 연동해 고속에서는 앞뒤 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안정성을 높이고 저속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꺾이며 회전 반경을 줄인다.
여기에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ESP)까지 더해지면서 필요할 경우 바퀴별 제동까지 활용해 차량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한다 결과적으로 운전자는 단순히 핸들을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차량 전체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벤츠는 물리적 연결이 사라진 것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센서와 제어 시스템을 이중화한 구조를 적용했다. 두 개의 독립된 신호 경로를 통해 하나의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조향 기능이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100만 km 이상의 테스트를 통해 신뢰성을 검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스티어링 휠 구조 자체도 새롭게 설계했다. 상단이 없는 형태에서도 에어백이 안정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내부 구조를 완전히 재구성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손맛’ 줄어든 아쉬움, 운전은 더 쉬워졌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험 차량이 슬라럼 코스를 주행하며 전자식 조향의 민첩성과 정밀한 반응성을 검증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제공)
스티어 바이 와이어는 분명 기존 운전자들에게 익숙했던 감각을 일부 덜어낸다. 기계적 연결에서 오는 직관적인 피드백, 이른바 ‘손맛’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더 명확한 장점들이다. 조작은 쉬워지고, 주행은 안정적이며, 시스템은 더 정밀해졌다. 무엇보다 자율주행 시대에 맞는 구조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를 ‘물리적 조작’에서 ‘전자적 제어’로 바꾸는 전환점이다. 벤츠의 시작으로 SBW는 전자화가 더 용이한 순수 전기차 그리고 물리적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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