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지각할 때나 하던 최약체 여행기자, 사이판에서 인생 첫 마라톤에 도전했다.
비가 온다. 거참, 지독하게도 온다. 이번 출장에 동행한 다른 기자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요즘 나의 ‘날씨 요괴’ 타율이 쓸데없이 상당히 좋기 때문이다. 출장만 갔다 하면 내내 비다. 여기서 문제는 2가지다. 첫째는 여기가 지금 사이판이라는 것. 12월부터 6월까지 건기라고 해서 맑고 쨍한 태평양의 정취를 카메라에 잔뜩 담아 보겠단 각오가 찬란했건만. 회색 바다를 눈앞에 두고 벌써부터 <트래비> K팀장에게 고해할 핑곗거리를 찾아 머릿속을 뒤적여 본다. 그니까요 선배, 날씨가 진짜 안 좋긴 했다니까. 뭐, 이건 최대한 잠깐의 햇빛이 났던 순간 촬영한 컷들을 모아 보는 걸로 해결한다 치자. 사이판은 사이판이니까. 날이 좀 흐리다 한들 트로피컬 느낌 가득한 야자수, 해변, 어디 안 간다. 그보다 두 번째 문제가 진짜 문제다. 내일이 마라톤 대회 날이라는 것.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아무래도 곤란한데.” 마라톤 참가자들이 호텔 로비에 모여 삼삼오오 내일의 날씨 예보를 살핀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심각한 세 번째 문제. 내일은 필자 인생 ‘첫’ 마라톤이다.
5km는 개나 소나다 뛴다면서요
사이판 마라톤 취재를 다녀왔다. 목적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 이 지극히 단순한 한 문장을 쓰기까지 꽤나 많은 땀과 물집이 있어야 했다.
“기자님, 몇 km 뛰실 거예요?” 최근 몇 년간 받아 본 질문 중 가장 등골이 오싹한 질문이었다. 출장 전 주,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마리아나관광청 K과장의 목소리. “5km는 메달을 안 주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괜찮고 말고요. 평소 운동량 0, 마라톤 경험 0. 달리기라곤 출근 시간 지각이 확정됐을 때나 하던 저질 체력 소유자에게 km니 메달이니 하는 건 전부 사치다. 목표는 완주, 오로지 그것뿐.
2026년 3월7일, 결전의 날. 이번 ‘2026 스케쳐스 사이판 마라톤(이하 사이판 마라톤)’은 5km, 10km, 하프, 풀까지 총 4개 코스로 진행됐다. 풀코스 시작 시간은 새벽 4시. 아직 동도 트기 전이지만 사이판의 뜨거운 태양을 생각하면 그보다 늦출 순 없었으리라. 대회 출도착 지점은 이번 대회의 메인 스폰서이자 내가 머문 호텔인 크라운 플라자 리조트 사이판. 침대에 누워서도 들렸던 바깥의 함성 소리가 아이폰의 알람 소리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이유다. 5km 참가자인 나는 새벽 5시 반, 객실 문을 나섰다.
뛰는 날이 장날이다. 전날 쉐이크아웃 런(사전 워밍업 러닝) 때도 떨어지던 빗방울이 역시나 굵어졌다. 사이판의 날씨는 난해하거나 아리송한 면이 없다. 비유도 상징도 없이, 단순명료하다. 거세게 비가 내린 후엔 말짱하게 해가 난다. 뒤끝 없는 세금 징수원처럼 내려야 할 양의 비만 정확하게 쏟아낸 뒤 물러난다. 하프 주자들 왈, 5~6km 구간에서 비가 왔지만 다행히 금세 그쳤고, 쿨링 효과가 있어 오히려 좋았단다. 특히 사이판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적당한 비가 체온 상승을 억제해 러닝 퍼포먼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다행히 5km 코스 출발을 10분 앞두고 비는 잦아들었다.
출발선 근처는 참가자들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얼굴에 태극마크를 그려 넣은 러너들이 몸을 풀고 있다. 총 15개국 772명 참가, 그중 한국인은 약 37%로 국가별 최대 비중을 기록했다. ‘러닝 인구 천만 시대’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러닝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달리기를 이유로 여행을 떠나는 ‘런트립’ 열풍이 확산되고 있는, 2026년 대한민국의 현 트렌드를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다. 어떻게 달리기가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내내 골머리를 앓던 이 우문의 현답은 물렁살로 이루어진 나의 말간 두 다리가 이번 취재에서 부지런히 찾아내야 할 문제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가수 션과 수많은 한국 러닝 인플루언서들은 지금쯤 사이판의 황홀한 바다를 곁에 두고 6km 지점을 지나고 있을 터였다. 이제 곧 내 차례다. “사이판 마라톤이 세계육상연맹 공인 기록 대회이자 태평양 지역 유일의 국제 공인 마라톤이래요.” 어설프게 스트레칭하던 내 옆으로 한 중국인 러너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의 신발은 뉴발란스 550. 완벽한 패션화다. 그도 나 못지않은 초보였지만 이론만은 빠삭했다. “급수대에서 물을 마실 땐 종이컵을 접어 빨대처럼 빨아 마시래요. 그래야 사레가 안 들린다던데.” 다정한 간섭과 경계 없는 오지랖, 그 사이 무언가. 긴장감이 발끝까지 뻗쳐 있던 나는 챗GPT를 능가하는 그의 풍부한 정보들에 영혼 없는 ‘와우’ 한 마디로 퉁 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출발선에 섰다. 경적이 울리고 3, 2, 1, 출발! 비장한 표정으로 발을 뻗어 본다. 근데 어쩐지…, 5km 코스는 주변 분위기부터 느슨하다. 100m 밖에서 봐도 ‘나 러너요’ 싶은 전문 장비들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나부터가 그랬다. 평소 출퇴근할 때 신던 패션화에 대회에서 나눠 준 티셔츠 차림. 암밴드도 없어 휴대폰을 손에 쥐고 뛰었으니 말 다 했다. 옆에선 한 가족이 담소를 나누며 걷다 뛰다를 반복했고, 심지어 샤넬 스몰 사이즈 백팩(!)을 메고 뛰는 여성 참가자도 봤다. 말 모양 코스튬을 입은 채 유모차 끌고 달리던 한 아버지는 이날의 인기 스타였고. 그만큼 누구나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대회, 축제를 닮은 대회란 뜻이기도 했다. 대롱대롱 샤넬백이 저만치서 흔들린다.
그렇다 해도 5km는 초보자에게 결코 우스운 거리가 아니다. 반환점은 2.5km 구간. 거기까지만 어떻게든 멈추지 않고 달려 보자는 게 나의 ‘대단한’ 각오였다. 운동화 소리와 들숨과 날숨 소리, 심장 고동이 뒤엉켜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온몸의 근육 조직의 위치가 하나씩 또렷해진다. 생전 사용하지 않던 녀석들을 억지로 깨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퇴사두근이 여기 있구나. 가자미근은 이쪽에 붙어 있군. 복사근이 이렇게 약했나. 벌써부터 아픈 게 광배근인가? 뭐가 뭔진 모르겠어도 각각의 조직들이 꽤나 성질난 것 같다. 기름칠도 안 한 기계(?)를 풀가동시킨 죄는 앞으로 4.2km에 걸쳐서 달게 받을 것이다.
인간의 행위 중 러닝만큼 순수한 것이 또 있을까. 어떠한 기계적 도움도, 타협도 없이 오로지 두 다리의 움직임으로만 완성되는 자신과의 싸움. 이 정직한 세계에선 어떠한 요량도 통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귀한 것들이 감탄 받고 칭송받는 이유는 그것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한 것은 귀하기 때문에 귀하다. 요행과 편법이 넘쳐나는 이 오염된 세상에서 달리는 행위가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다면,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삶이 갖지 못한 순수함을 동경하고, 자신의 마음이나 육체의 소중한 일부를 기꺼이 그것에 위탁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니까. 아직 뛸 만한 모양이다. 달리면서 이런 관념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현실은 빠르게 냉혹해져 갔다. 고귀한 달리기와 그렇지 못한 내 꼴. 초점 풀린 눈, 땀에 짓눌린 앞머리, ‘어’ 하고 벌어진 입(아무리 다물려고 해도 다물어지지 않더라). 뚱땅거리고 어설프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영락없는 서커스단의 외발자전거 곡예사 모습이다.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아무리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려도 끝없이 다시 굴러떨어져 영원히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그 무력감. 아무리 달려도 달려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 앞에서 불현듯 2,500년 전 그리스 신화를 떠올린다. 무한이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영원이란 단어에 묻은 두려움 따위를 더듬어 보며 달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건 끝이 있긴 있다는 거다.
점점 몸이 하나의 ‘기계’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신체 기관은 말 그대로 ‘기관(機關)’이고 나는 그에 맞게 작동하는 하나의 기계다. 나는 뛴다. 고로 존재한다. 기계 모드로 돌입하고 난 뒤부턴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공백 속을 달리는 기분이랄까. 살면서 이토록 완벽한 진공 상태의 공백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발 아프다’, ‘속이 안 좋네’, ‘고관절이 왜 쑤시지?’와 같은 순간순간의 신체적 느낌들만 이따금씩 공백을 찢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런 사정이야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사이판의 야자수는 머리채를 흔들며 그림자를 퍼뜨리고, 바닷바람은 물결처럼 콧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러닝은 지독하게 외로운 행위다. 누구도 도와 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신체적 고통은 인간이 온전히 홀로 겪어 내야 하는 처절한 외로움의 영역이라는 걸, 매 걸음마다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772명의 참가자들은 772개의 역사를 각자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두 다리로. 순수한 땅 사이판에서, 순수한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쓰디쓴 고독의 결정(結晶)을 맛보던 ‘런린이’에게 뜻밖의 위로가 건네진다. 코스 곳곳에서 “그레이트 잡(Great job)!”을 외치는 사람들. 급수대마다 자리한 로컬 자원봉사자들은 한 컵의 물과 과일을 건네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국내 대회, 특히 풀코스의 경우 급수대는 보통 5km 간격으로 설치된다. 하프나 10km 코스에서는 상황에 따라 2.5km 간격으로 더 촘촘히 운영되기도 하지만 사이판에서는 그 간격이 유난히 짧았다. 가수 션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후에 입을 모아 인상적이었다고 꼽는 장면 역시, 이처럼 자원봉사자들이 빈번하고도 따뜻하게 응원을 보내는 풍경이었다. 물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의 온기. 뛰는 폼새를 보면 내 꼴이 결코 ‘그레이트’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게 곳곳에서 외쳐 준 덕분에 틈틈이 힘을 냈던 기억이다. 물컵을 접어 빨대처럼 빨아 마셨다. 사레는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반환점을 돌고 1km가 남은 시점. 이쯤 되니 204g짜리 아이폰 17 pro가 204kg처럼 느껴진다. 약정이고 뭐고 저 푸른 바닷물에 시원하게 던져 버리고 싶다. 달큰한 구아바도, 오아시스 같은 생수도, 실시간으로 쭉쭉 떨어지는 스태미나를 막을 순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아침에 먹은 바나나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필자, 약점 투성이 런린이다. 고농축 비타민 없이는 취재가 버거운 최약체 기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런 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의 내가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달리기에서 이겨 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저만치 추월해 뛰어가는 저 근육질의 남자도, 째깍째깍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밀리초 단위의 기록도 아니다. 진실로 이겨야 할 상대는 5분 전의 나, 20분 전의 나.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나’들을 받침 삼아 혼신의 힘으로 결승점까지 두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하는 것. 그 외 나머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눈앞에 피니시 라인이 보인다. 사이드브레이크가 걸린 자동차를, 시시포스의 돌덩이 같은 바위를, 언덕길에서 두 손으로 밀어 올리는 기분. 톡 치면 바로 속을 게워 낼 것 같고, 쇠잔해진 발바닥은 밑창 떨어진 운동화처럼 너덜너덜하지만, 저기만 통과하면 이 모든 것도 끝이다. 경주마가 인간으로 환생한 듯 앞만 보고 내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통과! 0:34:32. 여자 5km 부문 33등. 885번 참가자, 2026 스케쳐스 사이판 마라톤을 완주합니다.
전율이고 뿌듯함이고 다 뒷전이다. 숨부터 몰아쉰다. 고막을 때리는 심장 박동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벌컥벌컥 파워에이드를 들이켜고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실감각이 돌아온 건 호흡이 안정된 다음의 일이었다. ‘이토록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 낼 힘이 내 안에 아직 남아 있구나’ 하는 개인적인 기쁨이 뒤늦게 밀려온다. 뭔가와 싸워 승리한 것 같은데, 그 ‘뭔가’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라 괜한 우쭐함도, 알량한 자존심도 없이, 순수하게 기쁘다. 어쩌면 이 선명한 감정이 ‘인간은 왜 달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가장 명료한 단초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의 모양은 자신과의 싸움을 얼마나 자주 치르는지, 그리고 얼마나 빈번하게 지고 또 이기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닐까. 고통을 통과해 낸 극복의 데이터가 거듭 쌓여 갈수록 삶의 뼈대는 더 단단해지고 정교해진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우린 겨우 ‘성장’이라는 단어로 그 시간에 이름을 붙여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초 안내와 달리 완주 메달은 5km 참가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제공됐다. “메달 한번 깨물어 봐요. 사진 찍어 줄게요.” 출발선에서 만났던 아까 그 중국인 러너가 내게 외친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다. 그의 뉴발란스 550은 그새 흙투성이다. 그래도 흐르는 땀 사이로 미소가 만연한 걸 보니 만족스런 레이스였나 보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엉거주춤 포즈를 취해 본다. 원래 이렇게 찍는 거란다. ‘원래 이런 것’들이 전부 생소하기만 한 885번 참가자는 어금니로 어색하게 메달을 깨문다.
아무튼 그렇게 50km 같은 5km를 완주했고, 그날 밤 SNS에 후기를 올렸다. ‘5km는 개나 소나 다 하는 거라던데 난 왜 이렇게 힘든가’란 주제의 영상이었다. 영상은 조회수 120만회를 넘어섰고 실시간으로 와다다다 댓글이 달렸다. 5km는 마라톤도 아니고 레이스(Race), 건강 달리기 수준이란다. 수많은 댓글 중 유독 눈에 띄는 댓글 하나. ‘개나 소는 체력이 좋아요.’ 익명의 팔로워의 기막힌 통찰력에 조용히 ‘좋아요’만 누를 뿐. 개나 소가 되지 못한 885번 참가자, 아무튼 완주.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마리아나관광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