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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가지 풍경'으로 본 대한민국 섬여행의 매력

2026.05.06. 19: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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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의 21주년을 축하하며 섬에서 만난 21개의 장면, 그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해 본다.

1. 가을 낙지 (2020년 암태도)

암태도의 남강선착장 대합실에는 매점이 하나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낙지를 팔았다. 주민들이 개펄에서 잡은 낙지였는데, 가을에 가장 튼실하고 맛있었다. 어느 해, 비금도로 넘어갈 때 큼지막한 한 마리를 1만2,000원을 주고 샀다. 해변에 앉아 홀로 푸짐하게 만찬을 즐겼던 한 장면. 지금도 생각만 하면 군침이 돈다.

2. 몽돌해변에서의 비박 (2020년 소안도)

한기가 물러간 봄날은 섬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벌레도 나오기 전이라 마음만 먹으면 어떤 장소에서든 묵어 갈 수 있다. 이 시기는 텐트도 필요 없다. 매트리스와 침낭만 있으면 그만이다. 특히 몽돌해변은 고즈넉함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파도에 몽돌 구르는 소리를 벗 삼아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허리 통증과 함께 기상한 건 ‘안’ 비밀.

3. 톳 수확기 (2021년 가사도)

4~5월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톳 수확기다. 양식장에서 배로 실려 온 톳은 트럭에 옮겨져 곳곳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섬의 모든 평편한 땅을 점령한다. 들녘은 물론 물양장, 그리고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공간을 제외하고는 길 역시 톳의 차지다. 주민들은 톳 널기에 손이 바쁘다. 이 작업이 1년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을에 있는 단 하나의 슈퍼도 문을 닫았던 이유다.

4. 오금성씨 (2022년 추자도)

그와 난 여행자와 주민으로 만나 10년째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섬에서 알아주는 프로 낚시꾼이다. 솜씨를 보여 준다며 호기롭게 나섰던 출조길,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입질 한번 없었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그 때문에, 되레 구경꾼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포기하고 돌아오려던 찰나, 큼지막한 참돔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되살아난 체면, 오히려 참돔보다 환해진 그의 얼굴이 더욱 반가웠다.

5. 갈치 대박 사건 (2021년 관매도)

<한국기행>을 촬영할 때다. 지난 몇 번의 출연 때와 다름없이 스폿들을 소개하고 인터뷰를 하며 하루 일정을 마쳤다. 그런데 다음날 해변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난데없이 백사장에 갈치 떼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바구니에 주워 담던 어르신에게 여쭤 보니 팔십 평생 처음 있는 일이란다. 뜻하지 않게 좋은 촬영 소재를 만났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현재까지 쇼츠 조회 수 310만회.

6. 농어회 (2012년 고대도)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하려던 그때,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이곳 출신으로 육지에 살다 잠시 놀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와 함께 얼마 안 되는 고기를 나눠 먹었다. 보답하겠다며 갯바위 쪽으로 사라졌던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두어 시간쯤 후였다. 손에 들려 있던 것은 길이가 60cm쯤 돼 보이는 대물 농어. 인심을 나눈 덕에 싱싱한 자연산 회를 실컷 얻어먹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7. 저녁 한때 (2015년 고사도)

낙도보조선을 타고 무려 네 시간의 뱃길을 달려 도착한 섬은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마을 길을 걷고 선착장에 앉아 고기잡이에 나서는 또 다른 부부를 봤다. 그렇게 평화롭던 하루는 수평선에 다가섰고, 가끔 꺼내 보는 풍경으로 남았다.

8. 전복 플렉스 (2016년 하의도)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한 배를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전복 관리선을 타게 되었는데, 그 덕에 양식장까지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다. 선장은 배에 달린 크레인으로 가두리 그물을 끌어올리더니, 다시마 더미에 붙어 있던 전복을 보여 주며 마음껏 따 보라 권했다. 그날 우리 일행은 세상에서 가장 신선했을 전복을 원 없이 먹었다.

9. 부식창고 (2013년 사도)

물이 빠지자 파래를 뒤집어쓴 갯바위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주리와 갈고리를 든 아낙들이 모여들었다. 정성과 집중을 쏟아야 하는 해루질의 시간, 섬 내 민박집 상에 오르는 개불, 거북손, 해삼, 군벗들도 모두 이곳 출신들이다. 그러고 보면 바다는 그녀들의 마르지 않는 부식 창고임이 틀림없다.

10. 할머니의 바지락 바구니 (2011년 소야도)

병든 할아버지를 제방에 앉혀 놓고 할머니는 갯가로 나갔다. 한참 지나 돌아온 할머니의 바구니에는 바지락 몇 알이 담겨 있었다. 소박한 찬거리, 정성스레 죽이라도 끓여 내면 한 끼가 그득했을까? 마주하던 노부부의 낡은 밥상을 상상하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11. 새우깡 갈매기 (2021년 승봉도)

뱃길에 갈매기 떼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분명한 것은 나의 첫 번째 섬 여행에도 녀석들이 있었다. 한때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지면 그들의 식습관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지금은 그 흔한 풍경에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열광한단다. 갈매기들아, 새우깡은 간식일 뿐이야. 차라리 생새우를 잡아먹으렴.

12. 윌슨 (2012년 외연도)

며칠째 여객선이 다니지 않았다. 망연자실했던 마음은 섬에 갇힌 지 사흘쯤 되었을 때 ‘이왕 이리된 거, 제대로 즐겨 보자’는 의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도에 떠밀려 온 부유물들을 보다가 문득 조형물을 하나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기껏 생각해 낸 작품이 이거라니.

13. 개막이 (2013년 하의 신도)

해변에는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놓고 그물을 걸어 놓은 일종의 개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밀물 때 들어왔던 물고기가 어쩌다 그물에 걸리면 썰물 때 잡아 내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이다. 육지에 나가 사는 아들이 연로한 어머니와 이웃 어르신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개막이. 먼저 본 사람이 가져가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여행자의 몫은 아닌 걸로.

14. 텐트 유실 사건 (2017년 개도)

‘내 생애 첫 백패킹’이란 이름으로 브랜드 행사를 진행할 때다. 해변에 숙영지를 꾸리며 참가자들에게 텐트 팩과 가이라인을 단단히 고정하라 일렀다. 그런데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텐트 한 동이 파도에 밀려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던 것. 어딜 가나 말 안 듣는 친구는 꼭 있다. 덕분에 그 추운 날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기막힌 사연.

15. 1km를 날아간 텐트 (2016년 거금도)

세상에 그렇게 거칠고 센 바람은 처음이었다. 위협을 느낀 일행들은 텐트를 놓아 둔 채 인근 화장실로 피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텐트 한 동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론가 날아간 것으로 여기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해변을 돌아보던 중 모래톱에 단단히 박힌 무언가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잃어버린 바로 그 텐트! 바닷바람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16. 빨강등대 (2015년 진도)

진도항의 옛 이름은 팽목항이다. 관매도나 조도 그리고 맹골 군도를 여행할 때마다 이곳에서 배를 탔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후, 진도항 방파제 빨간등대는 추모의 상징이 됐다. 난간에 걸어 놓은 노란 리본과 현수막의 글귀들에 마음은 더욱 아릿해졌다.

17. 굴 까기 작업장 (2015년 고파도)

해안가에는 간이 작업장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로림만의 넓은 개펄에서 양식 굴을 거둬들이면 여자들은 그곳에 온종일 앉아 껍질을 깠다. 삶의 훈장처럼 허리는 굽고, 손 마디는 상처로 마를 날 없었어도, 그 덕에 아이들 교육도 하고 또 육지에 터전도 만들어 주었다던 그녀의 뒷모습. 좁은 작업장은 한 가족을 오롯이 지켜 낸 거대한 우주와 같았다.

18. 맹골이 (2017년 맹골도)

섬에 들어온 지 반나절쯤 지났을 때, 녀석과는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되고 신뢰는 점차 쌓여 갔다. 내 멋대로 녀석을 맹골이라 부르기로 했다. 맹골이는 텐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마을로 내려갈 때마다 안내하듯 앞장섰고, 다른 개들이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호위무사처럼 행동했다

19. 사슴들의 질주 (2019년 굴업도)

개머리언덕을 놔두고 연평산 능선에 설영을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해 질 무렵 붉은모래 해변으로 산책하러 나갔을 때 사슴무리의 질주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인적 없는 해안선을 따라 내달리는 날렵한 몸짓들은 곧바로 노을빛 속에 녹아들었다. 세월을 헤치고 비로소 이뤄 낸, 야생의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20. 홍합밭 (2016년 소청도)

해안을 뒤덮은 거무스름한 것들, 바로 토종 홍합이었다. 일찍이 바위에 어렵사리 숨은 홍합 군락은 몇 번 보았어도, 끝도 없이 펼쳐진 홍합 밭은 난생처음이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맛은 또 어찌나 좋던지, 쫀득거리는 속살과 사골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연신 감탄사가 터졌다.

21. 천도천색 어드벤처 (2017년 도초도)

신안군과 함께 ‘천도천색 어드벤처’라는 백패킹 투어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참가자만 100여 명이 넘는 제법 큰 행사였다. 그중 브롬톤(접이식 자전거)을 동반한 백패커들도 있었다. 그들은 도초도와 이웃 섬인 비금도를 넘나들며 라이딩을 즐겼다. ‘섬+캠핑+자전거’의 컬래버레이션. 마치 트렌드 세터가 된 듯한 기분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김민수의 섬 여행
김민수 작가의 섬 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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