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위치한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TTC-S) 전경. 여의도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조성된 토요타의 미래차 개발 거점이다. (김흥식 기자)
[일본 시모야마=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토요타가 만든 또 하나의 ‘도시’였다.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산자락을 따라 들어선 (Toyota Technical Center Shimoyama·TTC-S)는 단순한 자동차 연구시설이 아니었다.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로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토요타가 미래 자동차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TTC-S는 현장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전체 면적은 약 650만㎡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동서 길이만 약 5.3km에 달하며 기존 토요타 본사 기술센터보다 약 10배 규모로 조성됐다. 토요타는 TTC-S를 35년에 걸쳐 구상했고 2018년 착공해 올해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참고해 설계한 일반도로 시험 코스를 비롯해 고속 주행 시험장, 비포장 더티 코스 등 총 12종의 시험 코스가 마련돼 있다. 또 기획·디자인·설계·평가 인력이 함께 근무하는 차량 개발동과 시험동, 차량 정비동이 들어서 있으며 렉서스와 GR 브랜드의 핵심 개발 거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달리고, 부수고, 다시 고친다”…토요타식 카이젠
시험 주행을 마친 차량이 TTC-S 정비동으로 들어오고 있다. 주행 직후 차량 상태를 분석하고 즉시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Drive-Break-Fix’ 개발 문화가 현장에 자리 잡고 있다. (김흥식 기자)
이곳의 핵심은 단순한 ‘시험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TTC-S는 기획과 디자인, 설계, 평가, 시험 주행까지 모든 개발 과정을 하나의 공간에 통합했다. 토요타가 강조하는 “길이 차를 만들고, 차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다.
토요타는 이를 단순한 연구개발(R&D)이 아니라 ‘카이젠(改善)’ 문화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도로와 서킷, 더티 코스에서 차량을 극한까지 몰아 문제를 찾고 즉시 수정한 뒤 다시 테스트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토요타가 강조하는 '달리고, 부수고, 다시 고친다(Drive–Break–Fix)’ 개발 사이클이 TTC-S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시험 코스에서 나온 데이터와 드라이버 피드백은 즉시 차량 개발동으로 전달된다. 엔지니어들은 주행 직후 차량 상태를 분석하고 문제 원인을 추적한다. 이후 바로 아래 정비 플로어에서 부품 교체와 세팅 변경, 차체 보강 작업 등이 이뤄지고 다시 시험 코스로 차량을 내보낸다. 문제 발견과 개선, 재검증이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되는 구조다.
렉서스 전기 SUV TG의 목업(Mock-up). 토요타와 렉서스는 실물 기반 디자인 검증 과정을 통해 감성 품질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김흥식 기자)
차량 개발동 내부 분위기도 일반적인 자동차 연구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위층에서는 디자이너와 설계 엔지니어가 차량 비례와 패키징, 공력 성능 등을 논의하고 있었고, 아래층 정비 공간에서는 시험 주행을 마친 차량이 곧바로 분해되고 있었다. 개발과 테스트, 정비 조직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를 문서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차량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특히 토요타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성 품질’을 중요하게 본다. 스티어링 감각이나 차체 움직임, 노면 충격 전달, 브레이크 응답성 같은 요소는 시뮬레이션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다 아키오 회장, 즉 ‘모리조(MORIZO)’ 역시 직접 개발 차량 테스트에 참여하며 “운전자가 웃을 수 있는 차”를 강조해 왔다.
흙먼지와 가혹한 서킷에서 완성되는 자동차
비포장 더티 코스에서 토요타 GR 야리스 랠리 사양 차량이 테스트 주행을 하고 있다. 토요타는 극한 환경에서 서스펜션과 차체 강성, 냉각 성능 등을 반복 검증하고 있다. (김흥식 기자)
TTC-S에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Nordschleife)의 가장 가혹한 구간을 압축해 놓은 일반도로 시험 코스도 마련돼 있다. 급격한 고저차와 연속 코너, 노면 변화 구간을 통해 실제 유럽 산악 도로 수준의 부담을 차량에 가하는 방식이다. 토요타는 이 코스에서 단순한 최고속도보다 차체 밸런스와 스티어링 감각, 브레이크 반응, 승차감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비포장 시험 구간인 ‘더티 코스(Dirty Course)’였다. 자갈과 흙먼지가 가득한 코스에서 토요타 GR 야리스 랠리 사양 차량이 거칠게 미끄러지며 코너를 돌아나갔다. 차량 뒤로는 거대한 흙먼지 기둥이 따라붙었고 자갈이 튀는 소리가 현장 전체를 울렸다. 단순한 퍼포먼스 시연이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서스펜션과 차체 강성, 냉각 성능, 조향 반응까지 반복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토요타 관계자는 더티 코스가 단순한 오프로드 체험 공간이 아니라 실제 모터스포츠 기술 개발을 위한 핵심 시험장이라고 설명했다. 랠리와 더트 트라이얼 등 다양한 경기 환경을 가정해 차량 성능을 검증하고 GR 전용 댐퍼와 디퍼렌셜 등 고성능 부품 개발 테스트도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모리조)이 테스트 도중 전복 사고를 냈던 GR 야리스 차량이 TTC-S 더티 코스 한쪽에 전시돼 있다. 실패와 파손 역시 개발 과정의 일부라는 토요타 철학을 보여준다. (김흥식 기자)
시험장 한쪽에는 토요다 아키오 회장, 즉 ‘모리조(MORIZO)’가 직접 테스트 도중 전복 사고를 냈던 차량도 전시돼 있었다. 깨진 유리와 찌그러진 차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반 기업이라면 숨기고 싶어할 장면이지만 토요타는 이를 공개 전시했다. 실패와 파손 역시 개발 과정의 일부라는 메시지다.
현장 관계자는 “차는 한계까지 몰아봐야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며 “실패와 파손 역시 개발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토요타가 말하는 카이젠은 책상 위 회의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차를 몰아가며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까웠다.
디지털 시대에도 남아 있는 ‘손의 감각’
디자이너가 실제 차량 크기의 클레이(Clay) 모델을 손으로 다듬고 있다. 토요타는 디지털 시대에도 ‘손의 감각’을 중시하는 개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김흥식 기자)
이런 접근은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토요타는 개발동 내부에서는 거대한 클레이(Clay) 모델을 실제로 가공하는 장면을 이날 공개했다. 대형 가공 장비가 실제 차량 크기의 점토 모델을 정교하게 깎아내고 있었는데 토요타는 여전히 ‘머그(mug·점토 모델)’ 기반 개발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디지털 렌더링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실물 클레이 모델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실제 차량 크기로 만들어 봐야 빛 반사와 면의 긴장감, 차체 볼륨감 같은 요소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같은 공간에서 클레이 모델을 함께 보며 수정 방향을 논의하고 필요하면 즉시 형상을 다시 깎아낸다. 디지털 데이터와 실제 감각을 동시에 검증하는 과정이다.
토요타가 자동차를 단순한 데이터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물성’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최첨단 소프트웨어와 시뮬레이션이 발전해도 마지막 완성 단계에서는 결국 인간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뉘르부르크링을 닮은 코스와 전설적 모델들
토요타 GRMN 야리스 차량이 TTC-S 내 공간에 전시돼 있다.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경험을 양산차 개발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김흥식 기자)
TTC-S 시험 코스는 단순한 속도 경쟁보다 승차감과 핸들링, 차체 밸런스, 노면 반응 등 이른바 ‘감성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극한 조건에서 차를 몰아보며 얻은 경험을 양산차에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의도다.
현장 전시장에는 토요타와 렉서스의 미래 전략을 보여주는 콘셉트카들도 배치돼 있었다. 렉서스 LF-ZC는 차세대 전기차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했고 렉서스 LFA 콘셉트는 전동화 시대 스포츠카의 미래를 보여줬다. 토요타 FT-Se 역시 모터스포츠 DNA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스포츠 EV 콘셉트다.
고성능 모델 개발도 활발했다. 토요타 GR 코롤라와 GR 야리스는 실제 모터스포츠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서킷에서 얻은 경험을 양산차 개발에 직접 연결하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TGR)’ 철학이 TTC-S 전체에 녹아 있었다.
자연과 공존…토요타의 미래를 압축한 공간
렉서스 LF-ZC와 미래형 콘셉트 모델들이 TTC-S에 전시돼 있다. 렉서스의 차세대 전동화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델들이다. (김흥식 기자)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개발 거점이 자연과의 공존까지 고려해 설계됐다는 부분이다. 전체 부지의 약 60%는 자연림 상태로 보존된다. 숲과 계단식 논을 유지하며 일본 전통 농촌 생태계인 ‘사토야마(Satoyama)’ 환경을 복원했고 현재 약 4000종의 동식물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건물 곳곳에는 간벌 목재를 활용한 구조물이 적용됐고 자연 환기와 음향 설계에도 목재 기술이 적극 활용됐다.
무엇보다 TTC-S에서 느껴진 건 토요타의 강한 위기감과 집요함이었다. 전동화 시대에도 결국 자동차의 본질은 ‘사람이 느끼는 감각’에 있다는 것이다. TTC-S는 결국 토요타가 생각하는 자동차의 본질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최첨단 소프트웨어와 시뮬레이션 시대에도 자동차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몰아보고 느끼며 완성된다는 철학이다.
더티 코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GR 야리스, 개발동 안에서 정교하게 깎여나가는 클레이 모델은 전혀 다른 장면 같았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TTC-S는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라 토요타가 미래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보여주는 거대한 현장이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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