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체리의 영국 딜러사 시트너 그룹의 현지 전시장 전경. 영국에는 체리를 비롯해 10개 이상의 중국 브랜드가 진출해 있다. (체리)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영국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중국 브랜드에 점령 당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은 탓에 영국은 유럽 주요 국가 가운데 전기차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이 됐다.
영국자동차산업협회(SMMT)에 따르면 올해 4월 영국 신차 시장은 총 14만 9247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24.0% 증가한 수치다. 특히 배터리 전기차(BEV)는 전년 대비 59.1% 증가한 3만 9084대를 팔아 시장 점유율 26.2%를 기록했다. 영국의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도 사상 처음 200만 대를 돌파했다.
전기차 수요 증가의 혜택 대부분은 중국 브랜드에 돌아갔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영국 시장에서 팔린 전기차는 총 17만 6698대, 이 가운데 중국 토종 브랜드가 총 8만 960대를 팔았다. 대부분이 전기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국 전기차 수요의 절반 이상을 중국 브랜드가 차지한 셈이다.
여기에는 중국 특유의 인해전술 효과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BYD, 체리, 지리, GWM, 제이쿠, 오모다, 샤오펑, 립모터 등 무려 10여개 넘는 중국 브랜드가 전기차를 팔고 있다. 이들은 4월에만 총 1만 7664대를 팔아 같은 달 영국 전체 신차 등록 대수(14만 9247대)의 약 11.8%를 차지했다. 이 수치 역시 같은 달 팔린 영국의 전기차 총 판매 대수 3만 9084대의 절반가량에 달한다.
여기에 중국 자본 계열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MG, 볼보, 폴스타 등을 포함한 중국계 브랜드의 4월 판매량은 총 3만 801대로 같은 달 영국 전체 신차 시장의 약 20.6%를 점유했다. 영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5대 가운데 1대가 중국 토종 또는 관련 브랜드인 셈이다.
영국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장악력이 빠르게 커진 배경에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사실상 무규제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EU와 달리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상계관세(anti-subsidy tariff)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에도 일반 자동차 수입관세 수준만 적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별도의 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소비자 가격 안정, ZEV 의무판매제 대응, 그리고 중국 업체들의 영국 현지 생산과 투자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여기에 브렉시트 이후 EU와 따로 노는 독자 통상정책도 이유로 꼽힌다.
EU 주요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자동차 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중국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저가 전기차가 유럽 완성차 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릴 경우 산업 생태계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13일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은 단순 친환경차 보급 정책을 넘어 산업 보호 성격을 강화한 최소한의 조치로 평가된다. 새 기준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차량 성능뿐 아니라 국내 공급망 기여도와 연구개발 투자, 사후관리 체계, 고용 효과, 특히 국내 생산라인과 부품·배터리 조달 비중에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국내 생산 기반과 공급망 연계가 강한 브랜드들은 유리해지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계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게 기준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형평성을 얘기하고 소비자 선택권 제한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영국 사례처럼 시장을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개방할 경우 정부 보조금을 지원 받은 중국산 전기차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급속히 잠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대로 품질 검증을 받지 않고 서비스와 같은 사후 관리가 부실한 고가의 소비재가 사회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영국에서는 중국 전기차에 대한 품질과 서비스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부 브랜드에서는 소프트웨어 오류와 서비스센터 부족, 긴 수리 대기기간, 불안정한 중고차 잔존가치 등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마련되는 만큼 국내 산업과 고용, 공급망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때 자동차 강국으로 불렸던 영국이 지금은 사실상 자국 브랜드의 존재감조차 희미해진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소비자 선택권이나 형평성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금이 쓰여야 할 곳,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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