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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돌풍, 영화 호프 경찰차 '스텔라'는 80년대 '부와 명예'의 상징

2026.05.26. 16: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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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에 등장하는 현대자동차 스텔라. (호프 예고편 영상 캡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에 등장하는 현대자동차 스텔라. (호프 예고편 영상 캡처)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올해 제78회 칸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를 가장 뜨겁게 달군 작품 가운데 하나는 단연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였다. 주요 외신들이 “올해 가장 강렬한 극장 체험”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영화는 한국 SF 액션 스릴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워낙 이슈가 된 지라 여기 저기 예고편을 찾아 보다 영화의 내용보다 먼저 눈길이 간 건 호포 마을 경찰인 범석과 성애의 경찰차로 등장하는 현대자동차 ‘스텔라(Stellar)’였다.

스텔라는 주요 추격 장면마다 모습을 드러내며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긴장감을 동시에 살린다. 낡은 차체가 거친 도로를 내달리는 장면은 투박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질감을 만든다. 과거의 영상에서 미래적 공포를 다룬 SF 영화 속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물건이 된 셈이다.

지금 세대에게 스텔라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도로 위에서 스텔라는 지금의 그랜저나 제네시스 못지않은 상징성을 가진 차였다. 현대차 중형 세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모델이자 오늘날 쏘나타의 뿌리가 된 자동차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처음 만든 ‘국산 중형 세단’

스텔라는 과거의 영상에서 미래적 공포를 다룬 SF 영화 속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호프 예고편 영상 캡처) 스텔라는 과거의 영상에서 미래적 공포를 다룬 SF 영화 속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호프 예고편 영상 캡처)

스텔라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별’을 뜻하는 ‘스텔라리스(stellaris)’에서 가져왔다. 이름처럼 당시 현대차의 야심이 담긴 모델이었다. 푸조와 지프, 피아트 등을 거느린 글로벌 자동차 그룹 스텔란티스(Stellantis) 역시 같은 어원을 사용한 이름이다.

별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출발한 이름처럼, 스텔라 또한 당시 현대차가 꿈꾸던 미래와 성장의 상징에 가까웠다. 1970~1980년대 국내 중형차 시장은 사실상 해외 브랜드 조립 생산 모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현대차가 1976년 포니를 내놓으며 독자 생산 시대를 열었지만 중형 세단 시장은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더 좋은 차를,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자”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철학 아래 독자 중형 세단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물이 1983년 등장한 스텔라였다. 포드 코티나의 후속 개념으로 개발됐지만 단순한 라이선스 생산차와는 결이 달랐다. 

출시 당시 스텔라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각진 차체와 직선 중심의 쐐기형 디자인, 긴 보닛과 넓은 실내 공간은 지금 봐도 전형적인 1980년대 고급 세단 분위기를 풍긴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을 맡았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국산 중형차 최초로 타코미터(RPM 게이지)를 적용한 것도 스텔라였다. 당시 소비자들에게는 꽤 고급스러운 장비로 받아들여졌다. 파워트레인은 미쓰비시 새턴 계열의 1.4·1.6·2.0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주력 모델이었던 1.6리터 모델은 최고출력 100마력 안팎의 성능을 냈다. 당시 기준으로는 꽤 여유로운 힘과 부드러운 승차감을 갖춘 차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수준이지만 당시만 해도 스텔라는 ‘성공한 가장의 차’에 가까웠다. 실제로 기업 임원 차량이나 공공기관 간부 차량, 의전 차량으로도 자주 활용됐다. 그 시절 도로 위에서 스텔라 한 대가 주는 존재감은 상당했다.

스텔라에서 시작된 쏘나타의 역사

현대차 쏘나타 최신 버전. (오토헤럴드) 현대차 쏘나타 최신 버전. (오토헤럴드)

물론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짧은 개발 기간 탓에 품질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발 빠르게 개선 작업에 나섰고 이 과정은 훗날 현대차가 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스텔라를 “더 나은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게 된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무엇보다 스텔라는 한국 사회의 ‘마이카 시대’를 상징하는 자동차였다. 가족 여행과 장거리 드라이브, 명절 귀향 문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렸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가족의 생활 반경을 넓혀 준 자동차로 기억되는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현대차를 대표하는 중형 세단 ‘쏘나타’가 원래 스텔라의 트림명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1985년 스텔라의 최고급 트림에 처음으로 ‘쏘나타(SONATA)’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모델이 됐지만 시작은 스텔라의 고급형 모델이었던 셈이다.

이후 쏘나타는 현대차 기술력을 상징하는 모델로 성장했다. 독자 플랫폼과 엔진, 하이브리드 시스템,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 등 현대차의 주요 변화와 신기술이 대부분 쏘나타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현재는 글로벌 누적 판매 1000만 대 달성을 눈앞에 둔 현대차 대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스텔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델은 ‘스텔라 88’이다. 1988 서울올림픽 공식 차량 선정을 기념해 내놓은 스페셜 에디션으로 당시 스텔라의 고급 사양 모델이었다. 현대차는 이를 ‘세계의 새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국제 행사 의전 차량으로 활용했다.

영화 속 클래식카가 된 ‘한 시대의 상징’

'By your side – 스텔라 & 쏘나타' 전시에서 선보이는 '스텔라 88' 복원 차량이다.( 현대자동차) 'By your side – 스텔라 & 쏘나타' 전시에서 선보이는 '스텔라 88' 복원 차량이다.( 현대자동차)

1983년 등장한 스텔라는 약 14년 동안 생산되며 현대차 중형 세단 시대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1997년, 완전히 쏘나타에 자리를 내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스텔라가 남긴 흔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브랜드 조립 생산에 의존하던 시절, “우리 손으로 제대로 된 중형 세단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탄생한 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결국 오늘의 현대차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호프’ 속 스텔라는 단순한 올드카 소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가장 치열하게 성장하던 시절의 기억이자, 한 시대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오래된 세단은 과거의 시간에서 다시 스크린 위를 달리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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