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다운 공예를 찾아 서울을 훑었다.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가 이어지는 길.
무형유산의 손길을 익히는
서울 무형유산 교육 전시장
전통은 정통으로 배우는 게 제맛인 법. 서울 무형유산 교육 전시장에서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장인에게 직접 공예를 배우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의 무형유산은 흔히 알려진 국가무형유산이 아닌 ‘서울시 무형유산’이다. 오랜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무형유산 가운데, 서울의 역사성과 지역적 정체성이 뚜렷한 종목을 별도로 지정한 것이다. 서울은 518년 조선 왕조의 거점으로, 궁궐과 종묘가 있어 왕족이 머물고 각종 의례를 치르는 곳이었다. 의복과 가구 등에서 궁중 문화가 발달했고, 양반가와 평민이 함께 거주했기에 다양한 계층의 생활 문화가 공예품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처럼 독자적인 무형유산이 자리한 덕에 서울시는 1989년부터 서울시 무형유산을 따로 지정해 전승하고 있다. 노래·춤 등을 포함한 예능 분야와 공예를 포함한 기능 분야로 나뉘며, 기능 분야는 경국대전에 기록된 기술을 위주로 지정된다.
서울 무형유산 교육 전시장에서는 기능 분야, 즉 서울의 전통 공예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등록된 기능 종목 36개 가운데 현재 교육이 진행 중인 종목은 19가지이며, 총 27명의 전승자가 수업을 이끈다.
전승자는 오랜 기간 전수 교육과 활동을 이어오며 무형유산을 미래 세대로 전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다. 전수 장학생이 심사를 거쳐 인정받으면 전승 과정의 첫 단계인 ‘이수자’가 되며, 이후 전승교육사와 보유자로 이어지는 체계를 밟게 된다. 서울 무형유산 교육 전시장에서는 이들이 직접 옻칠, 나전, 자수, 침선, 매듭 등 각 종목의 기법과 미감을 가르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은 주 1회, 회당 3시간씩 12주 또는 18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전승자를 목표로 하는 본격적인 전수 교육은 아니지만, 특정 무형유산 종목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입문하기에 충분하다. 전통 공예는 재료를 손질하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는 만큼, 일반인을 위한 교육이라도 최소한의 기간이 필요하다. 수십년간 하나의 공예를 단련해 온 장인의 지혜와 노하우는 수업 내용에 자연스레 따라온다.
담당자에 따르면 수강생들은 처음에는 한복 자수나 나전처럼 익숙한 공예를 떠올리며 찾아오지만, 막상 수업을 들으며 예상치 못한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주석이나 철 등에 가늘게 뽑은 은실을 새겨 넣어 장식하는 ‘입사’와, 옻칠의 한 종류로 은은한 황금빛을 띠는 ‘황칠’ 등이 있다.
당일에 전통 공예를 가볍게 체험하고 싶다면 일일 체험 프로그램을 시도하면 된다. 반드시 수강하지 않더라도 1층 전시장에서 달마다 2~3가지 종목의 무형유산 작품 전시를 감상할 수도 있다. 다만 전시 준비 기간에는 헛걸음할 수 있으니, 방문 전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해 두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북촌 전통 공예 체험관
파란 하늘 아래 낮은 기와지붕들이 이어지는 북촌 한옥마을을 오르면, 대문이 활짝 열린 북촌 전통 공예 체험관이 나온다. 전통을 더 쉽고 가볍게 경험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스폿이다.
이곳은 서울시 소유 공공한옥 30여 개 중 하나로, 종로구에서 직접 운영·관리한다. 조선 왕실에 공예품을 납품하던 경공방 밀집 지역이던 북촌의 역사와 전통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들어서면 체험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중정과 사랑채(교육장), 안채(체험장)가 펼쳐진다. 합리적인 체험가와 다양한 프로그램 덕분에 인기가 많다.
수업은 북촌 자락에서 전통 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장인들이 직접 나와 진행한다. 종로구에서 연 1회 공모를 통해 공예 강사를 선정하며, 현재 17개 전통 공방이 참여 중이다. 원래는 무형유산 장인이 직접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짧은 체험 시간과 난이도 문제로 현재는 장인의 제자나 가업을 잇는 가족이 수업을 맡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은 최소 30분부터 최대 3시간까지 일일 체험으로 구성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전통 공예를 ‘그대로’ 재현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 방식 그대로의 공예품은 수작업에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 만큼, 전통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퓨전 공예품을 만든다. ‘조각보 팔찌, 천연 염색 스카프, 단청문 컵받침, 자개 액세서리, 액막이 거울’ 등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한 타임에 여러 선택지가 주어지므로 취향껏 고르면 된다. 예컨대 남송 공방의 김상실 작가는 오방색 팔찌는 물론 자개 보석 펜던트, 조선시대 궁중 꽃장식인 채화에 보석을 결합한 머리핀, 브로치 만들기 체험도 선보인다.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나만의 공예품을 만들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 사전 예약이 원칙이지만, 잔여 자리가 있을 경우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개별 체험은 안채에서 진행되며, 10명에서 최대 40명까지 참여할 수 있는 단체 체험은 사랑채에서 운영된다. 전시장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도 상시 전시하고 있다. 작품 구매를 원하는 경우에는 현장 판매가 가능하며, 작가 공방과의 연계도 지원한다.
수업이 없거나 특별한 행사가 없는 날에는 주민과 여행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쉼터처럼 문을 열어 두어 더위나 추위를 피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한다. 우리 고유의 절기에는 주민 참여 및 체험 행사도 개최한다. 특히 매해 칠석에는 구민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무료 공예 체험 행사를 연다. 대개 음력 7월7일이 있는 주에 열리며, 지난해에는 칠보 키링·황실 문양 필통·모빌·호패·자개 키링 등 총 14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 공예의 현주소
공예정원 & KCDF 갤러리
‘전통은 옛 문화가 되고 세계는 점점 획일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지금의 우리다움을 보여 주는 현대 공예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고 싶다면 KCDF 갤러리 1층, 공예정원으로 향해 보자.
공예정원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운영하는 공간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한국 예술가들의 공예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배지·스카프 같은 잡화부터 잔·접시 등 식기, 의류, 가구까지, 평소 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공산품이 아닌 공예품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현장과 온라인을 통해 구매도 가능하다. 요즘은 어떤 작품이 특히 많이 팔리냐고 직원에게 묻자, 12지신 백자 청화 매듭 팔찌나 나전칠기 책갈피처럼 실생활에서 가볍게 쓰기 좋은 제품이 선물용으로 많이 나간다고 했다. 공예를 감상이 아닌 생활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곳에 놓이는 작품들은 아무 공예품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KCDF가 2014년부터 시행한 우수 공예품 지정 제도를 통해 선별된 것들이 많다. 우수 공예품 지정 제도는 2025년까지 12회를 거치며 총 261개 작품이 우수 공예품으로 지정됐다. 심사 기준은 세분화돼 있으며, 특히 ‘한국의 전통성’을 중요하게 본다. 현대 생활양식을 반영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전통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팔도에서 발굴해 온 작품들인 만큼, 스펙트럼도 넓다.
공예정원 한켠에는 KCDF 리소스북도 자리하고 있다. 책 한 권에 한국 공예 기술 하나를 주제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시리즈로, 백자·단청·금박·칠보 등 우리 공예를 기록화해 전통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발간한다.
공예정원을 나서면 갤러리의 나머지 공간이 기다린다. 지하 1층 자료실에서는 공예·디자인 관련 책과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지하 2층 다목적홀에서는 공예 관련 행사와 프로그램이 열린다. 지상 2·3층은 공예 작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예품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만들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연구하는 모든 과정이 한 건물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 공예의 어제와 오늘이 궁금하다면, 이곳이 가장 정직한 답을 내놓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