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차량 수리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는 가운데 미국에서 차량 수리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논의에 참여하면서 단순 정비업계 갈등을 넘어 미래 자동차 데이터 소유권 문제로까지 논의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 포드 고위 경영진, 미국자동차딜러협회(NADA), 자동차혁신연합 관계자들과 만나 이른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법안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이후 "자동차 업계는 소비자들이 직접 차량을 수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수리권 논쟁은 차량 소유자가 제조사나 공식 서비스센터를 거치지 않고도 차량을 진단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정비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갈등이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시대에도 존재했던 문제지만 최근 차량이 소프트웨어 중심 제품으로 변하면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최신 차량에는 수백 개의 전자제어장치(ECU)와 각종 센서, 통신 시스템이 탑재되고 차량 상태 확인과 부품 교체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재설정과 보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지면서 제조사가 보유한 데이터 접근 권한이 사실상 수리 권한으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메리 바라 GM CEO, 포드 고위 경영진, 미국자동차딜러협회(NADA) 관계자들과 이른바 '수리할 권리' 법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오토헤럴드 DB)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차량 제조사가 소비자와 독립 정비업체에 진단·수리·보정과 관련된 차량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지지자들은 제조사가 데이터 접근을 제한할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줄고 수리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동차 제조사와 일부 딜러 단체는 보안 문제와 지식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번 논쟁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 정비 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 산업이 커넥티드카와 SDV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차량 데이터 자체가 새로운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폭스바겐은 차량 데이터를 스마트홈 플랫폼 '홈 어시스턴트(Home Assistant)'와 연동하던 비공식 접근 경로를 차단하면서 차량 데이터 소유권과 활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된 바 있다.
관련 업계는 앞으로 자율주행과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AI 기반 차량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수리권 논쟁도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가 차량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제조사가 어느 수준까지 통제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는 앞으로 자율주행과 OTA, AI 기반 차량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수리권 논쟁도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현대차)
특히 전기차 시대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등이 차량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으면서 독립 정비업체가 접근할 수 있는 범위와 제조사의 보안 책임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이 요구되고 있다.
이번 수리권 논쟁은 자동차를 단순 기계가 아닌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대립으로 비춰진다. 과거에는 엔진과 변속기 정비 권한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차량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접근 권한이 새로운 소유권 논쟁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미국 의회의 입법 방향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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