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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12. 과학은 왜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2026.06.16. 10: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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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늦은 저녁, 한 가족이 거실에 앉아 있다. 얼마 전부터 단지 앞 도로 아래로 굵은 전력 케이블을 묻는 공사가 한창이다. 근처에 들어설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특고압 지중선로다. 전선은 땅속에 있어 보이지도,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기후 위기에 맞서 무탄소 에너지의 비중을 키울수록, 멀리서 만든 전기를 도시로 실어 나르는 송전선로는 더 늘어난다. 그러니 이 가족의 사소한 불안은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된다. 그런데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흔히 답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위험하거나, 안전하거나. 정작 흥미로운 질문은 따로 있다. 어째서 그토록 오랜 조사를 거치고도 어떤 과학자도 "완전히 안전합니다"라고 시원하게 못 박지 못하는가.

'발암 가능 물질'이라는 말의 함정

불안을 키운 사건이 하나 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극저주파 자기장을 '발암 가능 물질', 이른바 2B군으로 분류한 것이다. '발암'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그런데 이 분류의 속뜻은 일상어가 주는 인상과 사뭇 다르다. 2B군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확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증거가 제한적이어서 발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경우에 붙는 꼬리표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같은 2B군에는 절인 채소나 알로에 베라 추출물처럼 우리가 평소 별생각 없이 접하는 것들도 들어 있다. 결국 2B군은 위험이 입증되었다는 판정이 아니라, 제한된 근거와 남은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기록해 둔 분류다.

없음은 증명할 수 없다

여기서 과학의 한 가지 본성이 드러난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거를 쌓아 보일 수 있지만,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100퍼센트 단언하기는 무척 어렵다. 흔히 '부존재의 증명' 문제라고 부른다.

그래서 과학자가 "송전선로 자기장이 암을 일으킨다는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증거를 다 모아 봐도 인과관계를 확정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정직한 유보일 뿐이다. 실제로 일부 역학 연구에서 희미한 신호가 잡히기도 했지만, 그것을 인과관계라 부르기에는 근거가 모자랐다.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

문제는 이 신중한 태도가 생활공간 바로 옆으로 전선이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정반대로 들린다는 데 있다.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말도 못 하면서,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냐." 과학자에게는 당연한 절제가, 누군가에게는 불안의 빌미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적 판단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에 깊은 골이 팬다.

그래서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 말은 과학적으로는 옳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갈등의 진짜 무대는 자기장이 몇 밀리가우스냐는 물리량이 아니다. 그 숫자를 건네는 사람과 절차를, 받는 이가 믿을 수 있느냐다.

보이지 않는 케이블을 둘러싼 그 가족의 불안은 측정기만으로는 끝내 다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우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공학, 곧 신뢰를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처=전남대학교
출처=전남대학교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스탠포드대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본 콘텐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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