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문제로 또 한 번 공급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기아)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자동차 산업이 또 한 번 반도체 공급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MCU(마이크로컨트롤러)나 전력 반도체가 아니라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DRAM)가 문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물량을 흡수하면서 자동차 업계가 필요한 메모리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은 최근 수익성이 높은 AI 서버용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서버용 DRAM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량용과 산업용에 사용되는 범용 DRAM 공급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최근 자동차 한 대에 탑재되는 메모리 수요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과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디지털 콕핏, 인공지능 기능이 확대되면서 차량 내 DRAM과 NAND 플래시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자동차 한 대에 탑재되는 메모리 수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현대차)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2026년 자동차 산업은 또 다른 반도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라며 DRAM 공급 부족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메모리 제조사들이 AI 데이터센터용 고수익 제품 생산에 집중하면서 자동차 산업이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UBS는 올해 자동차용 DRAM 가격이 전년 대비 70~100%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는 공급 확보를 위해 재고 비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급 부족은 2021년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던 반도체 대란과는 성격이 다른 점에서도 주목된다. 당시에는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혼란과 생산 차질이 원인이었다면 이번에는 AI 산업이 반도체 생산능력을 흡수하는 구조적 변화가 배경이다.
실제 AI 시장 성장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면서 업계에서는 올해 글로벌 DRAM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과 PC는 물론 자동차 산업까지 메모리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2026년 자동차 산업은 또 다른 반도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현대차)
자동차 업계가 이번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에 긴장하는 이유는 생산 차질 가능성 때문이다. 차량용 메모리는 단가 자체는 높지 않지만 공급이 끊기면 차량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실제 2021년 반도체 대란 당시 전 세계 자동차 생산은 1000만 대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당장 2021년과 같은 대규모 생산 중단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비용 부담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전기차와 SDV 비중이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메모리 사용량이 많아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자동차 산업은 과거 자동차 업체끼리 시장 점유율을 두고 경쟁했다면 이제는 AI 산업과 동일한 반도체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놓였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확보 전쟁은 그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자동차 산업이 맞이할 다음 공급망 위기는 공장이나 물류가 아니라 AI일지도 모른다. AI가 자동차를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AI 때문에 자동차 생산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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